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 악재에 흔들리는 셀트리온 서정진의 K바이오 신화
  • 이석 기자․송응철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3.05.16 10:05
  • 호수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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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트리온 3형제 실적·주가 폭탄 이어 오너 혼외자 논란까지
경영 복귀 이후에도 계속되는 오너 리스크에 우려

셀트리온은 한때 ‘코스닥 황제주’로 통했다. ‘셀트리온 3형제’로 불리는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 셀트리온제약 등이 시가총액 1, 2, 3위를 거머쥐었다. 2018년 셀트리온이 코스닥에서 코스피로 옮기면서 이 구도는 깨졌지만 영향력은 여전했다. 2020년 말까지 이들 3개 회사의 시가총액은 82조원대로 당시 코스피 2위인 SK하이닉스(83조원대)의 자리를 위협했다.

셀트리온의 성공 신화를 쓴 게 바로 서정진 회장이다. 그는 1985년 한국생산성본부에서 기업 컨설팅을 하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눈에 띄어 대우자동차에 입사했다. 대우차 역사상 최연소 임원이었다. 1990년대 말 IMF 외환위기 여파로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서 회장은 직장을 잃게 된다. 당시 그가 대우차에서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과 만든 회사가 셀트리온이다.

ⓒ연합뉴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지난 3월 2년간의 칩거를 깨고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사진은 2019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모습 ⓒ연합뉴스

코스닥 황제주 위상 추락한 ‘셀트리온 3형제’

설립 초기만 해도 셀트리온은 글로벌 제약사의 의약품을 위탁생산(CMO)하는 수준의 일만 했다. 2000년대 후반 셀트리온은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사업에 진출했다. 이후 자가면역질환 치료제인 ‘레미케이드’의 복제약 ‘램시마’와 혈액암 치료제인 ‘트로시마’ 등을 잇달아 개발하면서 셀트리온은 K바이오 업계의 상징이 됐다. 자수성가해 수조원대 자산을 거머쥔 서정진 회장 역시 ‘샐러리맨의 신화’로 인식됐다. 

특히 문제인 정권 시절 셀트리온은 고속성장을 이어갔다. 정부의 코로나19 치료제 임상지원사업 연구비의 상당액이 셀트리온에 집중되면서 특혜 의혹까지 나왔다. 2017년 5조8550억원이던 셀트리온의 자산총액은 2021년 14조8550억원으로 119%나 증가했다. 2019년 1월 문재인 대통령은 ‘기업인과의 대화’를 위해 대기업과 중견기업 대표들을 청와대로 초청했다. 행사 이후 경내를 산책하는 과정에서 문 대통령의 오른편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현재 회장)이, 왼편에 서정진 회장이 나란히 걸으면서 재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회사가 안정되자 서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2021년 3월 그룹 경영을 장남인 서진석씨(셀트리온·셀트리온제약 이사회 의장)와 차남인 서준석씨(셀트리온헬스케어 이사회 의장)에게 맡기고 은퇴했다. 하지만 최근 그룹 안팎의 경영 상황이 예사롭지 않게 흘러갔다. 주요 계열사의 영업이익이 정점을 찍고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곧바로 주가가 반응했다. 최근 3년간 ‘셀트리온 3형제’의 주가는 반 토막을 넘어 3분의 1 토막이 났다. 올해 초에는 코스닥 시가총액 1위와 2위 자리를 이차전지 업체인 에코프로와 에코프로비엠에 넘기는 수모를 겪었다.

서정진 회장은 지난 3월 2년여의 칩거를 깨고 경영에 복귀했다. 주주총회를 거쳐 그룹 지주회사인 셀트리온홀딩스와 상장 3사인 셀트리온·셀트리온헬스케어·셀트리온제약의 사내이사 겸 이사회 공동의장으로 선임됐다. 셀트리온 측은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해 현 경영진이 먼저 서 회장의 한시적 경영 복귀를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회사 관계자는 “경제위기뿐 아니라 전략 제품 승인 및 출시, 신약 파이프라인 확보, 계열사 합병 등 굵직한 현안이 산적해 있다”면서 “서 회장의 빠른 판단과 의사결정이 절실히 필요한 만큼 이사회 차원에서 경영 복귀를 추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다른 얘기가 흘러나온다. 은퇴 당시 서 회장은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겠다고 밝혔다. 회사는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두 아들은 이사회 의장만 맡는다는 것이 서 회장의 복안이었다. 이 공언은 실현되지 않았다. 두 아들이 지주사인 셀트리온홀딩스뿐 아니라 상장사인 셀트리온 3형제의 사내이사에 선임됐다. 사실상 2세 경영체제에 돌입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최근 글로벌 경영 환경이 급속히 악화되고, 두 아들도 이렇다 할 경영 성과를 내지 못하자 서 회장이 다시 경영에 복귀한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서 회장이 업무 복귀 후 가장 먼저 시행한 것이 엄격한 복장 규정이다. 셀트리온은 4월19일 전 직원에게 복장 규정과 근무시간 준수 등을 골자로 하는 공지를 내렸다. 내용은 이렇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회사는 캐주얼 복장을 허용했다. 공장 간 이동 시에도 가운닝을 착용할 수 있게 했다. 최근 팬데믹이 완화되면서 어려움이 해소된 만큼 직장인으로서 품격에 맞는 복장을 갖추라는 게 첫 번째 지침이다.

문재인 정권 때 ‘코로나19 치료제’ 등으로 주목

구체적인 복장 규정으로 △라운드티, 청바지, 트레이닝 바지, 후드티, 덧신 양말 금지 △칼라티, 면바지, 검은색 계열 운동화, 단정한 재킷의 비즈니스 캐주얼 △임원들은 최소한 정장 착용이다. 근무시간 준수 사항으로는 △근무시간에 휴게실 장기 체류 자제 △점심시간 준수(미리 줄 서서 대기하지 않기 및 근무시간 전 복귀) △근무시간 동안 개인 인터넷 등 개인 용무 자제가 적혀 있다. 셀트리온 측은 “코로나로 인해 바뀐 일상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는 만큼, 직장인으로서의 기본 소양을 지키자는 차원”이라며 “무엇을 금지하는 게 아니라 직장생활에서 기본 수칙을 잘 따라 달라는 권고사항”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직원들의 뿔난 시선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는 “시대착오적이다”거나 “회장님이 꼰대 같다”는 비판글이 잇따랐다. 이들은 서정진 회장이 본사를 찾아 직원들의 복장을 지적한 후 이 같은 사내 규정이 공지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직원은 “퇴근이 1시간도 안 남은 시점에 갑자기 당장 내일부터 복장 규정이 있다며 공지가 내려왔다. 사유는 회장님께서 회사를 방문하시다 마음에 안 드셨다는 이유”라고 주장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서 회장의 혼외자 리스크까지 터졌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의 혼외자인 20대와 10대 2명이 최근 친생자인지 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이 스캔들이 외부로 알려졌다. 서울가정법원 성남지원은 지난해 6월 서 회장에게 두 딸을 친생자로 인지하라고 판결했다. 그 결과 이들은 서 회장의 호적에 올라가게 됐다. 두 딸의 모친이자 서 회장의 내연녀 조아무개씨가 설립한 의류 제조 및 도소매 업체 서린홀딩스와 실내 인테리어 업체 서원디앤디도 셀트리온그룹 계열사에 신규 편입됐다.

서 회장이 두 딸의 모친이자 내연녀 조아무개씨를 만난 건 2001년 무렵으로 알려졌다. 셀트리온 창업 준비를 위해 미국 등을 오가던 시절이다. 이후 서 회장은 조씨와 10여 년간 내연관계를 유지했고 두 사람 사이에는 두 딸도 태어났다. 두 사람의 관계가 파경을 맞은 건 2012년이다. 조씨는 당시 셀트리온 경영에 어려움을 겪던 서 회장이 두 딸의 존재가 알려질 경우 회사가 무너질 수 있다는 이유로 출국을 종용했으며 이후 두 딸의 아버지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서 회장은 “조씨와 가끔 만났을 뿐이다. 사실혼 관계가 아니다”며 선을 긋고 있다. 조씨에 대해서는 공갈과 명예훼손 등 혐의로 경찰에 고소한 상태다. 조씨의 계속된 협박으로 288억원을 지급했으며 이 중 143억원은 갈취당한 증거가 명확하다는 게 서 회장의 주장이다. 그럼에도 논란이 가라앉지 않자 서 회장은 결국 고개를 숙였다.

서 회장은 5월8일 셀트리온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한 입장문에서 “주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 드려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최근 언론에 알려진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닐지라도 과거의 어리석고 무모한 행동으로 여러분들께 돌이킬 수 없는 큰 실망을 드렸다. 어떤 질책도 피하지 않고 겸허히 감수하겠다”고 밝혔다.

인천시 연수구(송도)에 위치한 셀트리온 본사와 제1공장 ⓒ사저널 이종현
인천시 연수구(송도)에 위치한 셀트리온 본사와 제1공장 ⓒ시사저널 이종현

혼외자들, 경영권 분쟁 캐스팅보트 쥘 수도

하지만 재계의 시각은 다르다. 재계에서는 혼외자 문제를 단순히 오너 개인의 사생활이나 일탈 정도로 치부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두 딸의 등장으로 셀트리온그룹 지배구조에 변화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서 회장은 현재 그룹 지주사인 셀트리온홀딩스 지분 97.19%를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를 통해 다른 핵심 계열사들을 거느리고 있다. 현행 상속법상 상속분 비율(배우자 1.5: 자녀 1)로 상속할 경우 서 회장의 부인 박경옥씨는 셀트리온홀딩스 지분 26.51%를, 장남과 차남인 서진석·서준석 형제와 두 혼외자녀는 각각 17.67%씩의 지분을 받게 된다. 만일 서 회장의 두 아들이 향후 경영권 분쟁을 벌이게 될 경우 혼외자들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맡는 상황도 연출될 수 있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서 회장의 의중에 따라 두 아들에게만 셀트리온홀딩스 지분을 넘길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경우 혼외자인 두 딸은 유류분 반환 청구소송에 나설 수 있다. 그러면 두 딸은 최소한 상속법이 정한 상속분의 절반은 받을 수 있다. 서 회장의 보유 주식 가치가 약 7조60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두 딸은 각각 6000억원 이상 규모의 지분을 받게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회사 안팎으로 악재가 터지면서 창사 이래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 회장이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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