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 대신 개딸, 쇄신 대신 친명…위기 자초한 이재명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3.06.09 12:05
  • 호수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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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경 ‘9시간 만의 사퇴’ 왜?…“팬덤 강화가 혁신”이라는 착각
‘개딸 서브-처럼회 토스-이재명 스파이크’…국민과 점점 멀어져

이재명의 더불어민주당은 새로운 위기 국면을 맞이했다. 위기 극복을 위해 둔 수습책이 결정적인 악수(惡手)가 됐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6월5일 당 혁신위원장에 임명한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이 과거 ‘천안함 자폭설’ 등 발언과 ‘친이재명’ 행보로 당 안팎에서 논란을 일으켜 불과 9시간 만에 사퇴하는 일이 일어났다.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초유의 사태다.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과 ‘김남국 의원의 가상자산(코인) 투기 논란’으로 도덕성 위기를 맞은 민주당은 혁신기구를 통해 전면적 쇄신 방안을 내놓기로 결의한 바 있다. 당 쇄신의 중대 분기점이 될 혁신기구를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이 대표는 쇄신에 대한 의지를 의심받는 것은 물론, 리더십에도 큰 오점을 남겼다. 계파 간 갈등 등 당 전체에 내홍도 격화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민주당의 지지율 흐름도 심상치 않다. 한국갤럽 기준으로 당 전체 지지율은 지난 한 달여간(5월 2주 차부터 6월 1주 차) 32%→33%→31%→32%로 큰 변화가 없지만, 총선 승리를 위해 꼭 잡아야 할 중도층과 20대(18~29세) 지지율은 요동치는 모습을 보였다. 같은 기간 중도층 지지율은 30%→33%→30%→26%로, 20대 지지율은 19%→32%→25%→21%로 크게 흔들리는 추세를 보였다. 돈봉투 의혹과 코인 투기 논란으로 꺾였던 중도층과 20대 지지율을 반성적 태도를 통해 간신히 회복하는 듯싶었지만, 근본적인 쇄신책이 지지부진 늦어지면서 다시금 추락하는 흐름을 보인 것이다. 

이래경 사태로 이재명 리더십 큰 타격

병을 치료하려면 올바른 진단이 우선이다. 진단이 틀리면 백약이 무효다. 이재명 대표는 왜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처방전을 냈을까.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 대표가 생각하는 혁신의 방향성이 민심과 괴리돼 있다는 지적이 적잖게 표출되고 있다. “팬덤 지지층을 강화하는 게 혁신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김종민 민주당 의원의 일침이 대표적이다. 김 의원은 “이렇게 되면 강성 지지층 지지는 더 강화될 수 있지만, 중도층과 일반 여론, 더 넓은 국민 지지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재명의 민주당’이 아니고 ‘국민의 민주당’으로 가야 한다. 혁신 논의의 핵심”이라는 김 의원의 말은 사실 정석에 가깝다. 특히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김 의원의 지적을 인수분해하면 ①현재 여론 흐름상으로는 이 대표 얼굴로 내년 총선 승리를 담보할 수 없고 ②좀 더 넓은 지지 획득을 위해선 이 대표가 ‘개딸(개혁의 딸)’이라 불리는 강성(적극) 지지층과 결별해야 하며 ③당 쇄신의 방향은 강성 지지층이 아닌 국민 전체를 바라보고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런 인식은 비명(非이재명)계는 물론 침묵하고 있는 상당수 현역 의원들을 포함해 당 전체에 상당히 퍼져있다. 

그런데 이 대표는 이런 분석과 인식에 동의하지 않는 모습이다. 특히 적극 지지층과의 결별에 대해서는 ‘노(No)’라는 단호하면서도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다. 어찌 보면 이 대표가 취임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모든 문제의 시작과 끝에는 바로 이 팬덤정치 이슈가 자리한다. 사실 정치인에게 지지자들과 결별하라는 주문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모든 게 과하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 “지금 개딸들은 민주당 게시판과 SNS를 점령함으로써 ‘과대 대표’되고 있고, 민주당의 주요 정치인들은 당파적 여론에 취해 국민 다수의 민심과 멀어졌다”(조기숙 이화여대 교수)는 진단이 나올 정도다. 이런 진단이 실제 민심을 관통하고, 이런 분위기가 내년 총선까지도 이어진다면 선거 결과는 불 보듯 뻔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체 이 대표는 왜 당 안팎의 숱한 반발과 공격 속에서도 자신의 리더십과 정체성의 핵심축에 팬덤정치를 두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지금 이재명의 민주당이 처한 위기와 한계, 과제 모두가 담겨있다. 시사저널이 살펴봤다.

ⓒ연합뉴스
이래경 전 민주당 혁신위원장은 ‘천안함 자폭설’ 등의 논란으로 6월5일 임명 9시간 만에 사퇴했다. ⓒ연합뉴스

“민주당에 민주가 없다”…토론 대신 문자폭탄

“세계사적 의미가 있는 새로운 정치행태.” 이 대표는 지난해 처음 ‘개딸 현상’이 나타나자 이를 이렇게 평가했다. 분명 처음에는 새로운 정치로 향해 가는 에너지를 담고 있었다. 이들의 모습엔 ‘직접·디지털 민주주의’라는 키워드들이 존재했고, 그게 ‘정치 효능감’과 결합하면서 정치 참여의 지평을 넓히는 것처럼 보였다. 대선 결과를 바꾸지는 못했지만, 대선 과정에서 정당과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정치적 효능감을 강하게 느낀 이들은 ‘집단적 각성’을 겪었다. 정당이 갈등을 조직하고 동원해 통합의 길로 가는 게 민주주의 원리라는 점을 기억하면 개딸들의 행동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시도였다.  

문제는 이들이 의미 있는 주권자로서의 행동보다는 반(反)정치적이고 폭력적인 언행들을 일삼으면서부터 시작됐다. 자신들의 주장과 다른 의견을 내는 이들을 향해 무차별적인 공격에 나선 것이다. 상대방을 악마화하며 적대시하고, 폭력에 가까운 문자폭탄과 막말 등을 당원 게시판과 SNS에 쏟아냈다. 이들은 당내 갈등의 주요 고비 때마다 합리적 토론과 논의를 밀어내고 그 공간을 막말과 공격으로 채웠다. 최근 불거진 돈봉투 의혹과 김남국 코인 사태 등에서도 개딸들은 제기되는 대부분의 의혹과 논란에 대해 ‘정권의 야당 탄압’과 ‘검찰의 표적 수사’ 등의 프레임으로 대응하며 ‘반성과 사과’라는 흐름을 당에서 밀어내는 선봉장 역할을 했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의 행동과 목소리에 강경파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올라타면서부터 시작됐다. 개딸들이 문제를 제기하고(서브), 그걸 강성 친명계 의원 모임인 ‘처럼회’ 등에서 당내 주요 의제로 끌어올리고(토스), 이재명 대표가 그 의제를 실제 두둔(혹은 비판)하거나 집행하는 모습들이(스파이크) 반복적으로 연출됐다. 위장 탈당부터 검수완박 법안 강행, 당헌 80조 개정 등 주요 기로에서 개딸들과 처럼회 등 강경파 친명계 의원들은 이 대표와 함께 ‘무조건 직진’ 모드로 내달렸다. 

이들과 다른 의견을 내면 ‘겉은 민주당, 속은 국민의힘’을 뜻하는 은어인 ‘수박’ 같은 폭력적인 언사가 수시로 튀어나왔다. 일련의 흐름 속에서 당내 질서와 규범은 흐릿해졌고, 소금 같은 쓴소리는 내부 총질로 공격받았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는 실종됐고, 건강한 토론은 점차 민주당에서 힘을 잃어갔다. 불체포 특권을 없애겠다는 대선 공약을 지키라는 항의도, 기소돼도 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당헌을 바꾼 것에 대한 비판도, 권리당원 투표가 전당대회 의결보다 우선한다는 당헌 개정안을 밀어붙이려는 것에 대한 지적에도 돌아오는 답은 ‘문자폭탄’이거나 ‘내부 총질’이라는 손가락질이 대부분이었다. 오히려 “진보라고 꼭 도덕성을 내세울 필요가 있느냐. 우리 당은 너무 도덕주의가 강하다”(양이원영 의원)는 발언이 당내에서 분출되기까지 했다.

동력(개딸: 주권자가 명령한다)과 명분(친명계: 지지자가 원한다), 권한(이 대표: 선출된 권력)을 가진 채 민주당의 새로운 주류로 떠오른 이들은 당내 청년들과 원외 인사들의 목소리에도 거칠게 대응했다. 코인 논란을 야기한 김남국 의원과 김 의원 사태 수습 과정에서의 이 대표의 미지근한 리더십을 비판한 당내 청년 정치인들에게 일부 극단 지지자는 ‘원외 8적(敵)’이란 낙인을 찍고 괴롭혔다. 여기에 일부 친명계 의원도 가세했고, 이 대표는 수수방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전문가들은 쓴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민주당은 도덕적으로 파산했다”(박성민 정치컨설턴트), “미 의사당 폭력 사건 때의 트럼프가 떠올려지는 게 한국 민주당의 어처구니없는 현주소”(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욕설 댓글 개딸, 트럼프 지지자와 굉장히 유사한 포퓰리즘”(조기숙 교수) 등의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2월10일 대장동 비리 의혹으로 서울지방검찰청에 출석하는 이재명 대표를 지지하는 집회가 서울지검 삼거리에서 열리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이재명이 개딸 손 못 놓는 3가지 이유

당 안팎의 전방위적 결별 요구에도 이재명 대표는 ‘개딸과의 동행’을 이어나가고 있다. 대체 왜 이 대표는 개딸과 함께하는 걸까. 민주당 복수의 핵심 관계자는 이 질문을 뒤집어서 봐야만 상황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이 대표에게 개딸이 필요하고, 개딸에게도 이 대표는 필수적이다. 이 대표와 개딸은 이제 서로를 떼서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운명공동체가 됐다는 분석이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개딸은 이 대표에게 ①정치적 동력(대선 패배에서 헤어나와 다음을 기약하게 만듦) ②정치적 대외 전선(反윤석열 구도를 선명하게 이어가게 해주는 세력) ③정치적 대내 전선(민주당 비주류로서 당 개혁의 당위성을 선사) 등의 핵심 가치를 선사한다. 거꾸로 개딸에게 이 대표도 대체불가능한 존재다. 이 대표만큼 자신들의 요구를 가장 충실히 이행하는 정치인은 찾기 어렵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이 대표 못지않은 팬덤을 누렸지만, 이 대표만큼 지지층과 거리가 좁지는 않았다. 이 대표는 개딸들의 운동장인 온라인 사이트 ‘재명이네 마을’의 이장으로 활동할 만큼 팬덤과의 소통에 적극적이다.

문제는 이 대표의 이런 행보가 ‘과연 내년 총선 승리에 유리하게 작용하는가’ 여부다. 시사저널이 접촉한 대부분의 민주당 관계자는 이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현재 개딸들의 모습은 폐쇄적이고 순혈주의적 성격을 가지는데, 그 자체로 외연 확대가 필수적인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지만, 선거는 국민 전체가 하는 만큼 강성 지지층 규합만으로는 총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이낙연 전 대표는 물론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수박’이라고 부르고 적으로 내모는 상황”이라면서 “유권자 연합을 해체하는 걸 넘어 ‘뺄셈 정치’ 그 자체가 지금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개딸들이 지금 민주당이 유리하게 싸울 공간에서 자꾸 당을 이탈시키고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초선 의원은 “이 대표와 개딸은 여론이 문제를 제기하면 ‘국민의힘은 어떤가’라고 자꾸 반문한다. 그렇게 민주당의 가장 큰 자산인 도덕성을 스스로 깎아내린다. 우린 야당이다. 정책으로 승부를 볼 수 없다. 그건 여당의 전략이다. 도덕적 우위 경쟁으로 민심을 가져와야 하는데, 자꾸 엉뚱하게 물타기를 하려고 한다”고 했다. 시사저널이 접촉한 상당수 관계자도 “민주당의 지금 경쟁우위가 무엇인가. 입법권력을 가진 원내 1당이 ‘거리정치’와 ‘장외투쟁’을 외치는 게 과연 유효한 전략일까. 과연 지금이 ‘윤석열 탄핵’을 외칠 때인가”라는 반문을 많이 내놨다. 

개딸 논쟁이 민주당의 진짜 문제를 가리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18대 국회 때부터 민주당에서 활동한 베테랑 보좌관은 이렇게 말했다. “‘개딸’ 문제가 사라지면 과연 국민은 민주당을 다시금 수권능력을 가진 정당으로 바라볼까. ‘개딸 아웃’을 외치는 비명계는 과연 이재명계를 대체해 민주당을 총선 승리로 이끌 수 있는 비전과 가치를 선보이고 있는가. 지금 이 질문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어서 빨리 개딸 논란이 해결되고 진짜 중요한 다음 이슈로 넘어가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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