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으로 금융 경계선도 무너뜨린 애플의 야심 [권상집의 논전(論戰)]
  • 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 (ls@sisajournal.com)
  • 승인 2023.05.13 12:05
  • 호수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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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4.15% 저축계좌 출시하며 금융업 진출 본격화
국내 기업도 애플의 상상력과 파괴력 배워야

세계 최고의 혁신 기업은 어디일까. 소비자나 전문가들의 시각이 각각 달라 평가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대체적으로 애플을 꼽는 데 주저하는 이는 드물다. 애플은 세계 100대 브랜드 순위를 매기는 인터브랜드 조사에서 10년째 브랜드 가치 1위를 유지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의 역량 평가 척도인 시가총액 기준으로도 애플은 지금까지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애플의 시가총액은 2조7500억 달러에 달한다. 

애플의 근거리무선통신(NFC) 결제 서비스 ‘애플페이’ 개시일인 3월21일 서울 용산구 현대카드 라이브러리 건물에 애플페이 광고물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애플의 근거리무선통신(NFC) 결제 서비스 ‘애플페이’ 개시일인 3월21일 서울 용산구 현대카드 라이브러리 건물에 애플페이 광고물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금융 영역으로 확장하는 애플 제국

애플의 시가총액과 브랜드 가치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 그만큼 시장에서 애플에 대한 기대가 높기 때문이다. 1976년 설립돼 47년이 지난 회사지만 여전히 다수의 소비자와 전문가에게 애플은 젊고 혁신적인 기업으로 각인돼 있다. 아이팟과 아이폰 등으로 MP3와 모바일 산업의 변혁을 일으킨 애플이 최근 주목받는 이유 역시 산업의 경계선을 또다시 허물며 혁신을 주도하는 데 있다. 이번엔 금융업이다.

애플이 저축계좌 상품을 내놓을 것이라고 예측한 이가 적진 않았다. 이미 애플은 10년 전부터 금융업에 대한 경계선을 조금씩 허물며 진격해 왔다. 2012년 애플지갑 월렛, 2014년 애플페이, 2017년 애플캐시, 2019년 애플카드 등을 내놓으며 은행과 금융업의 핵심 영역인 카드, 송금, 대출 상품을 연이어 출시하고 있다. 마지막 연결고리는 저축상품이었고 애플은 지난 4월 드디어 4.15%의 저축계좌 상품을 공개했다.

주목할 점은 세 가지다. 첫째, 다른 은행과 달리 수수료가 없다. 둘째, 일반 은행이 요구하는 최소 예금 조건도 없다. 셋째, 미국뿐 아니라 국내를 포함해도 가장 높은 4%대 금리를 제공하고 있다. 사기업이 저축상품을 내놨는데 사회적 반발은커녕 시장으로부터 혁신과 변화에 대한 기대만 받고 있다. 애플이 저축예금을 내놓는다는 기대감이 생기자 미국의 주요 은행 주가는 모두 하락했다. 애플의 파워는 여기서 나온다.

애플과 구글의 전략적 방향성은 조금 다르다. 구글은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미래자동차 등 첨단산업에서 압도적인 기술력과 특허로 시장을 장악한다. 이에 비해 애플은 기존 산업의 영역을 무너뜨리고 전통산업인 제조업, 금융업뿐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등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가리지 않고 침범한다. 애플은 기존 산업의 강자들이 안일함에 빠져 고객의 신뢰를 저버리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공략한다.

참고로, 지난 4월까지 미국 금융기관으로부터 고객이 인출한 자금은 80조원에 육박한다. 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도 미국 은행이 도산한다는 건 전통적 강자들이 고객들의 불신 대상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 평균 저축예금의 11배가 넘는 고금리로 애플이 시장에 진입하자 당장 애플의 협력사인 골드만삭스도 긴장 모드에 들어갔다. 애플의 금융업 진출을 도운 골드만삭스는 애플의 시장 잠식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계의 마피아라고 불리는 골드만삭스까지 긴장하게 만드는 애플의 속내는 무엇일까. 애플의 글로벌 결제 및 커머스 담당 부사장인 제니퍼 베일리는 애플의 금융업 진출을 설명해주는 핵심 인사다. 그녀는 지난 3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금융 앱 그리고 은행에 갈 필요 없이 아이폰과 애플워치로 돈을 쓰고 저장하는 원스톱 금융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애플은 노키아를 무너뜨리듯 은행을 노리고 있다. 물론 애플이 금융 분야를 쉽게 장악하긴 어렵다. 애플은 모바일 산업처럼 금융산업에 관해서도 강력한 통제력과 지배적 리더십을 원하지만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는 금융업을 철저히 규제 대상으로 고려하고 있다.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와 감시는 미국과 한국의 공통점이다.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 기기와 서비스 판매는 용이할 수 있지만 예금과 후불결제 시스템 등 애플의 금융상품은 모두 규제와 통제 대상이다.

애플의 금융업 진출에 대한 규제와 상황 요인을 거론하며 안도하기에 앞서 우리가 애플의 전략으로부터 배워야 할 지점이 있다. 애플은 아이팟을 시작으로 디지털과 콘텐츠 시장에 스며들었고 아이폰이라는 디바이스를 토대로 저축계좌와 자체 결제 시스템을 연결하며 고객들에게 원스톱 종합 솔루션(One-stop Total Solution)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애플 지지자들은 늘 이에 열광한다. 이와 관련해 필자가 2004년 겪은 모 은행의 최종 면접 경험을 소개한다. 최종 면접에서 자사의 경쟁 상대가 누구인가라는 면접위원의 질문에 다른 지원자들은 모두 동종 업계 은행을 언급하며 면접을 순조롭게 진행했다. 그러나 당시 필자 혼자 첨단기술 기업을 얘기했다가 면접위원인 은행 임원으로부터 핀잔을 들어야 했다. 금융의 본질도 모르고 엉뚱하게 이종 업계를 얘기했다며 공부를 다시 하라는 훈계까지 들었다.

 

애플과의 협력 소식에 주가 급등락

19년의 시간이 흘러 2023년, 애플이 저축계좌 상품을 공개하며 빅테크 기업은 이제 핀테크(Fin-Tech)에서 한발 더 나아가 테크핀(Tech-Fin)으로 금융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있다. 기술기업의 금융업 진출이 아닌 첨단 기술기업이 고객 정보와 기호를 파악, 최적의 금융상품을 설계해 금융을 지배하는 모델을 꿈꾸고 있다. 금융의 본질과 동종 업계 분석을 중요하게 생각한 그 임원은 이를 예측하지도 꿈꾸지도 못한 것이다.

애플의 힘은 늘 상상력과 파괴적 혁신으로 산업의 경계선을 재해석하고 기존 제품과 서비스의 개념을 재정의하는 데 있다. 2년 전, LG전자와 현대자동차는 애플과 전기차 등의 협력을 검토한다는 소문 하나로 주가가 급등했다. 그러나 애플과의 협력이 성사되지 않았다는 소식과 함께 곧바로 기업의 주가 역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애플의 협력 제의 한마디에 국내 기업의 주가가 출렁거렸던 사례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삼성전자를 포함한 국내 기업의 글로벌 위상 역시 이전에 비해 대폭 향상됐다. 그러나 동종 업계의 틀과 기존 산업의 영역 내에서 움직이는 국내 기업의 상상력과 혁신 역량은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다. 기존 제품과 서비스를 재해석하고 끊임없이 정형화된 산업의 경계선을 무너뜨리는 기업이 혁신을 창출하고 시가총액과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는 시대다. 변혁의 시대, 상상력이 제로에 수렴하는 기업은 쇠퇴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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