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제대로 맥 못 짚는 저출산 정책 [배정원의 핫한 시대]
  •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5.13 16:05
  • 호수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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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불안한 현실 살피는 게 우선…아이를 반기는 사회 분위기 돼야

최근 일본 NHK TV의 한 시사 프로그램은 ‘왜 한국의 저출산 정책은 실패했는가’에 대해 꽤 깊이 다루었다. 한국 정부가 지난 몇 년 동안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며 저출산 상황을 개선하려고 노력해 왔지만, 현재로선 그 모든 정책이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 원인에 대해서도 분석했다. 이 프로그램이 밝힌 한국의 저출산 심화 원인은 무엇보다 ‘젊은 층이 결혼하지 않는 비율이 상승하고 있다는 것’인데, 서울 집값 폭등이 비혼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원인은 너무 부담스러운 교육비로, 한국은 어려서부터 각종 학원을 비롯해 사교육에 쏟아붓는 돈이 만만치 않아 출산과 양육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역시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일본은 한국의 예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이 문제를 해결해 가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일본의 합계출산율은 1.3명으로 0.78을 기록한 한국을 웃돈다. 최소한 둘이 만나 한 명은 낳는다는 이야기이니, 한 명도 낳지 않는 우리나라에 비하면 그래도 희망이 좀 더 있어 보인다. 2000년 초부터 꾸준히 하락해온 우리나라 출생률은 급기야 학생 수를 못 채워 초·중·고등학교의 폐교를 불러오고 있다. 그보다 먼저 어린이집과 유치원 폐원이 늘어났으며 현재는 ‘벚꽃 피는 순서로 대학이 문을 닫을 것’이라는 괴담(?)도 들려오는 중이다. 실제로 지방의 많은 대학이 학생 수를 못 채워 폐교를 고심하고 있고, 학과를 통폐합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저출산, 고령화, 인구 절벽 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다. 사진은 경기도 수원시 한 병원 신생아실 모습 ⓒ뉴시스
대한민국의 저출산, 고령화, 인구 절벽 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다. 사진은 경기도 수원시 한 병원 신생아실 모습 ⓒ뉴시스

출산 장려 위한 성평등 정책, 오히려 퇴보

이웃 나라 일본도 지적하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저출산 정책들은 모두 실패했다. 아기를 낳으면 처음 몇 년간 출산 및 아동수당 몇십만원을 준다고 해결될 일이 애초에 아니었다. 2006년부터 무려 280조원 넘는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정부가 정책이라고 내세운 것들은 책상 앞 관리들의 현실을 모르는 허망한 것이었고, 비혼과 출산 거부를 선택하는 청년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청년들이 이런 결정을 하게끔 내모는 것은 무엇보다 불안정한 그들의 현실 때문이다. 불안한 일자리와 이로 인한 소득의 불확실함, 최근 전세사기 대란으로 나타났듯이 청년들에게 전혀 친절하지 않은 주거정책, 여성들이 출산과 육아로 인해 잃게 되는 직장과 경력들, 그리고 회복되지 않는 직업, 여전히 완고한 가정 내 보호와 돌봄의 쏠림 현상, 세계에서 가장 비싼 양육비, 국공립보다는 민영기관에 의지해야 하는 어린이 돌봄,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로 치열하고 숨 가쁜 학교와 사회의 경쟁구도, 점점 더 견고해지는 부(富)와 사회 지위의 계급 구조 등이 청년들의 슬픈 선택과 결정의 원인들이다.  

얼마 전 중국 베이징의 위와인구연구소가 자기 나라의 저출산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각국의 정부 통계를 분석해 발표한 자료 중에는 한국의 비혼과 저출산에 ‘비싼 양육비’가 무척 많이 기여하고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 역시 OECD 국가 중 1등인데, 한국에서 18세까지 아이를 기르려면 무려 3억6500만원이 필요하며, 이렇게 양육비 부담이 큰 이유는 과도한 사교육비에 있었다는 것이다. 당장 주변만 둘러봐도 중·고등학생은 말할 것도 없고 6세 유치원생이 유치원 말고도 피아노·미술·영어·무용 혹은 태권도 등 여러 학원을 순례하며 일과를 마치는 것이 보통이다. 

게다가 수도권은 물가가 비싸고 집세도 비싸기 때문에 당연히 생활비 부담이 크고 이에 더해 한국 사회 내의 극심한 경쟁구도와 불안정한 미래 때문에 경쟁적으로 사교육을 시킬 수밖에 없어 청년들이 혹시 결혼하더라도 아이의 출산과 양육을 포기하게 하는 주요 원인이 된다. 또한 그간 여성단체와 많은 인구 전문가, 심지어 외신조차 한국의 저출산을 막고 출산을 장려하려면 ‘성평등 정책’을 펴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조언하고 주장도 했지만, 제대로 듣지 않았다. 지난 정부도 여성의 성차별적 구조를 거론했지만 저출산 정책에서 하위 요인으로 취급했으며, 특히 현 정부 들어서는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면서 많은 정책에서 여성과 성평등을 오히려 지워 나갔다.

올해 들어 국회와 정부는 저출산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여러 번 토론회를 마련했다. 그 대안으로 육아수당 지급, 주택 구매 보증금 지원제도, 양질의 청년 임대주택 공급, 성평등 육아휴직 제공, 유연근무제, 싱글 여성의 난자 냉동시술 지원 및 출산권 보장, 난임 시술 및 경제적 지원, 교육체계 개편, 그리고 경제적 손실이 좀 있더라도 아빠가 양육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아이와 쌓는 친밀감과 추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 제고 등이 논의되었다. 

 

저출산 문제, 입으로만 걱정할 뿐 심각성 애써 무시

지난 3월 윤석열 대통령은 “출산, 육아하기 좋은 문화가 조성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떤 정책만 갖고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정답이다. 답을 알고 있으니 정책 기조를 어떻게 잡을 것인지, 과거의 정책과 다른 변화가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싶은 대목이다.  

새나 짐승조차 자식을 키우기 어려운 환경에서는 새끼를 낳지 않는다. 지금 대한민국 청년들이 더 이상 짝을 찾으려 하지 않고, 본능인 자신의 유전자 보전을 포기하는 선택을 하는 이유는 우리 문화와 환경에 있다. 입으로는 저출산이 문제라고 걱정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그 심각성에 대해 잘 모르거나 애써 무시하는 이가 더 많다. 아이를 낳아 기르려면 아이를 반기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규칙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는 산전산후 검진과 출산, 그 후의 양육에서 아이를 잘 기르는 것에 국가가 지원하고 함께하며, 사회가 반기고 기대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육아휴직을 할 때 남은 동료에게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인원 보충을 기업과 정부가 지원해야 하며,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고, 아이가 아프면 언제든 조퇴할 수 있으며, 회사에 아이가 오면 온 직원이 반가워하며 아이를 돌보는 스웨덴 같은 문화가 되지 않으면 더 이상 우리 주변에 아기는 없을 것이다.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는 ‘짝짓기야말로 우리가 사는 원동력이며, 재생산은 생물로서 우리의 본성’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고 싶어 한다. 수컷들이 경쟁하고 암컷이 선택하는 다른 동물과 달리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선택하고 장기적인 파트너가 되어 자식을 부양하는 데 힘을 쏟고 싶어 한다. 그러려면 그들이 자식을 잘 기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남자가 일자리를 얻을 수 없어 일정한 소득을 기대하기 어렵고, 여자가 출산과 양육으로 자신의 일자리와 인생이 위협받기 때문에, 그리고 아이를 기른다는 것이 자신들의 생존과 즐거움을 빼앗아갈 환경이기 때문에 결혼(짝짓기)을 마다하고 출산과 양육(재생산)을 포기하고 있다.

스스로 자신을 거세하고 중성화를 선택한 것과 다름없다. 그렇게 개체를 줄여가는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출산 위기 극복 문제는 단지 노동력과 부양, 국가 존재를 위협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각 개인의 행복권을 위협하고 있다는 차원에서도 다뤄져야 한다.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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