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성 보장’ 외치더니…‘공정 파괴’ 처참함 드러낸 선관위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3.05.30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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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특혜 채용 ‘11명+α’로 늘어…권익위와 합동 전수조사 실시
감시·견제 시스템 마비 상태 드러내며 檢 수사 불가피 할 전망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이 5월30일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고위직 간부들의 자녀 특혜 채용 의혹 관련 대응 방안 등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긴급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이 5월30일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고위직 간부들의 자녀 특혜 채용 의혹 관련 대응 방안 등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긴급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고위 간부들의 '자녀 특혜 채용' 논란이 일파만파 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와의 합동 전수조사가 예고된 가운데 검찰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과 신뢰의 상징이 돼야 할 선관위가 독립성을 무기 삼아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왔다는 점에서 대대적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한층 커질 전망이다. 

여권으로부터 거센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노태악 선관위원장은 30일 고위직 간부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이 불거진 데 대해 "국민께 심려를 끼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노 위원장이 논란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선관위는 전수조사와 동시에 쇄신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자정 능력 상실이 확인된 상황에서 '셀프 조사'는 적절치 않다는 회의적인 반응이 쏟아진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전수조사 돌입을 선언한 만큼 두 기관이 합동조사를 진행하고, 더 나아가 검찰 수사를 통해 의혹 전반에 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특혜 채용 연루자가 당초 알려진 6명에 더해 최소 '5명+α'가 더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조직 전반에 대한 점검과 대개혁이 불가피하다는 데도 더욱 힘이 실리는 양상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자녀 특혜 채용 의혹 사례는 박찬진 사무총장과 송봉섭 사무차장, 김세환 전 사무총장, 신우용 제주 상임위원, 윤재현 전 세종 선관위 상임위원, 김정규 경남 선관위 총무과장 등 6건이다.

여기에 선관위 5급 이상 직원 전수조사에서 4·5급 직원 자녀의 경력 채용 사례가 추가로 5건 이상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소 전·현직 직원 11명의 자녀가 경력 채용된 것으로 파악된 것인데 전수조사가 끝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규모는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이들 가운데 사전에 '사적 이해관계'를 신고했던 경우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아빠 찬스'를 활용한 것으로 의심 받는 경력 입사자들은 제대로 공고가 나지도 않았는데 지원해 합격하거나 부친이 채용 최종 결재권자를 맡은 경우, 부친의 동료가 면접관으로 들어 왔거나 입사 이후 이례적인 고속 승진을 하는 등 채용 전후로 '기막힌 우연'이 반복된 것으로 확인됐다. 

5월16일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자녀 특혜 채용' 의혹에 휩싸인 박찬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오른쪽)과 송봉섭 사무차장이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5월16일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자녀 특혜 채용' 의혹에 휩싸인 박찬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오른쪽)과 송봉섭 사무차장이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선관위를 뿌리째 흔들어 놓은 사태의 중심에 있는 박 사무총장과 송 사무차장이 자진 사퇴 형식으로 물러나는 데 대해서도 '꼼수 면직' 비판이 들끓는다. 비위 의혹 관련 조사가 마무리 되지 않은 상태에서 징계 없는 퇴직을 허용한 것은 '특혜 채용'에 이은 '특혜 면직'이라는 이유에서다.  

때문에 내부에서조차 '검찰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탄식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립기구인 선관위는 감사를 포함한 외부 기관의 견제나 감시에서 사실상 무풍지대나 마찬가지다. 지난 대선 사전투표에서 이른바 '소쿠리 투표' 진행으로 감사원 감사 계획이 발표되자 선관위는 "헌법기관의 직무수행 독립성과 중립성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며 선거 관련 직무감찰을 거부했다. 이번 특혜 채용 논란과 함께 터진 북한 해킹 시도 인지 실패를 두고도 국가정보원의 보안 점검을 거부한 바 있다. 

오는 31일 이틀에 걸친 긴급 위원회의 종료 후 공식 입장과 제도 개선을 발표할 선관위가 '검찰 수사 의뢰'라는 초유의 카드를 빼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시민단체가 이미 박 총장과 송 차장 자녀 채용 의혹을 수사기관에 고발한 데다 국민의힘도 당 차원의 고발 또는 수사 의뢰를 검토하고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선관위 논란에 대해 "내부 자체 조사가 아니라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고, 박대출 정책위의장도 "감사원 감사 촉구, 검찰 수사 의뢰 등 이번 사태의 모든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동시에 노 위원장에 대한 여당의 '사퇴' 파상공세도 이어질 전망이다. 강민국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지금 국민은 양치기 소년이 되어버린 선관위의 말과 행동, 그 어느 것도 신뢰할 수 없다고 한다"며 "내일 입장 발표는 오직 노 위원장의 처절한 대국민 사과와 사퇴 입장 표명이어야 한다"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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