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은 공정성 시비에 취지 빛바랜 물납 제도
  • 신관식 세무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6.20 07:35
  • 호수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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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부연납과 물납 등 도입으로 세수 확보 편의성 높여
일부 조항 때문에 거액 자산가들 특혜 논란도 여전

최근 대기업 총수들의 사망으로 후계자들이 경영권을 물려받으면서 상속세 물납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일반인들이 쉽게 생각하지 못했던 기업의 비상장주식, 미술품 등으로 세금을 납부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상속세를 포함해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세금은 1회에 한해 현금 납부가 원칙이다. 특히 상속세는 망인(피상속인) 사망일 현재 소유하고 있던 모든 재산이 과세 대상이므로 거액의 세금이 나올 수 있고, 심지어 유산을 팔아 납부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과세 당국은 납세자들의 납부 편의를 위해 상속세를 여러 번 나눠 낼 수 있게 하는 분납, 연부연납은 물론 현금 대신 부동산·유가증권·미술품 등으로 세금을 낼 수 있도록 하는 물납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2021년 3월11일 서울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열린 물납제 관련 세미나에서 이광수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이 국부 유출 방지와 미술품·문화재 조세 물납제 도입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3월11일 서울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열린 물납제 관련 세미나에서 이광수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이 국부 유출 방지와 미술품·문화재 조세 물납제 도입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납 대상물의 정교한 가치 평가 필요

다만, 모든 상속인에게 물납을 허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먼저 납부해야 할 상속세가 2000만원을 초과해야 한다. 부동산과 유가증권으로 상속세를 물납하기 위해서는 부동산과 유가증권을 합한 상속재산가액이 총상속재산가액의 2분의 1을 초과해야 하며, 상속세로 납부할 세액이 총상속재산가액에 포함된 금융재산가액을 초과해야 한다. 예를 들어 상속세로 납부할 세액이 1900만원이면 물납할 수 없다. 상속세로 납부할 세액이 1억원인데 상속세 계산 시 포함된 금융재산가액이 1억1000만원이면 물납할 수 없다.

부동산으로 물납하기 위해서는 국내 소재 부동산만 가능하고 해외 소재 부동산은 불가능하다. 국내 소재 부동산이더라도 지상권, 지역권, 전세권, 저당권 등 제한물권이 설정돼 있거나, 소유권이 공유로 돼있거나, 토지 일부에 묘지가 있는 부동산 등은 물납이 제한될 수 있다. 최근 전세보증금 문제 등으로 전세권을 설정한다거나, 근저당권 설정 방식의 주택연금 가입자가 증가하고 있다. 오피스 빌딩의 경우 제3자와의 공유 형태로 소유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점들을 감안할 때 세제상 물납 허용 요건 등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유가증권으로도 물납이 가능한데, 이 유가증권에는 국공채, 회사채, 상장주식, 수익증권 등이 포함된다. 비상장주식의 경우 예외적으로 물납이 가능한데, 비상장주식 외에 상속재산이 없거나 다른 상속재산으로 물납한 후에도 납부할 세금이 부족할 때만 허용된다. 다시 말하면 거래시장이 있거나 시가가 형성된 유가증권은 현금화하기 쉽기 때문에 물납을 받아주더라도 큰 문제가 없지만, 거래시장이 없거나 시가 산정이 힘든 비상장주식은 가액 평가부터 국고로서의 가치 측면에서 여러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기업가들만 혜택을 보는 것이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통일규격주권(통일주권)을 발행하지 않은 일반적인 비상장주식은 거래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아 시가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상속세 등을 계산할 때 회사 순이익과 순자산의 가중평균법에 의한 보충적 평가 방법으로 주식 가치를 평가하게 된다. 사전에 수년간에 걸쳐 회계, 세무 전문가들과 함께 비상장회사의 순이익가치와 순자산가치를 합법적으로 조정한 경우가 아니라면 터무니없이 높은 가액으로 주식이 평가되고 엄청난 상속세가 발생할 수 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실제 가치보다 세법상 재산가액이 일반적으로 높은 상황을 감안해 현금화하기 어렵고 골칫거리인 비상장주식으로 물납하는 등 절세 방법으로 십분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비상장주식 거래 활성화를 위한 시장친화적 시스템 도입 및 가액 평가 방법을 정교화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만3000여 점의 미술품 등을 남겨놓고 사망해 사회적 이슈가 된 지 약 2년5개월 만인 2023년 3월부터 미술품 등 문화재로 상속세 물납이 가능해졌다. 기존 물납과 동일하게 납부할 상속세액이 2000만원을 넘고 금융재산가액을 초과해야 하지만 재산 평가 과정과 절차는 사뭇 다르다.

먼저, 세법에서는 미술품 등 예술적 가치가 있는 유형재산의 경우 각 전문분야별(①서화 및 전적 ②도자기 및 철물 ③목공예 및 민속장신구 ④선사유물 ⑤석공예 ⑥그 밖의 골동품 ⑦‘①~⑥’에 해당하지 않는 미술품) 2인 이상의 전문가가 감정한 가액의 평균액과 지방국세청 감정평가심의회(지방국세청장이 위촉한 3명 이상의 전문가로 구성)에서 감정한 가액 중 큰 금액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문화재급 미술품이라면 진위 여부를 우선 판단해야 하는데,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위작으로 의심되는 경우라면 재판까지 가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게다가 과거 사례를 통해 보건대 각 미술품 전문가별, 각 전문업체별로 편차가 커 평균액을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여전히 의문스럽다. 심지어 국내 미술품 감정평가업, 감정평가 시장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지방국세청 감정평가심의회에 위촉되는 3명 이상의 전문가는 이미 납세자들의 미술품 감정을 의뢰받았던 사람이거나 자문을 한 전문가거나 관계자일 수도 있음을 배제할 수 없다. 

 

공정성 확보하는 게 향후 관건

미술품 등 문화재 물납 절차를 살펴보면 요건을 갖춘 상속인들은 관할 세무서에 물납을 신청하고, 물납 신청을 받은 관할 세무서장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이를 통보해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물납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한해 관할 세무서장에게 물납을 요청하고, 관할 세무서장은 국고 손실의 위험이 크지 않다고 판단하는 경우 이를 허가하는 프로세스다.

여기서 제기되는 이슈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물납 신청 인정 기준과 국고 손실 위험의 판단 기준이다. 법령상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있는 등 물납이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에만 물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쉽게 말하자면 고가의 미술품, 오래된 골동품, 거래가 용이한 유명 작가의 작품에 한해서만 선택적으로 인정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미술품 물납은 재벌 회장 등 거액자산가들이 남긴 고가품에만 적용되는 제도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결국, 상속세 물납 제도와 관련해 공정성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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