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충격’ 호소한 박희영 출근…유족들 “어떻게 감히” 절규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3.06.08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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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구청장, 보석 석방 이튿날 구청장실서 업무
유족들, 울분 토하며 ”참사로 공황장애? 즉각 사퇴하라”
6월8일 서울 용산구청에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참사 부실 대응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보석으로 석방된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출근을 저지하기 위해 구청장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6월8일 서울 용산구청에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참사 부실 대응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보석으로 석방된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출근을 저지하기 위해 구청장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혐의로 구속됐다 건강 이상을 호소해 5개월 만에 보석으로 풀려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8일 오전 청사로 출근했다. 출근을 저지하려던 유족들은 예상보다 일찍 박 구청장이 청사 안으로 들아간 사실을 확인하고 울분을 토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와 유가족협의회는 이날 오전 8시께부터 박 구청장 출근을 막기 위해 용산구종합행정타운 앞에 모였다. 

유가족들은 '박희영 용산구청장 즉각 사퇴하라'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어떻게 감히 이태원 땅을 다시 밟고 구청으로 돌아와 일을 할 생각을 할 수 있느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참사 희생자 고(故) 송채림씨의 아버지 송진영 유가족협의회 대표직무대행은 "박희영 구청장이 트라우마로 인한 공황장애를 이유로 나왔다. 말도 안되는 얘기"라며 "박 구청장이 공황장애면 그 현장에 있던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은 이미 다 죽은 목숨"이라고 성토했다. 

이어 "어떻게 이런 무능한 사람이 철면피 같은 얼굴을 들고 다시 구청에 출근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이런 무능한 구청장에게 다시 맡긴다는 건 또 다른 참사를 부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 구청장의 출근을 막으려던 유족들은 그러나 그가 이미 출근했다는 것을 파악하고 오전 8시18분께 9층 구청장실로 향했다. 

이들은 구청장실 앞에서 박 구청장과의 만남을 요구했다. 유족들과 이를 막으려던 용산구청 직원들이 뒤엉키면서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유족들은 막아선 구청 직원들을 향해 "내 새끼가 죽어서 이런다. 그러니 비켜달라" "참사 때 뭐했나. 그땐 안 지키고"라며 분노를 드러냈다. 유족들은 "사퇴하라", "나와라" 등 고함을 지르며 구청장실 문을 거세게 흔들었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이태원파출소 소속 8명이 현장으로 출동해 상황을 정리했고, 유족들도 오전 9시로 예정된 기자회견 시간이 임박하자 '박희영 용산구청장 즉각 사퇴하라'라고 적힌 스티커와 사퇴 촉구문을 붙이고 발걸음을 돌렸다.

유족들은 행정타운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 구청장 보석 석방 결정을 규탄하고 즉각 사퇴를 요구했다.

유족들은 "박 구청장은 참사 직후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책임을 지기는커녕 진실을 은폐하기에 급급했으며 어제는 구치소를 나서는 길에 사과 한마디 없이 줄행랑을 쳤다"며 "공직자로서 자격도 능력도 없는 박 구청장은 즉각 물러나라"고 소리쳤다.

6월8일 오전 서울 용산구청 앞에서 열린 박희영 용산구청장 보석 석방 출근 저지 및 사퇴 촉구 기자회견에서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6월8일 오전 서울 용산구청 앞에서 열린 박희영 용산구청장 보석 석방 출근 저지 및 사퇴 촉구 기자회견에서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한편, 이태원 참사 사건을 심리하는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는 전날 박 구청장의 보석 청구를 받아들였다. 1심 구속 만기(6개월)를 앞두고 보증금을 조건으로 한 석방 결정이다. 주거지는 용산구 자택으로 제한되며 구청 출·퇴근은 가능하다. 법원 결정으로 박 구청장은 정지됐던 직무권한도 다시 행사하게 됐다.

앞서 박 구청장 측 변호인은 지난 2일 첫 보석 심문에서 "상당한 고령이며 사고 직후 충격과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의 스트레스로 신경과에서 처방받아 진료받는 상태"라며 "수감 후에는 상태가 악화해 불면과 악몽, 불안장애, 공황장애에 시달리고 있으며 구치소에서 최대한 약을 처방받아 치료에 매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혐의로 구속기소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법원의 보석 청구 인용에 따라 6월7일 오후 서울 구로구 남부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혐의로 구속기소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법원의 보석 청구 인용에 따라 6월7일 오후 서울 구로구 남부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박 구청장이 중대한 건강 이상을 이유로 보석을 신청하고 허가받았기 때문에 구청 출퇴근 등 정상적인 업무수행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는 석방 이튿날 곧바로 출근했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박 구청장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앞으로도 정상 출근한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족은 박 구청장이 석방된 전날에도 서울남부구치소를 찾아 강력 항의했다. 구치소를 나와 유족들을 피해 황급히 차량으로 향한 박 구청장은 '유족에게 할 말 없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죄송하다. 애통한 심정"이라고 답했다. 

유족들은 당분간 박 구청장 사퇴를 요구하며 출근길 저지에 나설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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