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구급대, 응급실 전공의 말고 전문 진료과 의사와 직통해야”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3.05.15 12:05
  • 호수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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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째 되풀이되는 고질병 ‘응급실 뺑뺑이’ 대책

약 두 달 전 대구에 사는 10대 여학생 A양은 4층 건물에서 추락한 후 119 구급차에 실려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그러나 병상이 없다거나 진료할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7개 병원에서 진료를 거부당했다. A양은 약 140분 동안 거리를 헤매다 끝내 숨졌다. 심지어 의료인이 제때 치료받지 못해 사망한 사례도 있다. 지난해 7월 서울아산병원의 30대 간호사는 출근 직후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며 병원 1층에 있는 응급실을 찾았다. 응급실 의료진은 지주막하출혈로 진단하고 응급처치를 시행했으나 출혈이 멈추지 않았고 당장 수술이 필요했다. 당시 이 병원 응급실에 수술할 의사가 없어 환자를 급히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옮겼으나 결국 숨을 거뒀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 교수는 “처음 방문한 병원에서 치료받지 못하고 다른 병원으로 이송된 중증 응급환자 수는 연간 3만 명이 넘는다. 응급으로 조치가 필요한 뇌졸중·급성심근경색·중증외상 환자 8명 중 1명이 다른 병원으로 이송된다”고 밝혔다. 

ⓒ시사저널 박정훈
ⓒ시사저널 박정훈

거부 이유는 “응급실 병상·의사 없어서”

이런 사례를 예방하기 위해 정부는 1995년 응급의료 기본계획을 마련했고 최근 4차(2023~27년) 기본계획까지 발표됐다. 매년 수천억원의 응급의료기금을 응급의료 체계에 투자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로 사망하는 사례가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다. 배희준 대한뇌졸중학회 이사장(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은 “최근 4차까지 발표된 응급의료 기본계획은 기존 내용을 그대로 반복한 탓에 중요한 내용은 개선되지 않았다. 결국 응급환자가 길거리에서 죽음을 맞는 사례가 25년째 되풀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병원이 응급환자를 거부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응급실에 경증 응급환자가 많아 중증 응급환자를 받을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2021년 ‘응급의료 통계 연보’를 보면, 응급실 방문 환자 중 중증 응급환자는 7%에 불과하고 경증 응급환자가 50% 이상이다. 그렇더라도 중증 응급환자를 받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김윤 교수는 “인구당 국내 연간 응급환자 수는 미국의 3분의 1 수준이다. 응급환자 수를 고려하면 미국에 비해 응급환자를 보는 병원 수도 약 2배 더 많다. 다른 나라에 비해 경증 응급환자가 많다고 할 수도 없다. 응급환자의 중증도를 반영하는 응급환자 입원율은 우리나라가 미국에 비해 2배가량 높다. 우리나라에서는 응급환자 4명 중 1명이 입원하는 반면 미국은 8명 중 1명이 입원한다”고 말했다. 

병상 부족도 병원이 응급환자를 거부하는 이유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의 시각이다. 김윤 교수는 “예를 들어 병상이 1000개인 대학병원에서 매일 약 140명의 환자가 퇴원한다. 이 병원이 하루 평균 100명의 응급환자를 진료한다면 응급실을 통해 입원하는 환자는 23명에 불과하다. 매일 환자가 퇴원해 비는 병상 6개 중 1개를 응급환자에게 배정하면 병상이 없다는 이유로 중증 응급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중환자실 병상도 마찬가지다. 대학병원은 평균 약 70개의 중환자 병상을 보유하고 있는데 매일 약 20~30명의 환자가 중환자실에서 퇴원한다. 이 병원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입원하는 환자는 하루 2~3명에 불과하다. 매일 비는 중환자 병상의 10개 중 1개만 응급환자에게 배정하면 중환자실이 없다는 이유로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도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료할 의사가 없어 응급환자를 돌려보내기도 한다. 실제로 국내 응급실 의료 인력은 부족한 편이다. 중앙의료응급센터와 미국 CDC(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국내 응급환자 수는 인구당 미국의 절반도 되지 않지만 한 명의 의사가 보는 응급환자 수는 한국이 14명으로 미국(5명)보다 3배 가까이 많다. 결국 응급환자가 많아서가 아니라 의료 인력이 부족해 응급실의 응급환자 수용능력이 떨어지고, 응급환자를 빨리 진단하고 처치해 입원·수술을 하거나 빨리 치료해 집으로 돌려보내지 못하니 응급실이 늘 혼잡한 것이다. 

일부 진료과 전문의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예를 들어 올해 신경과 전문의 시험 합격자 83명 중 뇌졸중 전임의로 지원한 사람은 5명이다. 현재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 14개 중 1개 센터에만 뇌졸중 전임의가 근무한다. 급성 뇌졸중 환자를 수술할 의사가 3명 이상인 병원은 전국에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차재관 동아의대 신경과 교수는 “중증 뇌졸중은 위험해 전공의가 치료하다가 잘못하면 의료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전문의가 새벽에도 호출을 받는다. 또 전공의가 없어 교수가 당직을 선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뇌졸중 전문의가 되려고 하겠는가. 가까운 미래에 전문인력 부족으로 현재의 뇌졸중 진료체계를 운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지금 추세라면 5~10년 후 연간 10만 명의 뇌졸중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뇌졸중 전문의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해질 것이다. 의료수가 조정 등을 통해 전문의를 양성해 대학병원에 전공의 최소 2명, 권역심뇌센터에 뇌졸중 전문의 5명 이상이 배치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 모습 ⓒ시사저널 박은숙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 모습 ⓒ시사저널 박은숙

“진단·검사도 하지 않는 것은 불법”

그렇더라도 병원이 응급환자를 돌려보내는 것은 문제다. 미국에서는 응급환자 진료를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면 병원이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엄중한 처벌을 받는다. 응급환자를 볼 수 없는 정당한 이유란 갑자기 응급환자가 몰려 더 이상 환자를 받을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병원이 자의적으로 환자를 더 이상 받을 수 없는 상태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법에 정한 기준을 충족해야 인정받을 수 있다. 미국 병원은 응급실에 근무하는 의사가 중증 응급환자를 진료하는 중에 다른 중증 응급환자가 오면 외래나 병동에 있는 의사가 응급실로 달려 내려온다. 비응급환자 진료는 잠깐 미뤄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지만 응급환자 진료가 지연되면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윤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응급실 의료진이 볼 수 있는 수보다 많은 응급환자를 진료하고 있으면 관행적으로 중증 응급환자에 대한 진료를 거부한다. 의식이 없는 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했는데 진단·검사도 하지 않은 채 응급환자를 받지 않는 것은 불법이다. 응급실은 치료보다는 환자를 진단해 필요한 진료과로 보내는 것이 목적이다. 의사가 없어, 병실이 없어 응급환자를 볼 수 없다는 것은 생명이 경각에 달린 응급환자 진료를 거부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 병원은 응급환자를 무조건 살려놓고 전문 진료과로 보내 원인 치료를 받도록 해야 한다. 비응급환자에게 먼저 의사와 병실을 내주고 나서 남는 의사와 병실로 응급환자를 보겠다는 대한민국 의료의 고질병을 이제는 고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응급의료-전문의료 핫라인 필요”

현실이 이렇다 보니 특정 진료과 전문의가 응급환자를 보지도 못한다. 흔히 응급환자는 119 구급차에 실려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돼 신속하게 치료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응급환자를 실은 119 구급대는 인근 병원 응급실에 전화를 걸어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지를 먼저 문의한다. 응급실에 여력이 없으면 다른 병원 응급실을 찾아야 한다. 응급실에 여력이 있다고 해서 막상 그 병원에 도착했더라도 진료할 전문의가 없으면 또 다른 병원으로 가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하거나 장애를 겪는 응급환자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119 구급대가 응급실이 아니라 전문 진료과와 직접 소통할 핫라인이 필요하다는 것이 의료 현장의 목소리다. 김태정 서울대병원 중환자의학과 교수는 “119 구급대가 뇌졸중 응급환자를 싣고 신경과 의사와 통화하는 것이 아니라 병원 응급실 전공의와 소통하는 현재 시스템으로는 ‘응급실 뺑뺑이’가 개선되지 않는다. 응급의료와 전문의료가 직접 소통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현실에 맞춘 24시간 응급의료 체계도 필요하다. 응급한 상황은 낮뿐만 아니라 심야나 새벽에도 발생하지만 응급센터는 24시간 진료가 힘든 상황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한밤중에 갑자기 아파 병원 응급실을 찾더라도 전국 400여 개 응급의료기관 가운데 24시간 소아 진료가 가능한 곳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급성 뇌경색은 특정 치료(정맥내혈전용해술)를 응급으로 받아야 하지만 전국 70개 응급의료 중진료권 중 22개에는 24시간 정맥내혈전용해술이 가능한 병원이 없다.
 
배희준 이사장은 “가까운 병원에서 중증 응급환자를 진료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전국의 모든 병원이 24시간 진료하기란 불가능하다. 24시간 진료하는 병원을 최소 20~30개 만들고 나머지 공백은 다른 병원과 연계하면 된다. 문제는 돈이다. 5년 동안 뇌졸중 환자 1만 명을 추적 관찰한 연구가 있다. 뇌졸중이 있지만 장애가 없어 걸어다닐 수 있는 환자의 진료비는 5년 동안 5000만원이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걸을 수 없어 누워있는 환자의 진료비는 5년 동안 2억5000만원이다. 환자를 제때 진료해 사람을 살리고 후유장애까지 예방하면 1명당 2억원을 버는 셈이다. 그러나 정부는 응급의료에 돈을 지원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대구시, 응급의료 관련 조례 최초 개정

대구 A양 사망 이후 국내 지방자치단체 중에서는 대구광역시가 가장 먼저 관련 법을 개정했다. 대구시의회는 5월4일 본회의에서 응급의료 대응체계 강화를 골자로 하는 조례 개정안을 가결했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지역응급의료 이송체계를 마련하는 한편 응급의료기관 간 협력체계를 구축하도록 했다. 중증 응급환자를 위한 이송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응급의료위원회’를 설치한다. 이 외에도 ‘응급의료지원단’을 설치해 응급실 과밀화 문제를 해결하고 의료기관 간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시민 대상 응급처치 교육을 시행하고 교육 이수자 중심으로 응급처치 교육 자원봉사단을 운영하는 내용도 담겼다. 이 개정안은 대구시장이 공포함과 동시에 즉시 시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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