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국가 중 한국만 막혀 있는 ‘비대면 진료’ 이제는 열어야 한다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3.05.08 10:05
  • 호수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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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한시적 허용된 국내 원격진료, 다시 ‘불법’화될 수도
정부·국민·의료계 필요성엔 공감…초진·재진 등 우선 숙제부터 풀어야

‘환자가 전화나 영상으로 진료받으면, 의사의 처방전은 동네 약국으로 가고 택배업체는 약을 환자 집으로 배달한다.’ 이런 비대면 진료 행위는 현재 국내에서는 불법이다. 의사가 환자를 직접 만나 진료해야 합법이다. 그런데 정부는 2020년 코로나19가 유행하자 병원 감염 등을 고려해 의료법을 개정하고 비대면 진료를 한시적으로 합법화했다.  

이후 비대면 진료 수요가 증가했다. 보건복지부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가 처음 허용된 2020년 2월24일부터 올 1월31일까지 전국 2만5697개 의료기관에서 1379만 명이 3661만 건의 비대면 진료를 받았다. 이 중에서 코로나19 재택치료를 제외하고도 지난 3년 동안 약 400만 명이 약 700만 건의 비대면 진료를 받았다. 이용자, 진료 건수, 의료기관 모두 증가했고 단순 실수 외에 큰 의료 사고는 없었다. 비대면 진료를 다시 이용할 의향은 87.9%, 만족도는 77.8%로 높았다. 

2020년 9월30일 충북 보은군 코로나19 생활치료센터에서 의료진이 스마트폰으로 환자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비대면 진료를 시연하고 있다. ⓒ뉴시스

그러나 비대면 진료가 계속 유지될지는 불투명해졌다. 비대면 진료는 감염병 위기 대응 단계를 ‘심각’으로 유지하는 동안에만 ‘한시적으로’ 허용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감염병 위기 대응 단계를 ‘경계’로 낮추면 비대면 진료는 코로나19 유행기 이전처럼 불법이 된다. 시점은 5월이 유력하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해제하면 우리도 감염병 위기 대응 단계를 낮출 수 있다.

원격·비대면 진료는 지역 간 의료 서비스 격차를 해소하고 환자의 편의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큰 병원과 실력 있는 의사가 수도권에 몰려 있는 우리나라는 지역 간 의료 서비스 격차가 심한 국가로 평가받는다. 비대면 진료가 합법화되면 지방 환자가 수도권에 있는 의사의 진료를 받기 위해 먼 거리의 병원을 찾아야 하는 불편과 수고를 덜 수 있다. 교통비와 시간을 절약하므로 환자의 의료비 부담도 줄어든다. 그래서 비대면 진료를 현행처럼 유지하자는 내용의 대국민 서명운동에 11만 명이 참여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비대면 진료 지키기 대국민 서명운동’에 4월14일부터 24일 까지 총 11만2564명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4월21일에는 10만 명 넘게 참여한 서명운동 결과를 대통령실에 전달했다.

역대 정부도 대부분 비대면 진료 합법화를 추진했으나, 의료계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런데 지난 3년 동안 비대면 진료의 성과가 좋게 나타나자 정부와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2월 의원급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비대면 진료 실시에 합의했다. 보건복지부는 비대면 진료를 도서·벽지 환자 등 의료 취약지·사각지대 환자를 위해 우선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또 초진(첫 진료) 환자보다 재진 환자를 대상으로 적용하고 상급 병원보다 의원급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비대면 진료를 허용할 방침이다. 정부는 시범사업으로 비대면 진료를 이어가고 6월까지 비대면 진료를 제도화할 계획이다. 국회에서도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4월24일 국회에서 “의료법 개정이 늦어지면 보건의료기본법에 따라 격오지 거주자, 노인, 장애인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2022년 1월19일 경기도 성남시 성남시의료원 재택치료상황실에서 의료진이 코로 나19 재택치료 환자와 비대면 진료를 하고 있다. ⓒ뉴시스

비대면 진료 범위 놓고 ‘초진’과 ‘재진’ 갈등

현 정부는 시범사업 후 비대면 진료를 정식 도입할 계획이지만, 비대면 진료 범위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문제가 남았다. 의료계는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재진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을 비대면 진료 범위로 주장한다. 편리하다는 이유로 환자의 안전성을 등한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령 기본적인 진단인 청진·촉진·문진 중 비대면 진료는 문진만 가능해 초진 환자는 진단에서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또 의약품 선택과 오남용에 대한 우려도 있다. 이와 같은 잘못된 진단과 처방으로 의료 사고가 발생할 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져 환자만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의사단체와 약사단체는 비대면 진료의 범위를 갑자기 확대하는 데 회의적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해 7월 “비대면 진료는 대면 진료를 대신할 수 없으며 단지 보조적 수단으로 활용돼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대한내과의사회도 4월24일 대한의사협회에 보낸 공문에서 “비대면 진료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의료전달체계 왜곡을 막기 위해 인증된 1차 의료기관과 의료진이 재진 환자만을 대상으로 한정된 지역과 제한된 인원 안에서 진료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약사회는 4월24일 ‘비대면 진료 및 시범사업에 대한 대한약사회 입장’을 내고 “약사회는 비대면 진료를 반대한다. 충분한 논의와 준비 없이 시행됨으로써 많은 부작용과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으며, 특히 산업적 편익과 편의성으로만 판단하고 있으므로 매우 잘못된 정책”이라고 밝혔다. 

같은 의료계 내부에서도 비대면 진료 초진을 허용해야 한다는 시각이 있다. 의사 139명은 4월24일 “국민이 원하고, 의료인도 원하는 비대면 진료 현행 제도를 꼭 지켜 달라”는 내용을 골자로 한 탄원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대면 진료와 다를 바 없이 양심과 사명감을 갖고 마치 눈앞에 마주한 환자를 대하듯 진료했다. 비대면 진료에는 초진을 금지하겠다는 법안이 발의돼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역행하는 의료 서비스의 퇴보”라고 밝혔다.

2022년 2월17일 서울 중구 보아스 이비인후과병원에서 오재국 원장이 전날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와 전화로 비대면 진료를 하고 있다. ⓒ뉴시스
2022년 2월17일 서울 중구 보아스 이비인후과병원에서 오재국 원장이 전날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와 전화로 비대면 진료를 하고 있다. ⓒ뉴시스

초·재진 아닌 ‘질환’과 ‘환자’ 중심의 기준 필요

비대면 진료를 중개하는 플랫폼 업체들도 비대면 진료 초진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스타트업 단체인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산하 원격의료산업협의회(원산협)는 “그동안 초진이 99%에 달하는데 재진만 허용하는 건 말이 안 되고 기업들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G7 국가(미국·일본·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 중 (이탈리아를 제외한) 6개 국가가 초진을 허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위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에 따르면 별도의 제한 없이 초진이 가능한 국가는 7개국 중 캐나다뿐이다. 나머지 국가는 조건부 초진을 시행 중이다. 프랑스는 재진이 원칙이지만, 주치의 의뢰서가 있는 경우에만 초진이 가능하다. 영국은 주치의, 일본은 단골 의사만 초진할 수 있다. 미국은 2024년 12월31일자로 비대면 진료 초진을 허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재진에 한해서만 비대면 진료를 허용한다.

의료 현장에서는 초진이냐, 재진이냐의 기준은 별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진은 같은 병으로 같은 병원에서 90일 이내에 진료받는 것을 말한다. 만성질환자는 재진이 기본인데, 현행법상 90일 이상 넘기거나 약간 다른 증상이 생겨 다른 병명으로 병원을 찾으면 초진이 된다. 이처럼 재진 규칙이 까다롭고, 재진이라도 꼭 대면 진료가 필요한 경우도 있어 질환을 중심으로 비대면 진료의 기준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비대면 진료 허용 기준을 초·재진으로 하는 것보다는 병의 증상과 질환의 종류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정하자는 것이다. 가벼운 열과 기침이 나는 감기나 작은 부위의 피부 발진 등은 초진을 허용해 편의성을 높일 수 있다. 특히 아이들이 심야에 아플 경우 당번 병원들이 비대면으로 상태를 확인한 후, 대면이 필요한지 판단해 주면 무작정 소아청소년과나 응급실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된다. 

또 정작 환자를 위한 배려가 없다는 비판도 있다. 예컨대 디지털 환경에 낯선 환자는 원격진료에서 소외될 수 있다. 병원을 장기간 이용하는 환자는 젊은 사람보다 나이가 있는 사람이다. 특히 고령자가 늘고 있어 원격진료 소외 주민은 증가할 전망이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가을 900명을 상대로 온라인 조사를 한 결과 농어촌이나 중소도시보다 대도시 환자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연령층이 비대면 진료를 더 활발히 이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비대면 진료비 증가도 풀어야 할 숙제

비대면 진료비가 증가하면 국민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로 코로나19 기간에 비대면 진료 수가를 일반 진료의 130%로 인정해 줬다. 의료계는 향후 수가를 150~200%로 올려 달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여기에 플랫폼 스타트업도 끼어들면서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조규홍 장관은 4월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출석해 비대면 진료의 수가에 관한 질문을 받고 “비대면 진료에서 의료인의 수고가 더 드는 것이 사실”이라며 비대면 진료에 일반 진료보다 더 높은 수준의 수가를 적용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면서도 “재정도 봐야 하고, 국민의 의료 접근성도 봐야 하니 합리적인 수준으로 조정하도록 하겠다. 의료인들의 수고가 늘어나면 조정이 필요하다고 한 것이지, 수가를 올릴지 낮출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결국 비대면 진료를 하는 의료진의 수고가 늘어난 것으로 볼지, 줄어든 것으로 볼지가 관건이다. 그런데 진료에 드는 시간은 비대면이나 대면이나 비슷하다는 최근 연구 결과가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선택실험을 이용한 비대면 의료 소비자 연구’ 보고서를 보면 비대면 진료 경험자의 45.8%는 진료 시간이 5분 미만이었는데, 이는 대면 진료의 같은 답변 비율(56.9%)보다 조금 낮은 수준이었다. 

외국은 비대면 진료에 대한 재진료를 낮췄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정책환경이 유사한 국가의 비대면 진료 수가’ 자료를 보면, 주요국은 비대면 진료의 수가를 대면 진료와 비슷한 수준으로 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 의원은 4월24일 “외국은 (비대면 진료에 대해) 재진료를 더 낮췄다. 심지어 같은 상병에 같은 성분의 약을 투약할 때는 (처방전) 리필을 활용해 약국에 맡긴다. 외국처럼 (수가를) 낮게 해야 한다. 수가를 올린다고 하면 누가 동의하겠냐”고 지적한 바 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비대면 진료 필수 조건 연구’ 보고서도 “대부분 국가에서 비대면 진료와 대면 진료의 수가를 동등하게 적용하고 있고, 일부 국가에서만 비대면 진료의 수가가 낮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보고서는 “한국이 비대면 진료를 제도화할 경우 낮은 대면 진료 수가 수준, 비대면 진료 의료 시스템 구비 및 관리, 운영 비용, 위험 관리 등을 고려해 비대면 진료 수가를 대면 진료보다 높게 책정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외국은 비대면 진료를 어떻게 하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비대면 진료 자체를 금지한 국가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국회입법조사처의 ‘비대면 진료 관련 해외 주요국 입법례’에 따르면 미국은 1997년 ‘균형재정법’을 개정해 의료 전문가가 부족한 농촌 지역의 원격진료 행위에 대해 보험급여를 제공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전화·문자메시지·이메일·비디오 등 다양한 방식의 원격진료가 인정된다. 

일본은 낙도와 산간벽지 주민의 의료 접근성을 향상하기 위한 비대면 진료를 1997년 법제화했다. 이후 3차례 개정을 통해 원격진료 허용 범위가 점차 확대됐다. 2015년 원격진료를 전면 허용했고 2018년에는 원격진료에 건강보험도 적용했다. 프랑스는 2009년 원격진료와 관련한 법적 규정을 마련했고 2018년 합법화했다. 프랑스에서 건강보험 가입자는 누구든지 모든 진료 과목에서 원격진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원격진료에 필요한 장비와 자격을 갖춘 의사는 전공 분야에 상관없이 원격진료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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