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해법안, 한국 정권 바뀌면 또 뒤집힐 수도”
  • 박대원 일본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3.10 14:05
  • 호수 174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尹 정부가 발표한 ‘제3자 변제안’ 바라보는 일본 열도 분위기 ‘환영 속 우려’
사죄와 반성, 적극적인 배상 해법 고민보다 ‘불가역성 담보’에 더 관심

3월6일, 한국 정부가 일본과의 최대 외교 현안 중 하나인 강제징용 문제를 둘러싼 ‘제3자 변제’ 해법안을 발표하자 일본의 각종 매체가 이를 연이어 보도하며 열도 전체가 크게 들썩거리고 있다. 제3자 변제 해법안이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얻은 경제협력자금을 통해 성장한 한국 기업 등 민간의 자발적 기부로 마련된 재원으로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강제징용 손해배상소송 피고 기업인 일본 기업(일본제철·미쓰비시중공업 등) 대신 피해자에 대한 배상금을 변제하는 방식을 뜻한다. 

2월9일 일본 도쿄 긴자 상가 앞에서 시민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AP 연합
2월9일 일본 도쿄 긴자 상가 앞에서 시민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AP 연합

같은 날 오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한국 측이 제시한 해법안을 “한일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는 조치”라고 평가하고 “이번 발표를 계기로 정치·경제·문화 등의 분야에서 양국 교류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한 식민지배로 한국인에게 막대한 손해와 고통을 끼친 것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를 표현한 1998년의 한일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언급하며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에 관한 입장을 계승할 것임 을 밝혔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한국 측 해법안을 환영하며 “한일, 한·미·일의 전략적 연대를 한층 더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시사저널 임준선
박진 외교부 장관이 3월6일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을 발표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日 정부 적극적 협력 없으면 실현 어려울 것”

이튿날인 3월7일 일본의 주요 일간지인 아사히신문·니혼게이자이신문 등은 한국 측 해법안 제시를 1면에 보도했다. 먼저 아사히신문은 제3자 변제 방식을 제안한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 결단’에 일본 측이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 계승을 표명하는 방식으로 호응했다며, 한일 정부가 ‘정치적 결착’을 꾀했다고 평가했다. 한국 측이 요구한 ‘일본 기업의 자금 거출’에 대해서는 손해배상소송 피고 기업 대신 게이단렌(일본경제단체연합회)이 자금을 나눠서 내는 방안도 검토되었으나, ‘배상’과는 분리해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위한 청소년 교류사업 관련 기금 조성에 참여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고 보도했다.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 수출 관리를 위한 양국 간 국장급 협의를 재개하기로 한 것에 대해서는 “협의 재개 결정과 강제징용 문제는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다” “한국 측이 WTO(세계무역기구) 제소를 중단하기로 했기 때문에 국장급 협의를 재개하기 위한 환경이 정비된 것이다”는 경제산업성 고위 간부의 발언을 소개했다. 대한 수출규제는 한국 측에 강제징용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회고록(지난 2월 발간) 내용이 공개된 것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국 측 해법안이 일본 기업의 거출을 전제로 하지 않는 점을 강조했다. 단 제3자 변제 해법안에 대한 한국 내 비판 여론과 일부 강제징용 피해자 및 관련 단체의 반발 등으로 2015년 위안부 합의처럼 “한국 측이 합의를 뒤집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신문도 한국 정부의 해법안에 대한 국내적 반발이 심하다는 점과 피해자들이 강제점령 당시 자신들의 의사에 반해 노동을 강제한 일본제철 등 피고 기업의 사죄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피고 기업 및 일본 정부의 적극적 협력이 없으면 한국 측 해법안의 실현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합뉴스
2022년 11월13일 캄보디아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일본 총리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반대 여론에 한일 갈등 더 심화될 수도”

일본의 대표적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니시노 준야 게이오대 교수는 “윤석열 정부의 노력은 높게 평가한다”면서도 “(한국 정부가) 국내적으로는 큰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다음 대선(2027년)에서 정권교체가 발생하면 한국 측이 다시금 이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다며 “양국 정부가 협력해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아베 내각에서 NSC(국가안전보장국) 차장을 역임한 가네하라 노부카쓰도 한국 측 해법안에 대한 한국 사회 내 반대를 들어, 역사 문제로 인해 한일 갈등이 다시금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로서는 강제징용 문제에서는 양보하지 않되 수출 관련 절차 완화 등으로 한국에 대한 배려를 꾀하면서 안보 등 중요 분야에서 한일 관계를 정상화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도쿄 시민들의 의견도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 및 전문가 견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대 K씨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배상 문제가 종료되지 않았느냐”며 “법적으로 봤을 때 한국 기업이 자금을 내서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는 방안이 가장 적절한 것 같다”며 한국 측 해결안을 반기는 모습이었다.

일본 기업의 자발적 기부에 대해서는 “개별 기업이 판단할 문제로 (일본) 정부가 강제해서는 안 되는 문제”라고 말했다. 40대 M씨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제시한 해결책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은 2015년의 위안부 합의를 번복한 전례가 있다며 “다시 한번 한국이 말을 뒤집는다면 한국에 대한 실망감이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사회에서 강제징용 문제의 본질인 사죄와 반성, 적극적인 배상 해법에 대한 고민 등의 분위기를 당장 찾아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한국 정부의 해법안 제시로 강제징용 문제가 ‘불가역적’으로 해결되는 것인지에 크게 주목하는 모습이다. 3월8일자 아사히신문은 이번 해법안에 대해 “(한국 측이) 재차 배상을 요구하지 않도록” 하는 ‘불가역성’ 문제가 애매하게 처리돼 있음을 지적했다. 3월7일 기자회견에서 하야시 외무상이 “한국 정부는 원고(피해자)의 이해를 얻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하고 있으며, 앞으로 본건 조치를 착실히 실시해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서도 한국 측 해법안이 불가역성을 담보하지 않는 내용임을 시사한 것이라고 전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