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뒤로 가는 정치, 멀리 떠나는 30%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5.15 08:05
  • 호수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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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아도 쭈글쭈글하던 정치가 더 못나졌다. 찌질한 데다 지저분하기까지 하다. 퇴행을 거듭해 과거로 타임슬립을 한 느낌도 준다.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두 거대 정당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그 못남을 뽐낸다. 최근 정치권을 흔든 더불어민주당의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이나 부적절한 말들을 잇따라 내놓은 국민의힘 고위 인사들의 발언 파문이나 한결같이 예스러운 추문으로 얼룩져 있다. 누가 더 못 하느냐를 겨루는 수준을 떠나 누가 더 막 가느냐를 두고 경쟁하는 수준의 모습이다. 지금 두 정당의 행태는 지극히 원시적이라는 점에서 몹시 우려스럽다. 

현직 당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여전한 상태에서 송영길 전 대표를 둘러싼 ‘돈봉투 살포’ 의혹까지 덮쳐 민주당은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다. 송 전 대표에 이어 의혹에 연루된 의원들도 함께 탈당해 위기를 모면해 보려 하지만, 여론의 반응은 냉랭할 뿐이다. 국민의힘은 잇단 부적절 발언으로 스스로 발목을 잡더니 최근에 불거진 ‘태영호 녹취록’까지 겹쳐져 곤욕을 치르고 있다. 국민의힘은 당 지도부를 형성하는 김재원 최고위원이 ‘5·18 정신 헌법 전문 반영 반대’를 주장하고 ‘전광훈 목사가 우파를 천하통일했다’고 말한 데 이어 ‘제주 4·3은 격이 낮은 기념일’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을 키우며 애를 먹고 있다. 게다가 얼마 전 대통령실의 공천 개입 의혹을 불러일으킨 태영호 최고위원의 녹취록이 공개된 데 따른 파문 또한 작지 않다.

더불어민주당의 '2021년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과 관련해 금품 살포의 최종 수혜자로 의심받는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5월2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입장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의 '2021년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과 관련해 금품 살포의 최종 수혜자로 의심받는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5월2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입장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의 돈 관련 의혹과 국민의힘 내부에서 나온 일부 시대착오적 언행들은 구태에 가까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둘 다 똑같이 수십 년 전에 들었던 뉴스를 다시 듣는 듯 불쾌한 기시감을 준다. 이처럼 수준 낮은 면모가 계속 나타나면 기존의 지지자들은 물론이고 지금껏 마음 줄 곳을 찾지 못해 갈팡질팡하던 관망층에게서도 실망감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최근 여러 여론조사에서 30%대로 집계되는 무당층도 더 빠르게 늘어날 것이 빤하다. 

무당층 30%는 낡고 헌 기성 정치에 식상해 기대를 접은 이들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두 거대 정당은 최진석 서강대 교수가 시사저널 인터뷰(제1750호)에서 지적한 대로 “무능하고 비루할 뿐 아니라 생각하는 능력이 사라지고 상상력과 사유가 고갈된”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강한 탐욕으로 무장해 이익 확대나 세력 확장에만 골몰하는, 재벌(財閥)·군벌(軍閥)과 같은 급의 정벌(政閥)이 되어버린 느낌마저 준다.

그동안 여러 다른 모든 분야에서는 꾸준한 발전이 이어지면서 그에 따른 영광과 혜택도 함께 나타났던 것과 달리 정치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계속 뒷걸음질을 하고 있다. 다시 듣고 싶지 않은 ‘흘러간 옛 노래’가 이런 식으로 정치권에 염치없이 울려 퍼지면 국민들의 속은 또 한 번 크게 뒤집힐 수밖에 없다. 최근 윤석열 정부 1년을 맞아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 ‘지난 1년 동안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느냐’라는 설문에 대해 60.2%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응답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결과를 접하고 떠오른 생각은 단 하나. ‘우리 정치가 스스로 언제 한 번이라도 제대로 전진해본 적이 있는가’라는 근원적 의문이다. 돈에서 먼지 나지 않고 시대착오적인 말, 거짓 혹은 변명으로 가득 찬 말, 나쁜 말을 하지 않는 정치를 기다려온 국민들의 마음은 지금 이 순간에도 또다시 타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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