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의 호남 지지자들은 무단횡단도 안 했는데”…공론장 망가진 민주당
  • 박나영 기자 (bohena@sisajournal.com)
  • 승인 2023.06.09 14:05
  • 호수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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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딸’ 공격에도 쓴소리 멈추지 않는 민주당 청년 정치인 8인
“개딸과의 결별이 해결책 아냐…이견 적대화하는 문화 없애야”

‘개딸’의 거침없는 공격과 비난에도 꾸준히 자기 목소리를 내온 더불어민주당 청년 정치인들이 있다. 개딸에 의해 ‘원외 8적’이라 이름 붙여진 이들로, 이동학·박성민 전 최고위원, 권지웅 전 비대위원, 정은혜 전 의원, 성치훈 전 청와대 행정관, 이인화 전 국토부 장관 보좌관, 하헌기 전 청년대변인, 신상훈 전 경남도의원이다. 이들은 5월12일 ‘당 쇄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돈봉투’ 의혹과 가상화폐 의혹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낸 후 개딸의 표적이 됐고,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와 악성 댓글, 악의적인 내용의 포스터 등으로 공격을 당했다. 

이들 중 다수는 최근 몇 년간 당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낼 때마다 이어진 무자비한 공격에 어느 정도 무뎌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도를 넘는 욕설이나 위협에는 여전히 생채기가 난다. 권지웅 전 비대위원은 “부모님이 뜬금없이 ‘요즘 힘들지?’라는 안부를 물으면 속으로 ‘또 악성 댓글을 보셨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친구 중에는 어느 시점부터 제 페이스북 댓글을 아예 읽지 않는다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정치인으로서 자신이 감수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가족이나 주변인들의 상처까지 생각하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계속되는 비난과 욕설을 감수하면서 이들이 쓴소리를 멈추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불어민주당 이동학 전 최고위원과 박성민 전 최고위원 등 청년 정치인들이 5월12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 쇄신을 촉구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더불어민주당 이동학 전 최고위원 등 청년 정치인들이 5월12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 쇄신을 촉구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인화 전 보좌관, 박성민 전 최고위원, 권지웅 전 비대위원, 이동학 전 최고위원, 정은혜 전 의원, 하헌기 전 청년대변인, 성치훈 전 청와대 행정관 ⓒ연합뉴스

“이재명 향했던 ‘문빠’의 린치, 개딸이 이어”

당의 정체성을 지키겠다는 사명감이다. 이동학 전 최고위원은 “우리 선배 세대가 민주주의를 열기 위해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얻은 가치와 철학이 있는데,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고 더 다양한 목소리를 듣겠다고 모인 집단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모순”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김대중 대통령 때는 호남 사람들이 무단횡단도 안 했다. 지지자들이 욕먹을 행동을 하면 대통령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 봐서였다.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 역시 그랬다. 국민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고민하면서 이른바 ‘비판적 지지’를 했었는데, 지금은 건강한 토론은 사라지고 공론장이 망가져버린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지금의 행태는) 당이 사과하는데 옆에서 지지자들이 ‘왜 사과하냐’ 이러고 있다. 국민 입장에서는 전혀 사과받는 느낌이 안 든다. 그런 차원에서 민주당은 한 번도 사과한 적이 없는 거다”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낙연 대표 시절에 서울·부산 보궐선거에서 후보를 내느냐 마느냐로 갑론을박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당시 지지율이 높지 않았던 이재명 대표가 반대한다고 소수 의견을 내면서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다. 그때 이 대표에게 가해졌던 린치들이 이 대표가 다수파가 된 지금 다수와 다른 의견을 내는 이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가해지고 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에게 민주당이 매력적인 정당으로 보이겠나”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개딸과의 무조건적 절연이 해결책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정치권 내 팽배한 적대성이 특정 지지자들과 결별한다고 해서 사라질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권 전 비대위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표결 당시 탄핵이라는 방식의 문제 해결에 반대하는 일부 국회의원의 명단을 한 민주당 의원이 공개하면서 지지자들에게 사실상 이들을 공격해도 좋다는 메시지를 준 적이 있다. 그렇게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스스로 ‘적폐청산’ 정부라고 명명하면서, 상대가 없어져야 할 대상이라는 뉘앙스를 분명하게 줬다. 당시 새누리당이 없어져야 할 존재였나. 그렇게 봐서는 안 됐다. 이렇듯 민주당이 상대를 적으로 만드는 문화를 키워온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현재 개딸과의 절연을 주장하는 조응천 의원 등도 지지자와의 결별이라기보단 이런 문화와 결별하라는 뜻일 것이다. 이견을 적대화하는 행위가 반복되는데도 당이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는 데 대한 문제 제기다”라고 말했다. 

개딸이 100만 명이 넘는 민주당 당원을 대표하는 목소리가 아닌 극히 일부임을 자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헌기 전 청년대변인은 “과거 이재명 대표가 ‘문빠’(문재인의 강성 지지층) 공격을 많이 받을 때 ‘1000명 차단하니 조용해지더라’는 말을 했다. 전체 모수에 비해 (극성 지지층은) 그만큼 소수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개딸은 당원 100만 명 중 극소수”

당원과의 구시대적인 소통 방식에서 벗어나야 당원 전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하 전 대변인은 “주례 여론조사처럼 당내 여론조사를 진행하면 강성 지지층뿐 아니라 말을 안 하고 있는 이들의 의견까지 종합된 정규 분포가 나올 텐데, 당이 전체 구성원의 총의를 모으는 방식을 고민하지 않는다. 게시판을 열어놓고 청원을 받는 방식은 항상 참여하는 사람만 한다. 비난 문자를 보내느냐, 게시판에 글을 남기느냐의 차이다. 전체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다양한 민주적 절차와 장치들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성 지지층은 정치권의 해묵은 과제다. 이를 당원들의 문제로 귀결시켜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권 비대위원은 “강성 지지층의 문제를 당원들 태도의 문제로 돌리는 것은 당이 무책임한 것이다. 상대는 틀렸고 자신은 무조건 옳다는 이분법적 사고에 민주당도 빠져있다는 것을 깨닫고 당의 문제로 받아들여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명의 정치인을 둘러싼 팬덤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기도 하지만, 상식을 뛰어넘는 방어와 공격 태세로 전환될 때는 정치권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 전 대변인은 “팬덤정치 자체가 문제라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은 팬덤정치의 긍정적인 사례다. 당내 아무런 자산이 없던 분이 노사모 덕분에 대통령이 된 것이다. 지금 개딸의 행태는 과거 ‘문빠’들이 과도하게 이재명을 공격하고 부정적 서사를 뒤집어씌운 데 대한 반작용도 있다. 정치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강성 지지층에 기대서는 당이 경쟁력을 갖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박성민 전 최고위원은 “국민의힘도 과거 황교안 대표 시절에 의원들이 비상식적인 집회에 참석하고 부적절한 세력과 결탁하는 모습이 있었는데 선거에서 연패하면서 그런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정리됐다”고 말했다. 그는 “당장은 권력이 잘 유지되고 있는 것 같아도 선거에서 드러나기 마련”이라며 “당이 본선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본인들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해왔던 일들은 다 무용지물”이라고 꼬집었다. 

당의 혁신과 관련해서는 ‘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현 지도부가 하지 못하는 것을 보완해줄 혁신의 이미지로 거듭나지 못하면 떠난 지지자들이 돌아올 이유가 없다는 분석이다. 이 전 최고위원은 “늘상 나오는 얘기지만 이재명만으로도 안 되지만 이재명 없이도 안 된다. 같은 맥락에서 지지층만으로도 안 되지만 지지층 없이도 안 된다. 누군가는 지지층을 추스르고 모으고, 또 다른 누군가는 지지층을 확장할 수 있는 팀워크를 발휘해야 하는데, 현 지도부는 모두 한 색깔이어서 지지층만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사퇴론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공세라는 지적이다. 그는 “이 대표를 무한정 흔드는 것은 잘못됐다고 본다. 오히려 이 대표가 혁신위를 빨리 마련할 수 있도록 명분을 깔아주면서 혁신의 방향으로 돌진해야 한다. 새로운 기준을 세우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국민들은 윤석열 정부에도 민주당에도 실망해 (투표를) 포기하게 된다”고 봤다. 

박 전 최고위원도 “무당층이 늘어나는 것은 여당이 못해도 우리에게 오지 않을 수 있다는 시그널”이라며 “‘돈봉투’ ‘코인’ 등 문제를 단호하게 정리하고 선 긋는 새로운 리더십이 혁신위에 기대하는 바가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권 전 비대위원은 “이번 혁신위원장에 내정된 인물(이래경)은 전형적으로 상대는 틀리고 우리는 맞다고 생각하는 분이었다. 민주당의 적대적 이분법적 세계관을 바꿀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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