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사령탑 클린스만…명성은 역대 최고, 전술적 능력에는 의문부호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3.04 11:05
  • 호수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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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월드컵 이끌 국가대표 감독에 ‘황금 폭격기’ 클린스만 낙점
‘매니저형’ 큰 틀 짜는 데 강점 있지만, 보좌할 코치들의 역량이 관건

카타르월드컵 이후 3개월 가까이 공석이던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새 감독이 정해졌다. 1990년대 세계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이자 독일 축구의 레전드인 위르겐 클린스만(59)이다. 손흥민·김민재·이재성·조규성·이강인 등 선수 자원 면에서 새 황금기를 맞으며 남아공월드컵 이후 12년 만에 다시 16강 무대에 진출한 한국 축구를 차기 월드컵까지 이끈다. 

대한축구협회는 2월27일 “클린스만 감독과 2026년 북중미(미국·캐나다·멕시코 공동 개최) 월드컵 본선까지 약 3년5개월의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축구협회는 지난해 12월 계약 만료로 떠난 파울루 벤투 감독의 후임을 찾아왔다. 이용수 전 부회장이 사임한 전력강화위원장은 독일 출신의 마이클 뮐러 전 기술발전위원장이 맡아 선임 작업을 지휘했다. 뮐러 위원장은 2월28일 기자회견을 통해 클린스만 감독 선임 과정을 설명했다.

클린스만 FIFA 기술연구그룹 리더가 2022년 11월19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기술연구그룹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Xinhua 연합
클린스만 FIFA 기술연구그룹 리더가 2022년 11월19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기술연구그룹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Xinhua 연합

독일 축구사에 길이 남을 스타 플레이어 출신

클린스만 감독은 2명으로 압축된 협상 후보 중 우선순위였다. 뮐러 위원장을 비롯한 축구협회 관계자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클린스만을 만났다. 협상은 사흘 만에 일사천리로 마무리됐다. 이미 협상 전부터 큰 틀에서의 합의는 이뤄진 상태였다. 계약 기간, 연봉, 코칭 스태프 구성에 대한 양측의 이견은 적었다. 국내 거주 부분이 변수였다. 클린스만이 과거 독일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활동할 당시에도 미국을 주 거주지로 삼고 대표팀 소집 때 오갔기 때문이다. 축구협회는 클린스만이 전임 벤투 감독을 비롯한 많은 외국인 감독들처럼 국내 상주를 전제로 대표팀 지휘는 물론, 한국 축구에 다양한 영향력을 발휘해 주길 원했다. 그 내용을 전해 들은 클린스만은 국내 거주에 긍정적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클린스만은 독일 축구사를 통틀어도 손에 꼽는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다. 슈투트가르트, 바이에른 뮌헨(이상 독일), 토트넘(잉글랜드), 인터밀란, 삼프도리아(이상 이탈리아) 등에서 활약하며 많은 골을 넣었다. ‘황금 폭격기(Golden Bomber)’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했다. 1987년부터 독일(당시 서독) 대표팀에 선발돼 1998년까지 총 108번의 A매치에 출전해 47골을 기록했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는 3골을 넣으며 서독의 우승을 이끌었다. 1996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96) 우승 등 90년대 ‘전차군단’을 대표하는 공격수로 명성을 떨쳤다. 

한국 축구팬들에게도 골잡이 클린스만은 익숙하다. 1994년 미국월드컵 당시 한국과 독일의 조별리그 맞대결 때 2골을 넣으며 3대2 승리를 이끈 바 있다. 특히 완벽한 볼 트래핑에 이어 공중으로 뜬 공을 왼발 터닝슛으로 마무리한 골은 세계 최정상에 있는 공격수의 클래스를 한국에 각인시킨 강렬한 장면이었다

1990년대 말 유럽 축구계를 떠난 뒤에는 미국에 정착했다. 미국인 아내 데비 클린스만과 결혼하며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 지역으로 생활 근거지를 옮겼다. 2명의 자녀는 미국 국적이며, 장남 조너선 클린스만은 미국 20세 이하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한 골키퍼다. 2017년 한국에서 열린 FIFA 20세 이하 월드컵에 아들 조너선이 미국 대표팀 소속으로 참가하자 아내와 함께 경기장을 찾아 눈길을 모았다.

클린스만은 2004년부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자신의 은퇴와 함께 세대교체에 실패해 부침을 겪던 독일 대표팀 사령탑에 취임한 것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루디 러 감독이 독일을 준우승으로 이끌었지만, 경기력 면에서는 아쉽다는 평가를 받았다. ‘녹슨 전차’라는 비아냥에 시달렸다. 

이후 클린스만 감독 체제의 독일 대표팀은 과감한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필립 람, 루카스 포돌스키,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페어 메르테자커 등을 발탁했다. 자국에서 열린 2006년 월드컵에서는 3위를 차지했다. 비록 우승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젊은 전차군단의 경기력은 박수를 받았다. 당시 클린스만이 발굴한 선수들은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독일에 24년 만의 우승을 안겼다.

큰 틀의 변화와 체질 개선은 클린스만의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2011년 부임한 미국 대표팀에서도 새 얼굴 발탁에 적극적이었다. 5년이 넘는 재임 기간 동안 55승 16무 27패를 기록했고, 브라질과 이탈리아를 꺾었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는 조국인 독일을 포함해 가나, 포르투갈과 한 조에 속했는데 탄탄한 조직력과 공격 축구로 조 2위를 차지해 16강에 진출했다. 

 

한국인 코치로 차두리 FC서울 유스강화실장 거론되기도

감독으로 승승장구한 것만은 아니다. 클럽팀에서의 행보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독일 국가대표팀 이후 맡았던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1년도 버티지 못한 채 성적 부진으로 경질됐다. 당시 바이에른 뮌헨 소속이었던 필립 람은 훗날 자서전에 “클린스만의 전술 지시는 없었다. 선수들의 체력만 단련했을 뿐이다”고 비판했다. 2019년 11월에는 헤르타 베를린의 지휘봉을 잡으며 다시 한번 클럽 축구에 도전했지만 구단 수뇌부와의 갈등 끝에 77일 만에 스스로 감독직을 내려놓았다.

이후 야인으로 지내던 클린스만은 지난해 카타르월드컵에서 FIFA 기술연구그룹(TSG) 리더로 활동하며 축구계에 복귀했다. 당시 차두리 FC서울 유스강화실장도 TSG 일원으로 활동해, 클린스만이 한국 사령탑에 선임되는 데 일정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다. 차범근-차두리 부자와는 오랜 인연을 이어왔고, 미국 내 같은 지역에 거주한 홍명보 울산 현대 감독과도 친분을 쌓았다.

큰 그림을 그리는 능력은 검증됐지만 세부적인 색깔을 입히는 전술적 역량이 감독 클린스만에게 붙는 의문부호다. 이 지적에 대해 뮐러 위원장은 “프리미어리그에서 감독은 ‘매니저’로 불린다. 팀을 어떻게 운영할지 고민하고 전체 상황을 통제해야 한다. 선수 개인의 개성을 살리면서 스타 선수를 어떻게 관리할지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스포츠 선진국인 미국에 거주하며 일찌감치 피지컬 훈련의 중요성에 눈떴고, 최근 FIFA TSG에서 활동하면서 데이터를 전술에 활용하는 데 유능한 능력을 보인 점도 긍정적이라며 클린스만 감독의 관리자 역할을 강조했다.

결국 한국에서의 성공 여부는 그를 보좌할 전술 코치의 역량이 중요하다는 언급이 많다. 독일 국가대표팀 감독 시절에도 전술은 요아힘 뢰브 당시 수석코치가 담당했다. 이후 뢰브는 클린스만의 뒤를 이어 독일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15년간 활동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대한축구협회에도 전술 코치, 피지컬 코치는 자신이 선택한 인물을 대동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한국인 코치로는 클린스만 감독과 소통이 원활한 차두리 실장이 거론됐지만, 자신이 고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클린스만은 3월초 입국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클린스만 감독 체제의 한국 대표팀은 오는 3월24일 울산에서 열리는 콜롬비아와의 평가전에서 첫선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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