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피해자만 무너지는 학폭…법과 시간이 가해자 편인 이유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3.03.11 10:05
  • 호수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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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정지 신청’ ‘맞신고’ ‘반성문 코칭’…로펌 조력 받으며 ‘학폭’ 지워나가는 가해자들
“처벌 왜 안 해요?” 가해자의 징계 불복 소송, 피해자 모른 채 진행되기도
1심 판결까지 1년 이상인데 그동안 가해자와 고작 3일 분리…결국 피해자가 떠난다

#. 새 학기는 출발부터 악몽 같았다. 고등학교 3학년 A씨는 같은 반 B씨 일당으로부터 지속적인 욕설과 죽으라는 협박을 들었다. 대개 ‘눈에 거슬린다’ 따위의 이유에서였다. 욕설의 대상은 A씨 자신이기도, 그의 부모이기도 했다. 학교를 마치면 끊임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받지 않으면 다음 날 쓰러질 정도로 뺨과 어깨, 배와 허벅지 등을 맞아야 했다. 영상통화를 걸어 성희롱을 하고 수시로 지갑을 털어갔다.

그렇게 3개월간 상처가 아물 틈도 없이 매일 악몽이 반복됐다. 홀로 버티던 A씨는 학교에 피해 사실을 알렸다. 학교는 자체 심의를 거쳐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심의위)를 열었고 B씨에게 ‘전학’ 처분을 내렸다.

곧장 가해자 B씨의 반격이 시작됐다. 징계를 재판단해 달라는 행정심판에 이어 법원에 징계 취소 소송까지 냈다. 재판이 끝날 때까진 징계를 내리지 말라는 집행정지 신청도 함께 했다. 지난한 싸움이 이어진 끝에 A씨가 처음 피해 사실을 밝힌 지 1년5개월여가 지난 후에야 법원의 1심 선고가 나왔다.

법원은 가해자 B씨의 징계 취소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시 말해 심의위의 기존 결정대로 B씨에게 전학 징계를 내려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때는 피해자도 가해자도 이미 졸업해 학교를 떠난 후였다. 학폭 신고 당일부터 졸업까지 약 8개월 동안 A씨와 B씨 사이에 분리 조치가 이뤄진 날은 단 3일뿐이었다. 나머지 수일 동안 피해자는 60㎡ 교실 공간에 가해자와 함께 머물렀다. 그사이 피해자는 정신의학과를 찾았고 총 세 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용기 낸 고발의 대가는 이토록 참혹한 일상의 붕괴였다.

ⓒ시사저널 임준선
ⓒ시사저널 임준선

이는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주로 학폭위로 불리는 심의위와 전국 법원에 매일같이 쏟아지는 사건 중 흔하게 발견되는 흐름이다. 학폭(학교폭력)을 다루는 드라마가 대개 권선징악·인과응보로 결말을 맺는다면, 현실에서 법과 시간은 이처럼 가해자의 무기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이번 ‘정순신 사태’에서 나타났듯 처벌을 피하기 위해 소송을 남발하는 ‘법 기술’이 성행하면서, 여기에 맞서야 하는 피해자들의 고통도 배가되고 있다.

 

학폭 처벌 취소를 ‘성공 사례’로 홍보하는 로펌들

#. <가해자 변호 성공 사례> 고등학생 C군은 같은 반 D양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C군은 D양의 가슴과 엉덩이를 평가하며 “만져보고 싶다”고 이야기했고, 이에 D양이 갑자기 정색하며 C군을 학교에 신고했습니다. D양은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며 C군의 전학 조치를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학폭위는 D양이 제출한 자료만으로 C군의 반성 정도, 화해 정도가 ‘없음’으로 보고 C군에게 ‘전학’ 조치를 내렸습니다. C군과 C군의 부모님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저희 ○○법률사무소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C군이 D양에게 수차례 사과 편지를 보낸 점 등을 어필하며 법원에 관련 자료들을 제출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전학 조치를 취소했습니다. 친구에게 성희롱적 발언을 했다가 곤경에 처할 수 있습니다. 혼자 해결하려 마시고 저희에게 연락주세요. 위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서울 서초동 법원 입구 주변에 모여 있는 변호사 사무실 간판들. 최근 ‘학폭 전담팀’을 꾸리거나 아예 ‘학폭 전문’이라고 내건 법무법인이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최근 서울 서초동을 중심으로 ‘학폭 전담팀’을 꾸리거나 아예 ‘학폭 전문’이라고 내건 법무법인들이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 이들 중엔 위와 같은 ‘가해자 소송 성공 사례’를 홈페이지에 수백 건씩 올려두고 주로 가해자들의 소송을 대리하는 곳이 적지 않다. 자녀의 주홍글씨를 없애기 위해 기꺼이 수백만원에서 1000만원이 넘는 변호사 수임료를 지불하는 가해자 부모가 많기 때문이다.

이들이 가장 기본적으로 활용하는 ‘기술’은 심의위의 징계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이다. 법원이 징계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해 주면, 징계 취소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징계를 미뤄둘 수 있기 때문이다(22쪽 표 참고). 최근 3년간 법원의 집행정지 인용률은 약 60%로 다른 사건들에 비해 높은 편이다. 원래는 억울하게 징계를 받은 이들을 위해 마련된 제도지만, 실제로는 이를 악용해 졸업 때까지 시간을 끄는 경우가 훨씬 많다.

집행정지가 인용되면 가해자는 징계 취소 재판이 끝날 때까지 아무런 조치도 받지 않고 학교에 그대로 머무를 수 있다. 해를 넘기고서야 비로소 1심 선고가 나오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피해자는 학기가 끝날 때까지 가해자와 한 공간에 머무르게 된다. 시사저널이 지난 1년간 학폭 가해자의 징계 취소 소송 판결문 가운데 20건을 살펴본 결과, 1심 선고까지 평균 1년 넘게 걸린 것으로 확인됐다. 항소심에 대법원 판결까지 이어지면 3년까지 걸리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렇게 징계 처분을 미뤄둔 채 수년간 징계를 취소해 달라고 소송을 벌이지만, 최근 3년간 이들의 승소율은 17.5%에 그친다. 징계 취소 그 자체 못지않게 시간끌기 목적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학폭 이슈가 사회적으로 민감해지면서, 징계의 경중과 관계없이 무조건 소송전에 돌입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면사과(1호)~교내봉사(3호)와 같은 경징계는 이행만 하면 생활기록부에 남지도 않는데, 이 또한 변호사를 선임해 불복 절차를 밟는 비중이 상당하다.

학교폭력 전문 노윤호 변호사는 “징계가 경미한 만큼, 조금 더 싸워보면 징계가 아예 취소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부모들의 기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사회 분위기상 학폭 가해자로 일단 낙인찍히면 언제 어디서 발목을 잡힐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일단 무조건 불복하고 끝까지 싸우려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가해자 측 두려움은 더 ‘비싼’ 변호인을 더 ‘빨리’ 선임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들어 징계가 정해지는 심의위 과정부터 변호인의 밀착 조력을 받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심의위원들이 징계를 결정할 때 가해자의 ‘반성’과 피해자와의 ‘화해’를 중점적으로 보는 만큼, 선임된 변호인은 이에 대해 집중 코치한다. 다만 반성문 작성을 지도하고 피해자에게 합의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과정에서 사안의 본질을 의도적으로 흐리려는 시도가 자주 이뤄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윤호 변호사는 “피해 학생 측엔 한 번도 직접 사과하지 않으면서 심의위에 반성문을 지속적으로 제출하는 경우도 있다. 누구를 대상으로 반성하고 사과하는 건지 황당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가해자와 한 공간 머물며 ‘맞신고’ 당하는 피해자들

#. 중학교 2학년 E양은 같은 반 F양을 학교폭력 가해자로 신고했다. 다른 친구들이 모두 볼 수 있는 SNS에 자신을 향한 패륜적인 욕설을 지속적으로 올리며 따돌림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F양은 E양의 사생활에 대한 허위 사실을 퍼트렸고, 수업시간 중에도 폭언을 쏟아내 E양을 자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이러한 학급 분위기 속에서 E양에게 우호적이었던 친구들도 학기 시작 한 달 만에 모두 그에게서 돌아서버렸다.

E양의 신고 후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가 열렸고 F양의 가해 행위에 대한 심의가 이어졌다. 그런데 징계가 내려지기 전 F양의 부모와 변호인이 돌연 E양과 E양의 부모를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고소했다. E양이 다른 친구에게 학폭위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해 F양이 정신적 피해를 보게 됐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검찰은 명예훼손을 인정하지 않았고 심의위는 F양에게 서면사과와 학급 교체 징계 처분을 내렸다. 이에 F양 측은 곧장 검찰의 결정에 불복해 항고했고, 징계에 대해서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걸었다. 얽히고설킨 법정 싸움은 1년6개월 이상 지속됐고 E양은 학년이 올라갈 때까지 F양으로부터 어떠한 사과도 받지 못했다.

최근 자주 활용되는 가해자 측의 또 다른 ‘기술’은 ‘맞신고’다. 말 그대로 자신이 신고당했을 때 곧장 피해자를 함께 신고해 ‘쌍방 사건’으로 만드는 것이다. 피해자가 지인에게 학폭위 사실을 누설했다며 명예훼손으로 신고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가해자의 폭력을 막는 과정에서 신체적 충돌이 있던 점을 들어 ‘맞학폭’으로 거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신고한 후 서로 취하하자는 방향으로 피해자에게 합의를 시도하는 것이 이들의 전략이다.

쌍방 사건이 된 경우 학교는 중립 의무를 지켜야 하므로 피해자 보호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 측이 교사와 학교를 중립 의무 위반으로 고발하는 사례도 빈번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피해자에게 상당한 2차 피해를 입힐 우려가 크다는 지적을 받는다. 노윤호 변호사는 “일단 쌍방 사건이 돼버리면 주변 학생들부터 ‘피해자도 무슨 잘못을 하긴 했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바라보게 된다. 심의위에서도 쌍방 신고일 경우 가해자에게 징계를 내릴 때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 점 때문에 가해자 변호인들이 피해자를 바로 맞신고하라고 조언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즉각 학급 교체하고 피해자에게 소송 상황 알려야”

오랜 싸움 속에서 피해자를 더욱 견디기 힘들게 하는 건 법적으로 다투는 기간 동안, 가해자와 분리 조치가 사실상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2021년부터 ‘가-피해자 즉시 분리 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피해자의 학폭 신고 직후 ‘최대 3일’까지만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할 수 있게 돼있다. 법원에서 징계 취소 관련 절차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더는 추가 조치를 내릴 수 없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리될 수 있는 기간은 짧은 데 반해 사건을 처리하는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당장 전국 심의위부터 ‘과부하’에 걸려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전국 심위의에 접수된 심의 가운데 35%가 교육부 지침인 ‘4주 이내 심의’를 넘긴 것으로 확인됐다. 학폭 전문 이보라 변호사는 “교육지원청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학폭 신고가 매일 한 건 이상씩 접수돼, 처리해야 할 건이 심각하게 밀려 있는 곳도 여럿이다. 심의를 기다리며 피해자는 가해자와 계속 같은 교실에서 생활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심의를 마친 후에도 징계 결과에 불복한 가해자의 행정소송까지 1년 이상 이어진다. 가해자와의 생활을 끝내 버티지 못하고 피해자가 먼저 학교를 떠나는 경우도 다반사다.

전문가들은 가해자 징계에 대한 집행정지가 내려진 동안에도 이들을 분리시키는 조치가 보완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2021년 국회 입법조사처에서도 “(가해자가) 해당 학교에 남아 법적 쟁송을 벌이는 경우, 피해 학생이 위험과 불안에 처하게 되므로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요구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보라 변호사는 심의위 절차가 개시되면 즉각적으로 학급 교체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다른 층에만 가해자를 머물게 해도 피해자로선 상당히 안심할 수 있다”며 “설령 심의위에서 학폭 무혐의가 나온다 해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학급에 머물기 어려운 너무 불편한 사이가 된다. 여러모로 즉각적인 학급 교체가 효과적인 대책”이라고 말했다.

또한 학년을 올라가거나 졸업한 후에도 가해자의 ‘결말’을 피해자에게 확실하게 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현재 가해자의 불복 소송 과정을 피해자들이 제대로 통보받지 못하고 있다고도 지적한다. 피해자에게 이를 고지하는 것이 의무가 아닌 탓에, 각 교육지원청 재량에 따라 피해자에게 전달될 수도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피해자가 소송이 다 끝나고 뒤늦게 결과를 알게 되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한 피해자는 가해자에 대한 징계가 계속 이행되지 않자 교육지원청에 먼저 문의했고, 그제야 가해자의 징계 집행정지 신청이 인용돼 징계가 연기된 사실을 확인한 바도 있다.

노윤호 변호사는 가해자가 진행하는 불복 소송 절차를 피해자에게도 의무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은 가해자 측 이야기만 듣고 법원이 징계 집행정지나 취소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가해자의 불복 과정에서 피해자에게도 직접 법원에 자신의 피해 사실과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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