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변곡점 맞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5.12 16:05
  • 호수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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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예상됐던 5월 대반격 머뭇거리는 상황이지만 
러시아도 대대적인 공격에 나서지 못해

5월에 시작할 것으로 예상됐던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이 지체되고 있다. 3월 중순~4월말 얼어붙은 도로가 녹으면서 진창으로 변해 기갑부대를 비롯한 차량과 병력 이동이 어려워지는 ‘라스푸티차’(러시아·우크라이나 일대에서 봄·가을에 토양이 진흙탕으로 변하는 현상)가 끝나는 5월에 접어들었건만 우크라이나는 대반격 기미조차 보이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온 유럽 국가들의 포탄 등 탄약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게 주요 원인의 하나로 지적된다. 반격 작전에 필요한 병력 확보도 또 다른 변수다. 이런 상황이 전쟁 국면을 전환하는 변곡점으로 작용해 러시아가 유리한 상황을 맞을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두에서 보급과 병력 등의 문제로 전쟁 수행능력이 바닥을 드러내고 전쟁 피로증이 가중되면서 협상 국면으로 전환될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AP 연합
우크라이나 소방관들이 4월28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남쪽으로 200km 떨어진 우만 마을의 한 아파트에서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AP 연합

러 향한 목소리 점점 높이는 바그너그룹

우크라이나가 5월 대반격을 노렸다면 군사력을 집중해 공세를 가할 중심(重心·Center of Gravity)으로 크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병력이다. 러시아군을 섬멸해 전쟁 수행능력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전사자와 부상자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 늘어난 러시아군이 군사작전을 계속 수행하기 힘들게 할 수 있다.

또 다른 선택지는 지역 확보다. 특정 지역을 점령해 러시아군의 작전을 어렵게 하든지, 사기와 지도부의 전쟁 수행 의지를 추락시키는 것이다. 러시아가 2014년 병합한 크림반도의 실지를 우크라이나가 회복할 경우 러시아를 협상장으로 끌어들이는 강력한 유인이 될 수 있다. 지난해 2월24일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점령한 지역 중 상징적 의미가 큰 마리우폴 탈환, 친러 분리주의 세력이 통치해온 도네츠크나 루한스크 점령도 중요한 선택지다. 도네츠크는 현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대치하는 최전선에서 30km 정도, 루한스크는 80km 정도, 마리우폴은 90km 정도 각각 떨어져 있다. 크림반도 경계까지는 80km 정도 거리다. 

물론 이곳은 현재 가장 많은 병력과 군사장비가 밀집된 곳이어서 진격이 힘든 상황이다. 게다가 점령 작전을 펴려면 포병과 공군의 지속적인 지원사격과 풍부한 병력, 그리고 기동작전을 위한 기갑장비와 유류·탄약의 신속한 보급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 모두 이런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보기 힘든 상황이다.  

동부 최전선의 소도시 바흐무트에서 지난해 8월1일부터 9개월 넘게 양측 간 전투가 계속되면서 ‘전쟁의 핫포인트’가 되고 있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모두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포격전·참호전이 진행되면서 러시아 용병조직 바그너그룹의 병력이 이곳에서 소진되고 있다. 바그너그룹의 소유주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5월11일 “탄약 보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러시아 지휘부를 압박했다고 유로뉴스가 보도했다. 러시아 정규군이 징집병력의 훈련 부족과 낮은 사기 등으로 제대로 전투를 치르지 못하다 보니 용병집단인 바그너그룹은 보급과 작전 주도권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더욱 높이고 있다. 이에 따라 서방은 바그너그룹에 대한 제재를 압박하고 있다. 프랑스 의회는 유럽 각국에 바그너그룹을 테러조직으로 지정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5월9일 전승절에 “서방이 러시아에 전쟁을 압박하고 있다”며 개전 이래 줄곧 ‘특별군사작전’으로 불러왔던 우크라이나 침공을 처음으로 ‘전쟁’이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푸틴은 “러시아의 미래는 이 전쟁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가 병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식 전쟁 선언에 이어 동원령을 발동할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문제는 러시아에 부족한 것이 병력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번 전승절 퍼레이드가 이를 잘 말해 준다. 지금까지 러시아의 전승절에는 각종 전차와 장갑차에 야포·다연장로켓·미사일발사대 등 다양한 장비가 거리를 누비고 하늘에는 전투기와 헬기가 줄지어 날았다. 하지만 이번 전승절 퍼레이드는 역대 가장 소규모로 진행됐다. 장비 부족설이 나올 수밖에 없다. 상당수 현용 장비가 전선에서 파괴되거나 현재 기동하고 있기 때문에 퍼레이드에 동원할 물량이 태부족이라는 이야기다. 

 

심각한 전쟁 피로증 속 협상에 대한 기대감도

푸틴의 험한 말과 달리 러시아군의 현실은 발등의 불을 끄기에 급급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우크라이나가 서방의 탄약 지원을 적기에, 필요한 만큼 받지 못해 5월 대반격에 나서지 못하는 기회를 활용할 여력이 러시아에도 역시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서방은 러시아가 반도체 등 방위산업 가동에 필수적인 소재와 부품에 대한 교역 제재로 무기체계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본다. 이에 따라 냉전시대의 유물로 치장물자로 보관 중이던 T-55 전차가 철도를 이용해 이동하는 장면이 목격됐다. 

옛소련이 1955~81년 생산했던 T-55는 그동안 개량을 거쳐 전차포와 대공기관총 등 화력과 방어장갑 등을 강화했을 뿐 아니라 화력통제장치와 야간시야장치, 레이저 탐지체계와 컴퓨터화 화력통제장치 등 첨단장비도 추가했다. 그럼에도 창고에 보관 중이던 T-55를 다시 꺼낸 것은 러시아의 신형 전차 생산 속도가 전선에서의 소진 속도보다 느리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려준다.

러시아는 이란산 자폭 드론을 대거 우크라이나 폭격에 동원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는 미국 등으로부터 다양한 방공 장비를 공급받은 것은 물론, 드론을 막을 이스라엘제 레이더도 도입해 러시아 공습에 대한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다. 전력·수도·유통 시설 등 생활근린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공격해 우크라이나 국민의 응전 의지를 꺾으려던 모스크바의 기도가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는 의미다. 

우크라이나가 예상되던 5월 대반격에 즉각 나서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상황이지만 러시아도 대대적인 공격이 나서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도 러시아도 전력을 축적하면서 시간·지역·조건에서 대반격을 위한 최적의 기회를 기다리는 것인지, 아니면 늘어나는 피해와 병력·장비·탄약 부족 상황에서 지쳐가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양국이 서로 심각한 전쟁 피로증을 겪으면서 지쳐간다면 협상의 틈새를 기대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 3월20일 모스크바 방문 직후인 3월26일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한 것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시진핑은 젤렌스키에게 “협상을 권하고 대화를 촉구한다”며 “중국은 유라시아 업무 특별대표를 우크라이나 등에 파견해 정치적 해결을 위해 소통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재 용의를 밝힌 셈이다. 

하지만 서방은 ‘중립은 러시아 편을 드는 것’이라며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독일의 안나레나 배어보크 외교부 장관은 5월9일 베를린을 방문한 중국의 친강 외교부장과 회담한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중립은 공격자의 편을 든다는 의미”라며 “그래서 우리가 따라야 할 원칙은 피해자의 편이라는 것을 명백히 밝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편을 들지 말고 전쟁에 쓰일 수 있는 물자를 공급하지 말라고 중국에 경고한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를 중재할 ‘책임 있는 강국’이 될 가능성은 희박해지고 있다. 결국 우크라이나 사태는 군사적 해결도, 외교적 해결도 힘든 어정쩡한 상태에서 ‘교착의 5월’을 맞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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