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존재감’→‘與대표’로…당권 쥔 김기현, 굴곡진 인생사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3.03.0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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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인지도 약점에도 이변 없이 ‘어대현’
룰 변경부터 김장연대까지…친윤 전폭 지원
대통령실 선거개입 의혹에 ‘정당성’ 논란 불가피

“‘어대현’(어차피 대표는 김기현)이다. 친윤(친윤석열)계의 전폭적이고 노골적인 지원을 받았는데 떨어지는 게 이상한 것 아니겠나.” 복수의 국민의힘 관계자들은 시사저널에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전당대회 초반부터 판세가 김 후보에게 유리하게 짜였기에 ‘당 대표 김기현’이 아닌 시나리오는 그려지지 않는다는 취지다.

8일 뚜껑이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 개표 결과, 이변 없는 ‘어대현’이었다. 김기현 국민의힘 신임 당 대표는 52.93% 득표율(24만4163표)로 당선됐다. 2위 안철수 후보(23.37%)와는 29.56%포인트 차다. 정치권 일각의 기대치였던 ‘압도적 과반’은 아니지만, 김 대표는 당권의 최대 변수로 꼽혔던 2위와의 결선투표를 막고 안정적으로 당권에 안착했다.

8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에서 김기현 신임 당 대표가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8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에서 김기현 신임 당 대표가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文정부 선거조작 피해자에서 尹心 ‘전폭지원’

1959년생 울산 출신인 김 대표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로 임용됐다. 윤석열 대통령과는 서울대 법대 선후배 사이다. 김 대표는 2004년 17대 총선 때 울산 남구을에서 당선돼 내리 3선을 지낸 이후 2014년 지방선거에서 울산시장에 당선됐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재임엔 실패했지만, 모순적이게도 낙선한 게 김 후보의 정치사에 한 획을 그은 꼴이 됐다. 당시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문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송철호 시장을 당선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해당 사건의 재판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를 계기로 김 대표는 일종의 ‘피해자’로서 보수진영에 이름을 알리게 됐다.

이후 2020년 21대 국회에 화려하게 재입성한 김 대표는 이듬해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준석 전 대표가 신임 당 기수로 선출되기 전까지 김 대표는 당대표 권한대행을 겸직하며 당내 입지를 다졌다. 21대 국회 후반기 여야 간 최대 쟁점으로 꼽혔던 상임위원장 재분배 협상에선 법제사법위원장 자리를 가져오는 데 성공하면서 리더십을 인정받았다.

김 대표의 리더십엔 ‘안정적’이란 수식어가 달리는 편이다. 지난해 대선 당시 이준석 전 대표의 당무 거부 사태로 윤석열 대선 후보와의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 김 대표의 물밑 중재가 갈등 봉합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 대표가 당시 이 대표와 윤 후보를 번갈아 설득하며 울산 회동을 주재했다는 후문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여권 내에서 김 대표 리더십을 신뢰하는 기류가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두터운 당내 지지기반 덕에 전당대회 초반부터 김 대표 앞엔 ‘어대현’이란 평가가 붙었다. 특히 김 대표에겐 친윤계의 노골적이고도 전폭적인 지원이 이뤄졌다는 게 중론이다.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좌장 격으로 평가받는 장제원 의원은 ‘김장(김기현-장제원)연대’를 띄우며 공공연하게 김 후보의 서포터 역할을 자처했다. 또 다른 윤핵관 맏형 권성동 의원도 한 때 당 대표 출마 선언을 했다가 자진 사퇴하면서, 사실상 김 대표로 친윤계 표심의 교통을 정리했다. 김 대표 측 스스로도 “‘윤심(尹心)’을 업은 후보”라고 자평했다.

2021년 대선 당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왼쪽부터)의 당무 거부로 윤석열 대선 후보와 갈등이 극에 달했던 때 김기현 원내대표의 물밑 조율로 극적 갈등 봉합이 이뤄졌다. 사진은 2021년 12월3일 울산 울주군 한 식당에서 세 사람의 전격 만찬 회동 후 취재진 앞에서 대선 승리를 다짐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2021년 대선 당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왼쪽부터)의 당무 거부로 윤석열 대선 후보와 갈등이 극에 달했던 때 김기현 원내대표의 물밑 조율로 극적 갈등 봉합이 이뤄졌다. 사진은 2021년 12월3일 울산 울주군 한 식당에서 세 사람의 전격 만찬 회동 후 취재진 앞에서 대선 승리를 다짐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손절’ 당한 나경원‧유승민‧안철수에 굳어진 ‘어대현’

‘어대현’이 굳어지게 된 결정적 순간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룰 변경’이다. 국민의힘은 이번 전당대회에 처음으로 결선투표제를 도입하고 경선 룰을 ‘당원 투표 100%’로 바꿨다. 당권 레이스 초반까지만 해도 일반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던 주자는 비윤(비윤석열)계 유승민 전 의원이었으나, 룰 변경 이후 판도가 뒤바뀌었다. 민심이 아닌 당심 면에선 비윤계보다 친윤계가 압도적 우위를 보였기 때문이다.

다만 약점은 김 대표의 낮은 인지도였다. 김 대표의 당내 지지기반은 타 후보보다 두텁다고 평가받았지만, 레이스 초반 지지율은 한 자릿수였다. 룰 변경 이후에도 김 대표의 지지율은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당원 대상 조사에서도 나경원 전 의원에 선두 자리를 내어주는 등 약세를 보였다.

때문에 나 전 의원의 레이스 이탈이 김 대표로선 최대 호재로 꼽힌다. ‘어대현’을 굳힌 두 번째 결정적 순간이다. 한 때 민심과 당심에서 종합 선두를 차지하며 유력 당권주자로 거론됐던 나 전 의원은 대통령실과의 공개 불협화음을 연출한 뒤 당권 도전을 포기했다. 나 전 의원이 “나는 비윤이 아니다”라고 호소해도 대통령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실상 나 전 의원의 당권 출마 포기를 압박한 대목으로 풀이됐다.

여기에 유력 경쟁자였던 안철수 후보에겐 ‘국정운영의 훼방꾼’이란 꼬리표가 달렸다. 대통령실이 안 후보의 ‘윤안(윤석열-안철수) 연대’ 표현에 노골적 불쾌감을 드러내면서다. 김 대표로선 일부 친윤 표심이 안 후보로 흐를 가능성을 차단하게 된 셈이다. 이 때부터 여의도 정치권에선 ‘어대현’이란 평가가 공공연하게 거론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8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에서 축사를 마친 뒤 퇴장하며 김기현 당대표 후보 등과 차례로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8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에서 축사를 마친 뒤 퇴장하며 김기현 당대표 후보 등과 차례로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상처 난 리더십, 험난한 김기현號

그러나 레이스 내내 판도가 김 대표에게 유리했던 것만은 아니다. 전대 막판 김 대표의 울산 KTX 땅 투기 의혹과 대통령실 행정관의 선거 개입 의혹이 불거지면서다. 땅 투기 의혹을 제기한 황교안 후보는 “민주당의 대장동 의혹에 버금가는 논란”이라고 비판했고, 대통령실 선거 개입 의혹을 띄운 안철수 후보는 법적 조치를 불사했다. 때문에 한 때 김 후보의 과반 득표 실패를 가정한 결선투표 가능성이 유력하게 거론됐다.

특히 두 의혹은 김 대표 당선 이후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전날 안철수‧황교안 후보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전당대회 이후라도 관련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대여 공세’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여당 당 대표 후보가 대여공세에 나서겠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그만큼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김 후보가 당권을 쥐게 되더라도 한동안 내홍이 불가피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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