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 ‘소통’ ‘탈권위’ 약속했지만 1년 만에 대부분 실종 [尹정부 1년]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3.05.10 09:4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통령실, ‘10가지 새로운 변화’ 발표했지만 절반도 지키지 못했다
지난해 11월18일 윤석열이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도어스테핑을 진행하고 있다. 이 날을 마지막으로 도어스테핑은 중단됐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18일 윤석열이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도어스테핑을 진행하고 있다. 이 날을 마지막으로 도어스테핑은 중단됐다. ⓒ연합뉴스

‘용산시대’ 개막 한 달을 맞은 지난해 6월9일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한 달, 새로운 10가지 변화’라는 제목으로 그간의 성과를 브리핑했다. 전 정부와 비교해 첫 한 달 동안 이뤄낸 상징적인 변화를 대통령실 스스로 꼽아 발표한 것이다.

대통령실이 내세운 10가지 성과는 대부분 ‘탈(脫)권위’와 ‘소통 강화’로 요약됐다. 윤 대통령이 당초 용산시대 개막의 이유로 ‘대국민 소통’을 강조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로부터 11개월이 지나 집권 1년을 꽉 채운 윤 대통령은 과연 이 10가지 변화 가운데 얼마나 지키고 있을까.

2022년 6월9일 대통령실이 발표한 '윤석열 대통령 취임 한 달, 새로운 10가지 변화' ⓒ시사저널 양선영 디자이너
2022년 6월9일 대통령실이 발표한 '윤석열 대통령 취임 한 달, 새로운 10가지 변화' ⓒ시사저널 양선영 디자이너

시사저널이 확인한 결과, 현재 이들 중 절반 이상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등 대부분 실종된 것으로 파악됐다.

대통령실이 성과로 가장 앞세웠던 것은 ①청와대를 국민 품으로였다. 윤 대통령은 계획대로 취임과 동시에 청와대를 개방했고 관광객을 들였다. ‘제왕적 대통령’에서 탈피하겠단 선언이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이는 ‘절반’의 실천에 그치고 있다.

2000억원의 경제효과를 장담했던 것과 달리 관광객은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이외 구체적인 청와대 활용 방안도 아직 불명확하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 부부가 행사를 위해 2~3일에 하루 꼴로 청와대 영빈관을 사용하면서 내부 관람이 자주 제한되고 있다. 이 때문에 대통령실 이전의 실효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용산시대의 상징과도 같은 ②출근길 도어스테핑은 중단된 지 6개월에 이른다. 대통령실은 “역대 대통령과 비교 불가능한 소통으로 ‘참모 뒤에 숨지 않겠다’는 약속을 실천했다”고 자평했지만 그 약속은 금세 멈춰버렸다.

윤 대통령이 용산 첫 출근 날부터 야심차게 진행한 도어스테핑은 지난해 11월18일을 끝으로 지금까지 자취를 감추었다. 윤 대통령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들이 누적됐고, MBC와의 갈등이 분출한 영향으로 해석됐다. 도어스테핑이 이뤄지던 공간엔 단단한 가림벽만이 버티고 있다.

대통령실은 “대통령 부부의 일상을 시민들이 직접 목격하는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냈다고 치켜세웠다. 수시로 ③시민 곁으로 다가가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실제 임기 초 윤 대통령 부부는 자주 깜짝 주말 나들이에 나서곤 했다. 유명한 성북동 빵집이나 영화관을 찾았고, 반려견과 한강변을 산책하거나 백화점에서 신발 쇼핑을 하는 모습도 노출했다.

취지는 좋았지만 번번이 ‘교통체증’ ‘특활비’ 등 논란에 부닥쳤다. 시민들 일상에 녹아들려는 시도가 되레 시민들에게 불편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어느 순간부터 ‘시민과 어울리는 깜짝 소통 행보’는 사실상 답보 상태가 됐다.

④시민에게 대통령 집무실을 개방하고 ⑤청사 앞마당을 시민 광장으로 만들어 용산 공간을 공유하겠다는 약속은 어느 정도 지켜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천안함 희생자 유가족을 비롯해 올해 초 ‘칠곡할매글씨꼴’을 만든 칠곡 할머니들 등 시민들을 종종 집무실로 초청해 면담을 가졌다. 지난 4일엔 ‘용산어린이정원’을 개방하면서 “대통령실 집무실 앞마당을 어린이들에게 내주겠다”는 약속을 실현했다. 다만 환경단체들은 이곳의 토지오염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채 졸속으로 문을 열었다는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저와 같이하는 회의는 프리스타일로 편하게 합시다.” 윤 대통령은 취임 첫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참모들에게 복장 자유‧형식 자유를 주문했다. 대통령실도 이를 내세워 ⑥가까워진 대통령과 비서진을 주요한 변화로 꼽았다. 단순히 물리적인 거리를 가까이 한 것을 넘어 ‘국무회의에서 장관이 직접 특강과 토론을 진행하는 등 정형화된 소통 형식을 탈피해냈다’는 것이었다.

넥타이를 풀어 던지고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 회의 모습은 이내 사라졌다. 참모들은 다시 복장을 가다듬었다. 회의에선 윤 대통령의 발언이 주를 이뤘다. 최근 조선일보 등에 따르면, 윤 대통령에겐 ‘59분 대통령’이라는 별명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회의 1시간 중 59분 동안 윤 대통령이 발언을 한다는 의미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0월25일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국회 본청에 도착해 이동하고 있다. 그 뒤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윤 대통령의 순방 중 국회 무시 발언을 사과하라며 침묵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0월25일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 본청에 도착, 이동하고 있다. 그 뒤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윤 대통령의 순방 중 국회 무시 발언을 사과하라며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 통합과 야당과의 협치를 내세운 ⑦ 파격적인 통합 행보⑧취임 6일 만에 시정연설 성과는 오히려 윤 대통령의 가장 약한 부분으로 꼽히고 있다. 당시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요청으로 여당 의원 전원이 5‧18 기념식에 참석”하는 등 윤 대통령이 강력한 통합 의지를 표명했다고 내세웠다. 하지만 지난해 말 윤 대통령은 ‘5‧18 북한 개입 가능성’을 주장한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을 임명했다.

윤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빠른 취임 6일 만에 국회를 찾아 시정연설을 했다. 연설 후 여야 국회의원 전원과 악수하며 인사를 나눴다. 대통령실은 이 점을 성과로 내세웠다. 하지만 현재 윤 대통령은 야당이 주도하는 국회와 극한 대치를 벌이고 있다. 야당 지도부와의 만남은 전무하고, 야당이 추진하는 입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9일 취임 1년 소회를 밝히며 “거야 입법에 가로막혀 필요한 제도를 정비하기 어려웠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대통령실이 또 한 번 국회와의 소통을 윤 대통령의 성과로 꼽을 가능성은 당분간 적어 보인다.

윤 대통령은 취임 사흘 만에 집무실과 한 건물에 위치한 기자실을 직접 방문했다. “국민이 궁금해하면 언제든 기자들과 만나겠다”고 공언했다. 대통령실은 즉각 ⑨기자실부터 방문한 대통령을 성과로 내세웠다. 대통령 비서진들이 수시로 기자들 앞에서 브리핑을 하는 점도 높게 자평했다.

하지만 이 또한 현재 긍정적으로만 평가하긴 어려워 보인다. 윤 대통령이 지난 1년 간 기자실을 방문한 건 이날과 지난 추석 연휴, 단 두 차례에 그쳤다. 윤 대통령 및 김건희 여사와 관련해 보도한 기자‧언론사를 직접 고발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대통령실이 마지막으로 꼽은 ⑩역대 가장 빠른 한‧미 정상회담과 그로 인한 한‧미 동맹 강화는 비교적 잘 지켜지고 있는 성과로 보인다. 양국 정상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단 11일 만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하면서 처음 성사됐다. 이후 윤 대통령은 줄곧 한‧미 동맹을 강조해 왔으며, 최근 미국 국빈 방문으로 이를 더욱 공고히 했다. 미국과의 ‘워싱턴 선언’ 발표 등이 성과로 인정되면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에 보탬이 되고 있다.

용산시대 초반 이뤄낸 변화들이 다수 중단되거나 철회되면서 향후 국정의 과제로 남게 됐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이 가장 강조했던 ‘소통’에 있어 줄곧 비판적인 여론이 지배적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신년 기자회견에 이어 이번 취임 1주년 기자회견도 건너뛰었다. 이 때문에 보수 진영에서도 남은 임기엔 지난 1년보다 소통 접점을 더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앞으로 1년 뒤 윤 대통령이 열어젖힌 용산시대 2년차 성적표 속 ‘소통’ 점수는 또 어떻게 매겨질지 관심이 모아진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