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왕국’ 디즈니의 뮤지컬 도전도 통했다
  •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6.11 14:05
  • 호수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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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미녀와 야수》 등의 뮤지컬화 성공으로 제2 전성기
디즈니 콘텐츠의 변화무쌍한 도전 계속 이어져

디즈니는 1928년 사운드트랙이 포함된 유성 애니메이션 《증기선 윌리》를 처음 선보였다. 이후 한 세기 넘게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영향력을 가진,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다국적 콘텐츠 기업이 됐다. 우리나라 중장년 세대도 유년 시절 디즈니라는 회사를 알기 이전부터 《미키마우스》와 《백설공주》는 곁에 있었다. 누구나 한번쯤은 부모를 졸라 디즈니 캐릭터 상품을 사고 싶어 했다. 해외에만 있다는 디즈니랜드에 가보는 것을 꿈꿨던 적이 있을 것이다.

얼마 전 디즈니 유명 뮤지컬 애니메이션 《인어공주》(1989)를 원작으로 이를 실사영화로 새롭게 각색한 버전이 공개됐다. 개봉을 앞두고 예고편만 공개됐을 때 주인공 에리얼 공주가 애니메이션과 달리 흑인 배우여서 논란이 됐다. 특히 유년 시절에 하얀 피부의 에리얼 공주를 접했던 사람들은 오랫동안 품어왔던 자신만의 인어공주와는 다른 모습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심리가 컸다. 개봉 후 분위기는 달랐다. 무대와 스크린을 모두 경험한 베테랑이자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시카고》의 연출가인 롭 마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완성도 높은 뮤지컬 영화로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뮤지컬 《인어공주》 ⓒPhoto by Joan Marcus
뮤지컬 《인어공주》 ⓒPhoto by Joan Marcus 제공

《인어공주》가 쏘아올린 디즈니 전성기

이처럼 너무나 유명한 원작을 잘 각색해 만들면 시장도 넓히고 콘텐츠의 생명력을 연장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 역적이 되기도 한다. 디즈니 콘텐츠에는 세대를 초월한 열성 팬이 워낙 많다. 그들의 대표 애니메이션을 새롭게 각색한 버전을 만드는 것은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한 디즈니가 애니메이션이 아닌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라이브 쇼를 만들어 공연계의 큰손으로 등장한 지도 이제 30년이 돼간다.

디즈니의 백 년 역사에도 흥망성쇠는 있지만 《인어공주》가 1990년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르네상스를 연 것은 분명하다. 이 작품의 전 세계적인 성공은 하워드 애쉬맨(작사)과 알란 맨켄(작곡)의 음악에 힘입은 바 크다. 이 콤비는 1980년대 초에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장기 흥행했던 뮤지컬 《리틀 숍 오브 호러스》의 창작자였는데, 디즈니에 스카우트돼 《인어공주》와 《미녀와 야수》(1991), 《알라딘》(1992) 등 잇달아 홍행작을 맡았다.

뮤지컬 전문가를 영입해 음악에 자신감을 가진 디즈니는 음악의 완성도가 매우 중요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무대에도 도전했다.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는 디즈니 시어트리컬 프로덕션을 1993년에 설립하고, 이듬해 《미녀와 야수》를 먼저 무대화했다. 《인어공주》가 심해 속 어류와 함께 사는 인어 설정이라 무대화에 어려움이 예상된 반면 《미녀와 야수》는 인간들의 이야기가 배경이어서 첫 작품으로 낙점된 것이다. 이 작품이 아카데미상 최초로 작품상에 노미네이트된 작품이라는 점도 컸다.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2007년 폐막까지 장장 14년간 장기 흥행작이 됐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비롯해 13개 국가, 115개 도시에서 공연됐다.

뮤지컬 《미녀와 야수》 ⓒJohan Persson
뮤지컬 《미녀와 야수》 ⓒPhoto by Johan Persson 제공

첫 무대화의 대성공에 힘입어, 디즈니는 두 번째 도전에 나섰다. 엘튼 존(작곡)과 팀 라이스(작사)가 함께 만들어 성공을 거둔 《라이온 킹》(1997)이었다. 인간이 등장하지 않고 동물 캐릭터만 등장하는 이 작품의 무대 구현에 대한 우려가 있었으나 인형극 전문가 줄리 테이머를 연출가로 영입하면서 특별한 마법을 담은 작품으로 탄생했다. 이 작품은 《미녀와 야수》를 뛰어넘는 평단과 관객들의 호평 속에 토니상을 휩쓸었고, 현재까지 무려 26년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중이다. 특히 디즈니는 《라이온 킹》을 장기 공연하기 위해 초연을 올린 뉴암스테르담 극장을 49년간 장기 임대해 자사 작품들을 안정적으로 올릴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다.

뮤지컬 《라이온 킹》 ⓒPhoto by Matthew Murphy 제공
뮤지컬 《라이온 킹》 ⓒPhoto by Matthew Murphy 제공

하지만 디즈니의 브로드웨이 도전이 항상 환상적인 마법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2006년 선보인 세 번째 작품인 《타잔》은 흥행에 실패했다. 정글 속에서 줄을 잡고 공중을 가로지르는 고릴라들의 퍼포먼스는 눈길을 끌었지만 인간과 고릴라 사이에 존재하는 타잔의 캐릭터를 무대 위에서 흥미롭게 구축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기다려온 《인어공주》(2008)가 드디어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랐다. 《인어공주》는 디즈니의 새로운 르네상스 시대를 열게 한 특별한 작품이기에 기대가 컸지만 공연을 앞두고 《타잔》의 실패로 인한 긴장감이 고조됐다. 결과 역시 아쉽게도 평타 이하였다. 에리얼 역의 시에라 보게스를 비롯한 배우들의 퍼포먼스는 뛰어났지만 다소 어둡고 단순한 무대장치와 효과는 전작들에 비해 재미를 이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원작의 심해를 표현하기 위한 환상적인 무대장치를 기대했지만, 연출가는 조명과 간단한 배경막으로만 바다를 표현했다. 특히 에리얼이 물속에서 헤엄치는 장면에서 몸에 와이어를 달고 공중을 부양하는 기본적인 플라잉 액션도 하지 않고 무대 바닥에서 롤러스케이트(힐리스)를 타고 수평 이동만 했다. 이후 플라잉 기법을 부분적으로 도입하면서 수정을 가했으나 타이밍은 이미 늦었다.

뮤지컬 《알라딘》 ⓒPhoto by Cylla von Tiedemann 제공
뮤지컬 《알라딘》 ⓒPhoto by Cylla von Tiedemann 제공

멈추지 않는 디즈니의 브로드웨이 도전

그럼에도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원작 각색 프로젝트는 멈추지 않았다. 이후 요술쟁이 지니 캐릭터의 활약이 돋보이는 《알라딘》(2014)으로 만회했다. 뉴욕타임스로부터 “멋지고 화려하다”는 호평을 받았고 글로벌 흥행을 기록했다. 《라이온 킹》이 초연됐던 뉴암스테르담 극장에서 시작해 그 성공 공식을 따라가고 있다. 《겨울왕국》(2018)도 원작 애니메이션의 대성공에 비하면 기대보다는 조금 아쉬움이 있었지만 평타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디즈니 뮤지컬 팬이라면 최근 반가운 소식이 있다. 국내 공연제작사 클립서비스와 에스엔코, 롯데컬처웍스가 디즈니 시어트리컬 프로덕션과 업무협약을 맺고 한국 공연을 공동 제작한다는 소식이다. 가장 먼저 《알라딘》의 한국 라이선스 공연이 2024년 말 펼쳐진다. 또한 2004년 한국 공연을 가졌던 《미녀와 야수》가 돌아오고 《겨울왕국》 라이선스도 리스트에 올라 있다.

뮤지컬 《겨울왕국》 ⓒDisney Theatrical Productions 제공
뮤지컬 《겨울왕국》 ⓒDisney Theatrical Productions 제공

좋은 드라마와 뛰어난 음악성, 그리고 든든한 팬덤과 막강한 자본력이 단단하게 결합된 ‘디즈니 + 브로드웨이’ 브랜드는 마치 오래전부터 우리 곁에 존재해온 것처럼 자연스럽다는 점이 이들의 최대 강점이자 최고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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