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웅 “《대외비》는 나를 따끔하게 꼬집는 작품”
  • 하은정 우먼센스 대중문화 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3.11 13:05
  • 호수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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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비》로 또 한 번 인생 캐릭터 갱신한 배우 조진웅

배우 조진웅이 출연한 영화 《대외비》(이원태 감독)가 박스오피스 1위(3월8일 기준)를 달리고 있다. 《대외비》는 1992년 부산에서, 만년 국회의원 후보 해웅(조진웅 분)과 정치판의 숨은 실세 순태(이성민 분), 행동파 조폭 필도(김무열 분)가 대한민국을 뒤흔들 비밀문서를 손에 쥐고 판을 뒤집기 위해 벌이는 치열한 쟁탈전을 그린 범죄물이다. 2019년 《악인전》으로 제72회 칸국제영화제의 초청을 받았던 이원태 감독의 신작이다.

조진웅은 극 중 평범하고 인간적인 40대 가장이자 마을 사람들에게 좋은 인심을 얻은 만년 국회의원 후보 전해웅 역을 맡았다. 권순태에 맞서며 권력을 향해 돌진하는 과정에서 인간성의 극과 극을 오가는 감정선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이원태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면서부터 전해웅 캐릭터에 조진웅을 염두에 뒀다고 밝혔다. 그만큼 맞춤옷을 입은 조진웅은, 선한 마음에서 시작해 악이 돼가는 모습을 섬세하게 그리며 영화 속을 누빈다. 이 감독은 “해웅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자기 운명이 타락으로,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 역할이다. 시시각각 한순간에 눈이 확 변하고 표정이 일그러지고 한순간에 땀이 확 터져 나오고, 그 모든 걸 조진웅 배우가 다 했다”고 전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조진웅은 단역부터 차근차근 연기 내공을 쌓아온 성실한 배우다. 업계에서도 함께 작업하고 싶은 배우로 늘 꼽힐 만큼 관계자들에게도 신임이 두텁다. 극단 생활을 하던 그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 조직폭력배 김판호 역을 계기로 단숨에 충무로를 접수했다. 이후 《끝까지 간다》의 악질 끝판왕 박창민, 《명량》의 일본 장수 와키자카, tvN 드라마 《시그널》의 우직한 형사 이재한, 《아가씨》의 후견인 코우즈키 등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를 넘나들며 변화무쌍한 연기를 선보였다. 다시 한번 인생 캐릭터를 갱신 중인 조진웅을 만났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출연한 계기부터 알려 달라.

“사실 대충 보고 결정했다(웃음). 세상에 쉬운 영화가 어디 있나. 한데 분명한 건, 신명 나게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간담회에서 감독님이 제게 ‘어려운 캐릭터 줘서 미안하다’고 했는데, 그 자리에서는 ‘왜 주셨어요?’라고 말했지만 배우는 다 알고 뛰어드는 것이다. 물론, 가성비 때문에 내게 이 역할을 줬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하.”

캐릭터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궁금하다.

“권력욕과 겉멋에 빠져들어 바보가 되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을 좀 더 잔혹하게 드러내고 싶었다. 그 인물을 연기하면서 나를 되돌아보기도 했다. ‘큰 욕심 내지 말고 적당하게 살아야지’ 하고 말이다. 이 영화를 촬영하며 술도 많이 마시고, 사람들과 이야기도 많이 했다.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의 면면도 훌륭했기에 신명 나게 연기할 수 있었다.”

연기할 때 중점을 둔 것은.

“세상에 쉬운 캐릭터는 없지만 해웅은 특히 어려웠다. 연기를 하는 내내 ‘이게 맞나’ ‘이렇게까지 가야 하나’ 계속 고민됐다. 크고 작은 고민들이 연기하면서 계속 쌓여 갔지만 멈출 수 없었고 의심하면서 여러 생각이 교차하기도 했다. 옳지 않은 걸 알면서도 갈 수밖에 없는 캐릭터의 내면을 잘 따라가 보자 싶었다. 관객이 간접 체험할 수 있는 단계까지 만들어야 해서 감독님과 자주 만나 대화했다. 에너지와 감정을 잘 분배해야 했던,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멈추지 못하고 달려가는 인물이다. 자신이 연기를 시작할 때를 떠올려 보면 어떤가.

“극단 생활이 녹록지 않았다. 20대의 젊음이 부럽기도 하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맨발로 뛰어다니고 싶지 않다. 그때의 열정이 지금의 나를 만든 자양분이겠지만 너무 힘들었다. 지금의 저는 많은 걸 저울질한다. 그때는 무작정 들이댔는데, 이제는 그런 열정이 없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왠지 나와 해웅이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캐릭터에 짠한 마음이 있다.”

성격적으로는 캐릭터와 비슷한 부분이 있나.

“배우를 그만두면 어디 가서 취직할 수도 없고, 다른 일에 전문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뒤로는 갈 수 없으니 더 집중하고 주어진 상황에 근성 있게 한다. 그런 점이 해웅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해웅과 가장 비슷한 점은 강자한테 약하다는 것이다. 저는 아내에게 약하다. 하하.”

역할이 정치인이다 보니 연설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강의와는 아예 결이 다르더라. ‘절 뽑아주시면 열심히 하겠다’ 정도가 아니라 내가 아니면 안 되게끔 어필해야 했다. 실제로 정치인들이 연설하는 것을 보고 참고했다. 특히 버락 오바마의 연설을 인상 깊게 봤다. 연설문을 받아서 읽는 게 아니라 자신이 직접 각색하고 자신만의 호흡으로 만들어서 하더라. 굉장히 세련됐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저도 제 호흡과 화법에 맞게 하려고 노력했다.”

상대 배우가 이성민과 김무열이다. 모두 연기 잘하는 배우다.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끼리 시너지를 많이 내줬고 그렇게 신나게 몇 시간을 놀다 보면, 그날 촬영이 끝났더라. 어디론가 한 발 내디딘 거 같은 느낌도 들고 너무 좋았다. 특히 이성민 선배와는 인연이 꽤 됐다. 초창기에 드라마 조연으로 출연할 때부터 같이 작업해 왔다. 그래서 연기할 때 특별히 따로 의논할 필요가 없다. 이 선배는 판 깔아주는 것도 잘하고 편하게 만들어주는 것에 특화된 배우다. 그야말로 현직 베테랑이다.”

 

조진웅과 이성민은 영화 《보안관》(2017), 《공작》(2018)을 통해 호흡을 맞췄다. 게다가 이성민은 조진웅이 출연한 영화 《블랙머니》(2019), 드라마 《안투라지》(2016)에 특별출연해 우정을 쌓았다.

 

혹시 이성민이 출연한 《재벌집 막내아들》을 봤나.

“개봉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봤다. 우리 영화에 나오는 배우가 잘되니 당연히 기분이 좋았다. 극 중에서 이성민 선배가 가지고 가는 힘이 너무 좋아 이 시기에 영화가 빨리 개봉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하. 《대외비》는 이성민 선배의 연기가 철이 끝나기 전에 맛볼 수 있는, 제철 음식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선배는 워낙 디테일하게 연기를 하는 스타일이다. 함께 연기를 하면 바로 코앞에서 그 연기들을 보는데, 이 사람의 숨소리와 순간의 얼굴 떨림 같은 디테일까지 다 볼 수 있다. 그게 너무 재밌다. 카메라에 담기든 말든, 나는 이 연기를 즐길 거야 하며 몰입하다 보면 장면이 끝나 있다. 그저 환상적이다.”

조진웅에게 《대외비》는 어떤 작품으로 남았나.

“영화의 메시지를 직접 공감하고 체험할 수 있었던 귀중한 기회였다. 관객분들도 자신의 내면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는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살면서 본의 아니게 옳지 않은 길을 걷는 경우도 있지 않나. 우리 영화는 그걸 따끔하게 짚는 영화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각자의 해석을 자기 삶에 적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현명함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이 영화를 잘한 게 아닐까 싶다. 저 역시 작업을 하면서 스스로 많이 꼬집고 반성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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