전에 없는 미술 세계 출현에 전국이 ‘들썩’
  • 반이정 미술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3.05 16:05
  • 호수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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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 논리와 예술 결합한 무라카미 다카시의 개인전 주목
1시간 넘게 줄 서 전시회 보지만 전국에서 인파 몰려

명품 루이비통 가방은 중후한 갈색 바탕에 은은한 금박 로고를 패턴처럼 새긴 모양새를 전통처럼 지키고 있다. 이와는 대비되게 흰색 혹은 검정 바탕에 총천연색 로고를 패턴으로 찍은 신제품을 본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이 신제품은 2002년부터 2015년까지 생산된 루이비통X무라카미 다카시 라인으로 전해진다. 이 총천연색 루이비통 디자인을 설계한 사람이 일본 미술가 무라카미 다카시다.

루이비통과 협업한 상품은 상업 논리와 예술을 결합시켜온 무라카미 다카시의 상징적 치적이라 할 수 있다. 잘 팔리는 제품처럼 그는 예술품을 자기 브랜드화할 줄 안다. 그래서 그는 예술가이면서 카이카이 키키라는 회사의 대표, 말 그대로 사업가이기도 하다. 그가 3월 중순까지 부산시립미술관에서 개인전 《무라카미 좀비》(1월26일~3월12일)를 열어 주목된다.

《붉은 요괴, 푸른 요괴와 48 나한》 2013 ⓒ무라카미 다카시·카이카이 키키 제공
《붉은 요괴, 푸른 요괴와 48 나한》 2013 ⓒ무라카미 다카시·카이카이 키키 제공

루이비통과 협업한 제품으로 유명해

《무라카미 좀비》는 이미 대중매체들이 화제의 전시로 소개한 바 있다. ‘이우환 공간’이라는 별도의 전시장을 운영하는 부산시립미술관은 그동안 《이우환과 그 친구들》 시리즈로 이우환과 여하한 친분이 있는 미술가를 초대하는 연속전을 열어 왔다. 그 네 번째가 이번 전시다. 한데 노후한 미술관에서 누수 등의 문제가 생겨 예정된 전시가 연기됐다. 우여곡절 끝에 기간을 단축해 최근 무료 개방했다.

반응은 폭발적이다. 수도권에서 드물게 관찰되는 ‘스테디셀러급’ 전시회를 능가하는 관객이 모여들고 있다. 입장 대기줄은 지그재그 모양으로 이어져 계단을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갈 만큼 인파가 몰렸다. 수도권에서 열리는 화제의 전시에 지방 관객이 상경하는 일은 있어도, 이번처럼 부산에서 열리는 전시에 서울을 포함한 각지에서 관객이 모여드는 건 전례가 없다. 부산시는 미술관에 전시 기간 연장 검토를 요청한 상태라고 한다.

기나긴 대기줄로 인해 전시장 입구에 당도하기까지 보통 1시간 넘게 걸린다고들 한다. 전시실 입구에서 관객이 처음 만나는 작품은 《727 드래곤》(2018)이라는 대형 회화다. 전통 동양화풍 화면에 익살맞은 만화풍 캐릭터를 정중앙에 배치한 3면 회화다. 이 작품의 소장자는 아이돌 그룹 빅뱅의 지드래곤이다. 이 작품을 이유 없이 국내 전시회 초입에 배치했을 리 없잖나. 루이비통과 다카시의 협업에서 보듯 여기서 다시금 명성과 명성이 합쳐져 만드는 시너지를 본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예술품을 상업적 브랜드화하는 감각에 앞서, 전에 없던 미적 차별성을 선보이며 주목받아 왔다. 미술에 문외한이어도, 모네와 르누아르의 화풍을 칭하는 인상주의나 피카소로 대변되는 입체주의 등 ‘미술 사조’를 들어봤을 것이다. 이 같은 사조가 현대미술사의 연대기에 줄지어 등장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렇지만 팝아트와 개념주의가 등장한 20세기 후반 이후 도드라진 사조가 등장하진 않았다.

그런데 흔히 팝아트로 분류되는 무라카미 다카시는 팝아트 내에서도 독창적인 사조를 만들었다. 루이비통과 협업한 제품에 사용한 슈퍼플랫이 그것이다. 굳이 번역하면 ‘엄청 평평한’ 정도로 풀이될 이 용어는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 평평하게 구성된 화면을 의미하기도 하고 원근법을 따르지 않는 동양 회화의 평평한 화면 구도를 뜻하기도 한다. 원근법 전통이 있는 서구 회화와는 다른 미적 차별점을 지녔다는 점에서 고유명사이자 동시대 미술 사조라 할 수 있다.

부산시립미술관에 걸린 작품들도 하나같이 만화처럼 평평한 화면에 만화 캐릭터들로 화면을 가득 채운, 초대형 스케일의 그림들로 가득 차있다. 대중문화를 미술에 도입한 팝아트라는 선례가 있다지만, 이처럼 화려한 형형색색과 상품의 로고를 닮은 캐릭터로 초대형 캔버스를 가득 채운 선례는 없었다. 전에 없는 미술 세계의 출현이다. 흡사 고전 동양화의 바탕에서 관찰되는 금박을 무라카미 다카시는 초대형 회화의 배경에 아낌없이 입힌다.

무라카미 다카시처럼 수백 명의 조수를 거느린 회사 운영자인 미술가 중에 제프 쿤스와 데미안 허스트를 떠올릴 수 있다. 다카시의 국내 개인전을 보며 수년 전 베니스에서 본 데미안 허스트의 개인전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내가 리뷰를 쓰며 묘사한 아래 지문은 무라카미 다카시의 전시에도 대등하게 해당된다. “(이번 개인전을 위해 5000만 파운드(746억원) 이상의 돈을 썼다고 BBC에서 털어놓은 허스트의 진술처럼) 이 전시는 금전적인 지원이 보장될 때 실현 가능한 미적인 상상력과 조형적 완성도의 결말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인쇄물처럼 평평하고 완결된 회화의 마감을 다카시 혼자 수행할 순 없다. 여기서 작품 완성에 처음부터 끝까지 매달리는 고독한 예술가라는 우리 안의 강한 집착과 충돌이 발생한다. 미술도 시각상품이며 작가가 자기 색채(이걸 브랜드로 풀어도 뜻은 통한다)를 완성했다면, 좀 더 높은 완성도를 위해 작품 제작을 ‘지휘’하는 연출자로 입장을 바꿀 수 있다. 이런 미술계 흐름을 이해하지 못해 발생한 해프닝이 5년여 재판 끝에 결국 무죄로 결판난 조영남 대작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무라카미 다카시·카이카이 키키 제공
무라카미 다카시 전시가 열리는 부산시립미술관에는 로비부터 전시실 입구까지 지그재그로 길게 관객들의 대기줄이 이어진다. ⓒ반이정 제공
ⓒ무라카미 다카시·카이카이 키키 제공
이우환과 그 친구들Ⅳ 《무라카미 다카시: 무라카미 좀비》 전시 전경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전시실 한 곳에는 19금 제한 걸리기도

부산시립미술관의 전시실 한곳에선 무라카미 다카시의 젊은 시절 인터뷰 영상이 틀어진다. 한창 시절 그는 일본화의 주 고객이 부유층인 것에 회의를 품었다고 회상했다. 그가 작품에 다양한 캐릭터를 도입한 것도 대중성을 고려한 탓일 게다. 캐릭터는 작가의 색채를 각인시키기 쉽다. 그럼에도 대중문화를 미술에 도입한 앤디 워홀 같은 선구자의 현재가 그렇듯, 1시간 넘게 줄을 서야 간신히 입장할 만큼 대중을 끌어모은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을 대중적 미술이라 할 순 없다. 미술 대중화의 역설이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이 대중을 유쾌하게 만들지만, 일반인이 용인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다카시의 국내 개인전 전시실 한 곳에는 19금 제한이 걸렸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1990년대 초기작이 소개된 전시실인데, 아동용 애니메이션의 남녀 주인공들을 ‘성인물’로 변형시킨 작품이 출품된 공간이다. 일본 예술계는 쇼와 시대(1930년대)에 이미 ‘에로그로난센스’라 불리는, 선정성과 퇴폐미, 재미를 결합한 표현물이 유행했던 전통이 있고, 본능을 자극하는 표현물을 용인하는 관대한 문화가 있다. 19금 제한을 정한 미술관의 결정은, 한국 사회의 문화예술이 양적으론 팽창했으되 질적으로 앞서지 못하는 지점이라고 나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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