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건강” vs “국민 편익”…속내는 의료산업 주도권 쟁탈전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3.05.08 07:35
  • 호수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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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냐 종료냐’ 갈림길에 선 비대면 진료, 국회 논의는 ‘평행선’
의료계와 산업계 입장 차이 속 ‘플랫폼 종속 여부’ 두고 힘겨루기

원격진료는 한국에서 오랫동안 ‘판도라의 상자’와 같았다. 산업계는 그 상자를 열면 ‘혁신의 길’이 담보된다고 했지만, 의료계는 ‘국민 건강’에 심대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맞섰다. 그렇게 영원히 상자 안에 갇혀 있을 것 같던 원격진료는 코로나19 유행으로 단번에 시행됐다. 수십 년간 열리지 않았던 원격진료라는 판도라의 상자는 코로나19 국면 속 ‘비대면 진료’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국민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정부는 2020년 2월 코로나19 위기 경보 단계가 ‘심각’으로 격상되자 유·무선 전화나 화상통화를 활용한 비대면 진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지난해 12월까지 3661만 건, 1379만 명을 상대로 비대면 진료가 이뤄졌다. 코로나19 진료를 제외한 비대면 진료 이용자도 크게 늘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비대면 진료 이용자 수는 205만 명에 달했다. 2020년(84만 명)의 2.4배나 된다. 국민에게 비대면 진료가 점차 익숙해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진료, 수납 등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 ⓒ시사저널박은숙<br>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진료, 수납 등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 ⓒ시사저널박은숙<br>

세계보건기구(WHO)는 곧 ‘코로나19 국제공중보건 비상상태’를 해제할 계획이다. 한국 정부도 이에 발맞춰 코로나19 단계를 ‘심각’에서 ‘경계’ 이하로 낮추면 비대면 진료의 법적 근거가 사라진다. 정부는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추진 중이고, 국회에도 5개 법안이 발의돼 있다. 하지만 정부의 제도화 추진은 국회에서 의료법이 개정돼야만 가능하다. 국회 논의는 아직 의료계와 산업계의 평행선 입장 차이로 공전 중이다.

쟁점은 비대면 진료의 ①허용 범위(초진까지냐 재진만이냐)와 ②대상(비대면 진료 대상을 만성질환으로 한정하느냐 아니냐)이라는 두 갈래다. 국회에서의 논의도 아직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만약 국회에서 합의 타결이 무산돼 법적 근거가 사라질 경우 시범사업으로 비대면 진료를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비대면 진료 제도화는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 중 하나다. 복지부 입장에선 반드시 추진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다만 이 경우 ‘법률을 무력화하는 입법권 침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는 얘기도 나온다.

비대면 진료를 두고 의료계와 산업계가 합의점 도출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이번 합의에 향후 의료산업의 주도권이 달려 있다는 인식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현재 의료계와 산업계는 각각 ‘국민 건강’과 ‘국민 편익’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뜨거운 여론전에 나서고 있다. 취재에 따르면 의료계는 비대면 진료에서 초진이 허용되면 병원을 고르는 선택의 주도권이 플랫폼 기업에 대거 넘어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환자가 온라인에서 비대면 진료가 가능한 의료기관을 검색할 때 플랫폼이 ‘가장 리뷰(평가)가 좋은 병원’ ‘가장 가까운 곳’ 등의 조건을 달아 보여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의료계는 특히 의료산업 자체가 플랫폼 기업에 종속될 것을 우려한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안에 가맹 병·의원이 많아질수록 플랫폼의 시장 장악력도 커져 갑을 관계가 형성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여기에 배달 플랫폼에서 하듯 광고료를 더 많이 낸 병·의원부터 소비자에게 보여주는 것은 공공 서비스인 의료산업에 맞지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의료계가 비대면 진료의 재진만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절대 고수하는 이유도 의료산업 주도권 쟁탈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내세우는 구호 아래 지켜야 할 이익이 보인다. 재진만 허용할 경우 소비자의 병·의원 선택은 대부분 ‘초진한 병·의원’으로 한정된다. 이렇게 되면 비대면 진료 플랫폼들은 확실한 주도권을 쥐기 어렵고, 뚜렷한 수익 구조를 만들기도 어려워진다. 반대로 병·의원들은 플랫폼에 종속되는 걸 피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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