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철 “尹 대통령, 이제라도 이재명 대표 만나야”
  • 이원석 기자 (lws@sisajournal.com)
  • 승인 2023.06.05 07:35
  • 호수 175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정치의 실종” 연일 정치권에 애정 어린 쓴소리 던지는 정대철 헌정회장
“민주당, 새롭게 태어나야…李 대표의 뼈를 깎는 자기희생 필요”

“여야 간에 대립 상태가 전쟁과 같은 상황입니다. 정치가 실종된 것이고 정치를 포기한 것이지요.” 30대였던 1977년 처음 국회에 입성해 5선 의원을 지내는 등 평생을 정치에 헌신한 원로 정치인 정대철 헌정회장의 냉정한 진단이다. DJ(김대중 전 대통령)계로서 합리적인 정치 원로로 평가받는 그가 여야 정치권을 향해 쓴소리를 연일 던지는 이유는 뭘까. 시사저널은 6월1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내 헌정회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정대철 헌정회장이 6월1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내헌정회장실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민주당계로는 처음 헌정회장에 당선돼 취임하셨습니다. 

“헌정회(전직 국회의원들의 모임) 내에 민주당계가 35% 정도인데, 1차 투표에서 53%의 지지를 주셨습니다. 회원들이 초정파적으로 투표를 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선거 때 헌정회의 위상을 제고하겠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진 헌정회가 그저 친목단체처럼 남아있었습니다. 앞으로는 진정한 의미의 국가 원로 단체가 돼야 한다고 보고 더 나아가서 정책 대안 제시까지 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정치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진 않되, 초정파적으로 조언하고 쓴소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회원들이 저에게 많은 지지를 해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반복해서 ‘정치 실종’에 대해 지적하고 계십니다.

“여야 간에 대립 상태가 전쟁과 같은 상황입니다. 정치라는 게 대화와 타협을 통해 갈등과 이해의 충돌을 완화·조정하고 가치를 배분하는 것이 주 임무인데, 그렇게 하기 위해선 만나서 대화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는 건, 정치가 실종된 것이고 정치를 포기한 것이지요. 대의민주주의 아래서 정치가 집약되는 곳이 국회입니다. 기본적으로 국회에서도 대화와 타협, 협상이 없다는 게 참 한심하고 안타깝습니다. 앞으로 헌정회도 정치권에 협치·포용·상생의 정치를 하도록 권고하는 역할이 하고자 합니다.”

정치 실종의 원인이 무엇일까요.
“4가지라고 봅니다. 첫째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나와 네가 다르고 다를 수 있다는 데서 시작해야 하는데, 지금은 너는 틀렸고 나는 옳다는 데서 끝이 납니다. 둘째로 여야가 힘의 논리에 갇혀 있습니다. 한쪽은 사정 권력과 비토 파워(veto power·거부권)에 의지하고, 다른 한쪽은 다수 의석으로만 밀어붙이는 형국입니다. 셋째로 진영논리, 지역 기반에 빠져 있습니다. 이는 현 선거구도가 원인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현장 정치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일천한 것도 큰 요인이라고 봅니다. 윤 대통령은 야당의 모든 공세를 대선 불복 차원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지금의 여야 정치권, 힘의 논리·진영에 갇혀”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는 듯합니다. 만나지 않고 대화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상황에 대한 책임은 분명히 윤 대통령에게 있다고밖에 얘기할 수 없습니다. 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 때문에 만나지 않는다? 피상적으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과 여당은 이재명 대표를 범죄자라고 하고, 야당에선 결백하다고 합니다. 결국 판단은 사법부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겠죠. 그러나 기본적으로 형사법상 그리고 헌법상 원칙에 의하면 형사 피의자는 죄가 확정될 때까지 무죄 추정이어야 합니다. 이 원칙하에 이 대표는 야당 대표로서 인정받아야 합니다. 그게 없으니 대화와 타협이 없어진 겁니다. 이제라도 만나야 합니다. 그것이 법치주의를 지키는 것입니다.”

결국 만나는 것이 해법이군요.

“그렇습니다. 만나야 합니다. 윤 대통령은 앞으로도 이재명 대표가 남아있는 한 상대하지 않겠다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 대표가 남아있는 한 정치가 있을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매우 걱정스럽습니다. 최근 정진석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왜 (여당 대표 때) 만나지 않았느냐’고 말하니 ‘그랬어야 하는데 분위기가 그렇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대통령이 만나지 않으니 다른 지도자들도 만날 수 없는 것입니다.”

여야 모두가 ‘극단의 정치’에 빠져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극단의 정치보다는 ‘팬덤의 정치’의 악영향이 더 두렵고 피해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Deliberative Democracy’(숙의 민주주의)를 학습해야 합니다. 학자들의 표현인데, 보수건 진보건 대중의 의사에 끌려 다니지 말고 합리적 상식과 지성적 판단으로 자신의 정치적 행동규범을 확립해야 함을 뜻합니다. 국민의 뜻에 대해 많은 존중을 갖되, 꼭 대중이 절대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폭넓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극단 정치에서 벗어나 대화와 타협, 협치와 상생의 정치를 가능하게 해야 합니다.”

민주당이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과 김남국 의원의 거액 가상자산 논란으로큰 어려움에 처한 모습입니다. 지금은 탈당하셨지만, 당의 원로로서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한마디로 참 통탄스럽고 참담한 심경입니다. 발본색원, 즉 논란에 대해 제대로 조사해 진실을 규명하지 않으면 민주당이 다음 선거에서 국민적 지지를 받기 어려운 상황으로 몰려가고 있는 건 틀림없어 보입니다. 민주당이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특별히 이재명 대표가 책임감을 처절히 느끼고 새로운 당의 모습을 위해 뼈를 깎는 자기희생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구체적으로는 더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이 대표의 노력을 통해 민주당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
5월27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마주친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민주당, 총선에서 국민적 지지 받기 어려운 상황”

민주당에선 ‘검찰 정치’ ‘표적 수사’라고 반발하기도 합니다.

“민주당에서는 그렇게 볼 겁니다. 무죄 추정의 원칙도 지켜지지 않으니 막무가내 정치를 한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우선은 검찰 등 사정기관은 정치권에 대해 수사할 때 합리적이고 타당한 근거와 공정성을 생명으로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대통령을 포함한 여권 수뇌부가 상대방을 국정 동반자로, 협치 상대로 인정하지 않으니 모든 것에 대해 이런 식의 해석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선 안 됩니다.”

민주당이 쇄신 작업을 벌이곤 있지만 내부 갈등은 여전하고, 개혁은 요원해 보입니다.

“당이 번민 중에 있으리라 봅니다. 저는 지금의 민주당이 옛날 우리가 있던 민주당, 또 우리 선배들이 있던 민주당이기를 바라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가끔은 저도 민주당이 낯설 때가 있습니다. 예전 같았다면, 서로 툭 터놓고 대화했습니다. 무슨 거리낌이 있겠습니까. 요샌 그러기가 어려워 보입니다. 쇄신이나 개혁을 위해선 일상과 관행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새로운 결단과 실천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항상 갈등과 논란을 부르기 마련입니다. 민주당 구성원들이 쇄신의 불가피성과 당위성을 선명하게 공유할 때 쇄신으로 인한 내부 갈등의 불씨를 잠재울 수 있을 겁니다. 쇄신의 목적은 국민의 지지를 회복하고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야겠지요.”

여당을 향한 가장 큰 우려는 ‘윤심’(尹心·윤석열 대통령 의중)입니다. 전당대회 등에서 논란이 반복됐고, 내년 총선에서 대통령의 공천 개입 등의 우려가 나옵니다.

“우리와 같은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서는 대통령의 권한 행사가 지극히 조심스럽고 합리적이어야 합니다. 아니면 과거와 같은 권위주의 정권의 우를 범할 수도 있고 지금도 우려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특별히 저의 관찰로는 윤 대통령이 이준석 전 대표, 유승민·나경원 전 의원, 안철수 의원 등을 내치지 말고 끌어안는 통 큰 지도자가 되길 바랐고, 간접적으로 그러한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라도 가능한 한 공천이나 당내 권력구조 결정에 대통령이 관여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대통령 자신이 국민의힘에서 탈당해 자유롭게 관조하면서 통치해야 훌륭한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윤 대통령을 향한 비판 중 하나가 ‘소통 부재’입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취임 후 도어스테핑(출근길 약식회견) 때 참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금방 그만뒀고, 기자회견도 오래 하지 않았습니다. 요샌 걱정입니다. 소통하지 않으면 권위주의 정권으로 가기 마련입니다. 특히 정치 경험이 전무한 윤 대통령은 경험과 경륜이 많은 분들을 가능한 한 많이 상대해 그들의 경험을 사고 그들의 충고와 진언을 받아들이는 그런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전쟁 같은 대립’을 겪고 있는 정치권을 향해 진심 어린 조언과 충고를 남기신다면요.

“여야가 한 발짝씩, 아니 반 발짝이라도 물러나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려는 태도, 그리고 화해·포용·상생과 협치의 정치를 권하고 싶습니다. 민주당의 옛날 동지들, 특히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에게는 이런 충고를 하고 싶습니다. 균형 있는 감각으로 세상을 바라봤으면 좋겠다고요. 예컨대 우리나라 민주화를 위해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노력을 높이 사는 반면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박정희 대통령의 공로도 인정해야 합니다. 양면성을 다 인정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로잡고 승자 독식으로 국민을 대표해야 하는 비례성이 무너진 것을 개헌으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큰 정치 개혁이며 이를 위해 뜻있는 정치인들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尹 대통령, 탈당해 관조하며 통치해야”

윤 대통령에게도 한 말씀 남기신다면요.

“대통령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궁극적인 책임은 다 대통령이 지게 돼 있습니다. 어떤 결과든 최고 통치자인 대통령이 총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좀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나왔으면 합니다. 무엇보다도 여소야대 상황에서 야당 지도자, 야당 국회의원, 시민 지도자들을 만나 경청하고 허심탄회하게 설득·타협해야 합니다.”

윤 대통령과 사적 친분이 깊다고 들었습니다. 쓴소리에 대해 대통령이 섭섭해하지 않겠습니까.

“자기를 미워해서 싫은 소리를 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윤 대통령에게 애정이 있습니다. 저는 간절히 윤 대통령이 잘되기를,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윤 대통령과 조만간 만나신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원래는 만나기로 약속돼 있었는데 히로시마에 간다고 해서 연기됐습니다. 6월 내에는 만나리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만나서도 해야 할 얘기들을 하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국민 통합도 정치권의 큰 과제지만, 참 어려워 보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통합이 이뤄져야 한다고 보십니까.

“항상 선거 때마다 다 국민 통합을 얘기하지요. 그러나 실제론 그렇지 못하니 아쉽습니다. 구체적으로 저는 여야가, 진보가 됐건 보수가 됐건 남녀, 성평등, 노장청 세대 등을 차별 없이 대하는 것이 국민 통합일 거라고 봅니다. 다양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 연관기사
DJ계 원로가 바라본 한일 관계 “日, 김대중-오부치 선언 계속 번복”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