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사이신 분사’ 없었지만…충돌·유혈 진압에 전운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3.05.31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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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 대응 선포 후 민주노총 첫 대규모 집회…4명 체포
한국노총, 유혈 진압 강력 반발하며 尹정부와 전면전 선포
5월31일 서울 청계광장 인근에서 경찰이 민주노총이 기습 설치한 건설노조 간부 양회동 씨 분향소를 철거하고 있다. ⓒ 연합뉴스
5월31일 서울 청계광장 인근에서 경찰이 민주노총이 기습 설치한 건설노조 간부 양회동 씨 분향소를 철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의 불법집회 강경 대응 방침 선포 뒤 처음 열린 노동계 대규모 집회에서 우려했던 '캡사이신 분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양대노총인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같은 날 나란히 경찰과 물리적으로 충돌하고, 윤석열 정부와 전면전을 선포하면서 전운이 드리운다. 

31일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35분께 민주노총 측이 서울파이낸스센터 건물 앞 인도에 분신 사망한 건설노조 간부 고(故) 양회동씨 시민분향소를 기습 설치하면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이날 민주노총 조합원 2만여 명은 사전집회를 마친 뒤 오후 4시 대한문 앞에서 경고파업 결의대회를 열고 양씨 분신 사망에 대한 사과와 노조탄압 중단을 요구했다. 조합원들은 5시22분께 자진해산 했고 한 시간 뒤 다시 모여 양씨 분향소를 기습 설치했다. 

경찰은 서울시 요청에 따라 분향소 강제철거를 시도했고,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격렬하게 저항하면서 양측이 충돌했다. 분향소에는 양회동씨 영정사진 등이 놓였고 주최 측 추산 1200여 명이 집결했다.

경찰은 "도로법을 위반한 불법 천막 설치를 중단하라"고 잇달아 경고한 후 천막 쪽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경찰 접근을 막아서며 "나가, 나가" "경찰 몰아내" 등을 외치며 맞섰다. 

양측이 물리적으로 충돌하면서 천막은 무너졌고, 결국 7시를 조금 넘겨 철거됐다. 

5월31일 경찰이 서울 청계광장 인근에서 기습 설치한 건설노조 간부 양회동 씨 분향소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충돌하고 있다. ⓒ 연합뉴스
5월31일 경찰이 서울 청계광장 인근에서 기습 설치한 건설노조 간부 양회동 씨 분향소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충돌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경찰은 이 과정에서 철거를 방해하고 경찰관을 폭행한 4명을 공무집행방해 현행범으로 체포해 연행했다. 민주노총은 조합원 4명이 부상했고, 이 가운데 3명이 병원에 이송됐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측은 경찰과 충돌한 후 오후 7시20분부터 '양회동 열사 추모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조합원들은 "노동탄압 멈춰라" "윤석열을 끌어내지" 등 구호를 외쳤다. 민주노총은 당초 8시까지 집회를 마친 뒤 경찰청으로 행진할 예정이었지만, 재충돌을 우려해 행진을 취소하고 자진 해산했다. 

건설노조는 성명을 내고 "경찰은 시민분향소를 철거하기 위한 무력침탈을 감행했고, 현행범 검거와 캡사이신 분사를 하겠다며 겁박했다"며 "양회동 열사를 죽음으로 몰고간 윤석열 정권과 윤희근 경찰청장은 열사와 유가족 앞에 사과부터 하는 것이 도리"라고 성토했다. 

5월31일 서울 세종로에서 열린 민주노총 노동탄압 중단 총력투쟁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5월31일 서울 세종로에서 열린 민주노총 노동탄압 중단 총력투쟁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노총도 경찰의 폭력적 과잉 진압에 강력 반발하며 윤석열 정부와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한국노총과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전 5시31분께 전남 광양제철소 앞 도로에 높이 7m의 철제 구조물을 설치하고 고공 농성 중이던 한국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금속노련) 김준영 사무처장이 경찰이 휘두른 곤봉에 머리 등을 맞고 부상을 입었다.

김 사무처장은 지난 29일부터 하청업체에 대한 포스코의 부당 노동행위 중단을 촉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경찰은 이날 새벽 사다리차를 이용해 농성 중이던 김 사무처장에게 접근했고, 김 사무처장이 저항하자 이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머리에 피를 흘리며 지상으로 내려온 김 사무처장은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체포된 뒤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경찰은 진압 경찰들도 김 사무처장이 휘두른 쇠 파이프에 맞아 다쳤고, 추락 위험 등을 고려해 강제 진압에 나선 것이라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은 전날 농성장 에어매트 설치 작업을 방해한 한국노총 금속노련 김만재 위원장도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체포했다.

김준영 한국노총 금속노련 사무처장이 5월31일 경찰 곤봉에 머리를 맞아 피를 흘리는 모습 ⓒ 한국노총 금속노련 제공
김준영 한국노총 금속노련 사무처장이 5월31일 경찰 곤봉에 머리를 맞아 피를 흘리는 있다. ⓒ 한국노총 금속노련 제공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국회 소통관에서 '폭력 진압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6월1일 노사정 대표자 간담회가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연이어 자행된 윤석열 정권의 폭력 연행과 진압을 보며 한국노총은 윤석열 정권이 노동계와 대화할 생각도 의지도 없음을 분명히 확인했다"며 불참을 선언했다.

이어 "이 시간 이후 한국노총은 윤석열 정권 심판 투쟁을 시작한다"고 선포했다.

김 위원장은 경찰을 향해서도 "김 위원장과 김 사무처장에 대한 경찰의 불법 폭력 진압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권력의 충실한 개가 돼 독재정권 시절의 모습에서 한치도 바뀌지 않는 경찰의 본질을 폭로하고, 끝까지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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