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 펑크’에 담뱃값 8000원으로? 꿈틀대는 인상론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3.06.07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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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개최 포럼서 “물가는 오르는데 담배가격만 8년 전 수준”
모자란 세수 메우려는 시도? 전자담배 가격도 동반인상하나
흡연자연대 “77% 인상률 상품 없었다…서민에게 부담 전가”
서울역 광장에 마련된 흡연구역에서 시민들이 흡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역 광장에 마련된 흡연구역에서 시민들이 흡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 1갑에 4500원인 담배 가격을 8000원 수준으로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일부 전문가 주장이지만 정부가 개최한 포럼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가볍게 넘길 수 없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세수 부족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를 벌충하고자 ‘꼼수 증세’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나오는 상황이다.

담배 가격 인상론에 다시 불이 붙었다. 정부가 개최한 포럼에서 담배 가격을 8000원으로 올리자는 주장이 나와서다.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지난달 31일 서울 전경련회관에서 개최한 ‘제36회 세계 금연의 날 기념식 및 포럼’에서 서홍관 국립암센터 원장은 축사에서 담뱃값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8000원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 원장은 2015년 담뱃값 두 배 인상을 이끈 인물이다. 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OECD 38개국 중 한국의 담배 가격은 2020년 기준 다섯 번째로 낮다.

모든 물가가 오르고 있지만 담뱃값은 여전히 8년 전에 머물러 있어 가격이 낮다는 체감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조홍준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은 ‘담배 없는 일상을 위한 담배규제 포럼’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2015~2022년간 1인당 실질국민소득 증가율이 10.1%인 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담배 가격은 하락했다고 볼 수 있다”라고 밝혔다. 그는 담배 가격을 인상하지 않으면 정부가 담배 규제 의지가 없다는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엔데믹(감염병 주기적 유행) 이후 증가한 흡연율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가격을 인상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성인 흡연율(궐련 기준)은 19.3%로 전년 대비 0.2%포인트 올랐다. 액상형과 궐련형 전자담배 사용률은 전년 대비 각각 0.3%P, 0.7%포인트 오른 2.3%, 4.3%로 나타났다.

담뱃값 인상 요구는 꾸준히 있어왔다. 지난 2021년에도 보건복지부가 2030년까지 담배에 건강증진부담금 인상을 추진하는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인상 가능성이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정부가 당장 인상할 계획이 없다고 밝히면서 사그라졌다. 이런 가운데 다시 인상설이 제기되면서 흡연자, 비흡연자, 업계 등 관계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담뱃값 8000원’ 주장이 나온 자리가 정부가 개최한 포럼이라는 점에서 일부 전문가의 의견이라고만 여길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하지만 그 시점이 묘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4월까지 국세는 지난해보다 34조원이 덜 걷혔다. 경기 침체 영향이다. 올해 세수 결손이 불가피하다고 기획재정부도 바라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세수를 메우려고 담배가격을 인상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현행 일반담배(궐련)의 경우 한 갑의 판매가격은 4500원이다. 이 가운데 제세부담금은 담배소비세 1007원, 지방교육세 443원, 개별소비세 594원, 등 총 3323원이다. 담배 한 값에 매겨지는 세금 비중은 74%다. 담배 가격이 인상된다면 상당한 규모의 세수가 확보될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가 거둬들인 담배 세수는 약 11조8000억원이다. 담뱃값 인상 전인 2014년(43억6000만 갑)보다 담배 판매량(36억3000만 갑)은 약 17% 줄었으나 세수는 5조원 가까이 늘었다.

서울 청계광장 입구 바닥에 금연 표시판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서울 청계광장 입구 바닥에 금연 표시판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서민 기호식품으로 세금 충당해선 안돼”

흡연 관련 단체는 인상설이 주장된 데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흡연자인권연대 측은 “물가가 올랐다고 하지만 77%(4500원→8000원)란 폭발적인 인상률을 보인 상품은 없었다”며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의 법인세는 인하하면서 서민의 기호식품인 담배에서 세금을 충당한다고 하는 것이 과연 국민을 위한 정부인지 의심스럽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담배, 소주 등 서민이 주로 이용하는 제품을 가지고 세수를 메우려는 시도는 서민에게 부담을 전가시키는 잘못된 생각”이라고 꼬집었다.

앞서 지난 4월 담배 관련 세수가 다시 수면 위로 올랐던 적이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국회에서 궐련형 전자담배 수요의 세율을 놓고 “일반 담배와 유사하게 취급돼야 한다”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당시 기재부는 “전자담배 세율 인상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해명자료를 냈지만 전자담배협회 총연합회는 “궐련형 전자담배도 일반담배 수준 세금 부과를 검토하겠다는 발언을 한 것은 모든 종류 담배 세율 인상안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라며 깊은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일반 담배 인상이 이뤄지면 형평성 차원에서라도 전자담배 가격 인상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추가적인 세수 확보가 가능한 셈이다.

금연 사업 예산이 갈수록 줄고 있는 상황에서 금연 정책엔 힘을 기울이지 않으면서 가격만 올리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국가금연지원서비스 예산은 담뱃값이 인상된 2015년 1475억원으로 정점을 찍고 꾸준히 삭감돼 지난해 1165억원까지 줄었다. 그사이 궐련형 전자 담배 등의 수요는 갈수록 늘고 있다.

흡연자인권연대 측은 “일본의 경우 철저한 분연정책으로 흡연구역이 곳곳에 설치돼 길거리에 꽁초를 아무데나 버리지 않는 흡연 문화를 갖고 있다”며 “흡연자를 손가락질할 것이 아니라 흡연구역 증설 등 담배에 대한 세금이 목적에 맞게 쓰여지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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