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화 “데뷔 30년, 극 중 이름으로 불린 건 처음이에요”
  • 하은정 우먼센스 대중문화 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6.10 15:05
  • 호수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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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차정숙》으로 N차 전성기 맞은 엄정화

엄정화가 N차 전성기를 맞았다. 인기리에 종영한 《닥터 차정숙》으로 드라마 배우 브랜드 평판(2023년 6월) 1위의 기염을 토했고, 현재 촬영 중인 《댄스가수 유랑단》에서 과거 톱가수의 내공을 십분 발휘하며 바쁘고도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은 20년 차 가정주부에서 1년 차 레지던트가 된 차정숙(엄정화 분)의 찢어진 인생 봉합기를 그린 드라마다. 엄정화는 극 중 가정의학과 레지던트 1년 차 차정숙을 연기하며 많은 이의 공감을 얻었다.

“저를 ‘차정숙’이라고 불러주셔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닥터 차정숙》은 제 유일한 드라마 히트작이고, ‘차정숙’은 제 인생 캐릭터예요.”

1993년 영화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로 데뷔해 가수 생활을 병행하면서 줄곧 톱스타로 살아온 그녀는 들뜬 모습을 숨기지 않았다. “극 중 캐릭터 이름으로 불렸던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그러고 보니, 최근 종영한 《닥터 차정숙》은 엄정화가 데뷔 30년 만에 만난 드라마 대표작인 셈이다. 서울 강남에서 엄정화를 직접 만나 드라마 종영 소감과 함께 N차 전성기를 누리는 근황에 대해 들었다.

ⓒ사람엔터테인먼트 제공

종영 소감부터 말해 달라.

“이렇게 반응이 좋을지 몰랐다. 재미있고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건 확신했지만 시청자분들이 이 이야기를 잘 따라와 줄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착한 드라마인데 착하지 않았던 것 같다. 너무 감사드린다. 차정숙 때문에 신나는 요즘이다.”

언제 인기를 실감하나.

“요즘 예능 《댄스가수 유랑단》을 촬영 중이다. 오랜만에 대학축제 무대에 섰는데 대학생들에게 ‘얘들아, 내가 누군지 알아? ’하고 물었더니 모두 ‘차정숙이요!’ 하더라. 내가 누군지 아는 것도 기쁜데 엄정화가 아닌 차정숙으로 불린다는 게 더 기쁘더라. 무대에 서는 것도, 차정숙으로 불리는 것도, 아이들이 떼창을 불러주는 것도 다 기쁘다. ‘3단 콤보’로 기쁜 날이었다. 사실 최근 몇 년 동안 인기나 활동이 조금 주춤한 상태로 지냈기에 드라마가 내 인생에서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그간 활동해 오면서 캐릭터로 불렸던 적이 없었다. 정말 감사드린다.”

극 중 캐릭터 차정숙처럼 실제로도 건강상 이유로 활동을 쉬어야 했던 시간이 있었다.

“실제로 나 역시 수술을 마치고 시야가 달라지는 느낌이 있었다.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며 살았지만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다는 생각에 ‘인생 별거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장숙과 비슷한 지점이 있다. 이후부터 나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 인생을 위해 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숙이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더 공감이 됐고 치유가 됐다.”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나.

“재미있는 장면이 많았는데, 특히 남편이 죽었다고 생각했던 장면이다. 그때 댓글 창에 ‘ㅋㅋ’가 끊임없이 올라오더라. 너무 재미있었다.”

어떻게 보면 차정숙의 서사가 안타깝진 않았나.

“오롯이 정숙의 감정을 따라갔는데 연기하면서는 정숙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워낙 긍정적이지 않나. 정숙이가 삶을 대하는 자세가 좋았다. 정숙이는 힘든 상황에 부닥쳤을 때 숨기보다는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다. 스스로 행복을 찾는다. 그게 제가 이 작품을 사랑하는 이유고, 정숙을 애정하는 이유다. 어느 부분은 저와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5년 만에 드라마 주연작이다.

“이 대본은 오래 기다렸다. 1년 정도 기다린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촬영을 끝낸 후에도 여러 이유로 편성이 뒤로 미뤄지면서 불안하기도 했다. 첫 방송을 하는 날이 《댄스가수 유랑단》이 첫 무대에 오르는 날이었는데, 사실 드라마에 신경이 너무 쓰여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날 일정이 다 끝나고서야 멤버들과 중간 즈음부터 시청했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아 일단은 안심했다. 그리고 다음 달 쏟아지는 기사들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그간 나의 힘든 시간들이 눈 녹듯 사라지며 눈물이 나올 정도로 행복했다.”

극 중 남편이 불륜을 저지르고 혼외자도 등장한다. 작품을 하면서 결혼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기도 했나.

“그렇진 않다. 드라마와는 별개로 개인적으로 생각이 달라진 건 있다. 사실 저는 결혼에 관심이 없었다. 일이 좋았다. 결혼 때문에 일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한데 요즘엔 시대가 바뀌어서 결혼이 연예 활동에 전혀 방해가 안 된다. 멜로에 출연하는 유부녀 배우도 많지 않나. 요즘 들어서는 지금 나이가 결혼 적기라는 생각이 들더라. 친구처럼 기대면서 평화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다. 하하.”

남편 역으로 나온 김병철과의 호흡도 참 좋았다.

“인성이 참 훌륭한 사람이다. 모난 데가 하나도 없고 배려심이 깊다. 상대 배우가 마음을 열게끔 사심 없이 모든 신을 연기한다. 그런 배우와 호흡을 맞출 수 있어 큰 행운이었다.”

요즘 기분도 궁금하다. N차 전성기라고들 하지 않나.

“진짜 행복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다. 예전에 이런 시간을 꽤 많이 겪어봤는데 근래에는 없었다. 연예인으로서 이런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았는데 차정숙이 내게 그 시간을 다시 선물해 줬다. 상을 받은 느낌이다. 누군가 내게 ‘축하해!’라고 말해 주면, ‘나 너무 기뻐!’ 하며 그 시간을 누리는 중이다. 정숙이도 의사로서 인생 2막을 시작했다면, 나도 이 사랑으로 다시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여전히 후배들에게 롤모델이 되며 대중적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예전엔 그런 부담도 있었는데 지금은 내게 주어진 일을 멋지게 잘 해내는 게 먼저인 것 같다. 그래야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고, ‘이것 봐, 나도 이렇게 하잖아. 그러니까 너희도 할 수 있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39세 때쯤 《디스코》라는 노래로 활동할 때 어느 인터뷰에서 제가 ‘후배들의 롤모델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어쩌면 제게 주문을 거는 것이기도 했다. 마흔 가까운데도 무대에서 노래하고 있으니 그 정도는 얘기할 수 있겠다 싶었다. 나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막막함을 느끼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숨은 노력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노래를 못 하게 됐을 때가 있었다. 그리고 8집 앨범이 나오기 전까지 9년이 걸렸다. 저도 의아했다.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앨범을 만들고 싶어 하지? 한데 꼭 해내고 싶었다. 그렇게 그 앨범을 만들었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댄스가수 유랑단》에서도 예전 곡들을 주로 부르는데, 지금 세대들은 모르는 곡들이다. 그것 역시 내게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지금 나이가 꿈꾸기에 늦었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다. 한데 꿈꾸기 적당한 나이가 어디 있겠나. 바로 지금이다.”

10년 후에 엄정화는 어떤 모습일까.

“잘 모르겠다. 상상이 안 된다. 한데 그때도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드라마의 결말은 마음에 드나.

“결국 정숙은 남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다른 사랑을 선택하지도 않고 오롯이 자신의 길을 혼자 걸어간다. 좋다. 마음에 든다. 로이를 선택했다면 그것 역시 누군가에게 부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정화에게 이 작품이 어떤 의미로 남았을지도 궁금하다.

“나의 히트작! 하하. 그간 활동하면서 드라마가 이렇게 흥행한 적은 없었던 같다. 그래서 내 대표작이 될 것 같다. 더불어 정숙이 덕분에, ‘무엇보다 내게 중요한 것’ ‘자기 스스로 행복해지는 방법’을 배웠다. 정숙이가 홀로 가겠다고 선택한 건 외롭거나 불행한 선택이 아니라 이제라도 자기 삶을 살아보겠다는 멋진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힐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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