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 보전이냐, 매립이냐”…‘물에 빠진’ 광주 풍암호 수질 개선사업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3.06.14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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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주민 갈등 ‘고조’ …광주시, ‘원형 보존’ 입장 번복 논란 키워
광주시 사업 변경시 법적 분쟁 불가피…주민협의체, 집단행동 예고

광주 최대 규모인 풍암호 수질개선 사업이 ‘원형 보전’과 ‘매립’ 사이에서 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특히 광주시가 풍암호 원형보존 여부를 두고 오락가락하면서 수질 개선 논란에 기름을 끼얹는 형국이다. 광주시가 입장을 번복하자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면서다. 최근 시가 풍암호 수질 개선안에 대해 ‘부분매립 안’으로 회귀하자 줄기차게 ‘원형보존 안’을 요구한 주민협의체의 반발이 본격화한 것이다. 

광주중앙공원 1지구 민간공원 특례사업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이 사업은 광주시와 주민, 환경단체가 대립각을 세우며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민간공원 특례사업 협약서에는 사업자가 현재 4~6등급으로 여름철마다 녹조와 악취 민원이 끊이지 않는 풍암호의 악화한 수질을 최소 3급수 수준으로 개선한 뒤 공공 기부하게끔 돼 있다. 

광주 서구 풍암호수 전경 ⓒ광주 서구
광주 서구 풍암호수 전경 ⓒ광주 서구

주민 “원형보존” vs 광주시·사업자 “부분매립”

양 측 모두 수질개선이 필요하다는 원칙론에선 이견이 없지만 방법론에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광주시와 사업자 측은 호수 바닥을 메워 저수량을 줄이고 주변에서 맑은 물을 끌어오는 부분 매립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관련 주민과 환경단체는 수량, 수심, 수면적 훼손 없는 ‘원형보존론’을 주장하면서 팽팽히 맞서고 있다. 

광주 서구 중앙공원 내 풍암호수는 당초 1956년 서창 일대 농지에 물을 대기 위한 농업용수 저수지로 지어졌다. 세월이 흐르면서 주변에 대규모 주거·상업시설이 들어서 현재는 도심 속 대표 친수 공간으로의 기능을 하고 있다. 그러나 도심 내 각종 오염원 영향으로 해마다 녹조·악취를 호소하는 민원이 끊이지 않았고, 수질은 계절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4~6등급 수준으로 악화됐다.

이에 광주시는 수질 환경 전문가와 공무원·민간사업자·농어촌공사 등이 참여하는 풍암호 수질개선 전담팀(TF)을 꾸렸다. 이 전담팀은 중앙공원 1지구 민간공원 특례사업자가 제안한 안을 토대로 20차례에 가까운 회의를 거쳐 ‘자연정화식’ 수질 개선안을 마련했다.

전담팀(TF)이 제시한 수심·수량 조정안은 호수 바닥을 부분적으로 매립해 저수량·수위를 줄이고 지하수를 보충하는 것이 골자다. 풍암호 수심을 2.8~4.9m에서 평균 1.5m로 낮추고 담수량도 34만 톤에서 16만 톤으로 절반 이상 줄이는 수질개선 방안이다. 호수면적도 12만㎡에서 10만㎡ 정도로 축소된다. 

또 매일 지하수 관정 등지에서 끌어온 맑은 물 1000여 톤이 유입된다. 이 안은 농업용 저수지 대신 도심형 경관용 호수로 용도를 변경하되, 제반 비용을 사업자가 부담해 대체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 안대로 추진할 경우 현재 4~6등급 수질을 3급수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와 사업자가 합의한 풍암호 수질개선 방안은 시 도시공원위원회 심의를 통과해 인·허가를 코앞에 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런 수질 개선안에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지역사회와 환경단체 등은 저수량이 줄면 집중호우 시 도심 수해 우려가 높고, 생태계에 미칠 악영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주민 공론화 과정도 부족하다고 지적하면서 반발하고 있다.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광주시가 주민협의체와 심도있는 검토를 약속했지만, 사업자 측 개선안 추진을 전제로 관련 시설 공사가 시작돼 '껍데기뿐인 공론화'라는 지적도 나온다. 풍암호 소유자인 한국농어촌공사가 농업용수 공급 대체 시설, 그러니까 양수시설 확보에 나서면서다.

농어촌공사는 풍암호를 대신해 벽진·마륵동 일대 논 약 38㏊에 물을 댈 양수장·송수로를 확충하는 공사를 발주했고, 지난해 10월부터 터 닦기 공사가 진행 중이다. 전담팀안 대로 사업이 이미 추진된 게 아니냐 하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6월 8일, 강기정 광주시장과 중앙공원 1지구 개발주민협의체가 광주시장실에서 만나고 있다. ⓒ주민협의체
6월 8일, 강기정 광주시장과 중앙공원 1지구 개발주민협의체 집행부가 시장실에서 만나 기념촬영하고 있다. ⓒ독자 제공

논란에 기름 끼얹은 광주시의 오락가락 입장

광주시가 원형보존에 대한 입장을 번복하면서 주민들과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지난 8일 중앙공원주민협의체와 면담에서 기존의 원형보존안 수용 입장을 번복했다. 애초대로 호수를 부분 매립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3월 2일 중앙공원 1지구 개발 주민협의체 집행부를 만나 주민 의견이 우선이라면서 풍암호수 원형보존을 수용하겠다고 약속한 지 3개월 만이다.

광주시도 11일 “민간공원 특례사업을 추진 중인 중앙1지구 풍암호의 담수량을 줄이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풍암호 수질개선 전담팀이 제시한 ‘수심·수량 조정’ 원안, 이른바 부분 매립안을 고수하기로 한 것이다. 

시는 풍암동 주민자치위와 시민사회단체의 거듭된 요청에 따라 원형보존을 전제로 한 사업내용 변경을 신중히 검토했으나 고심 끝에 법적 한계에 봉착해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원형보존에 집착해 특례사업 인·허가 절차를 바꾸면 향후 민간아파트 사업자와 법적 분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단체 등은 지난 3월 강 시장이 주민협의체와 한 원형보존 약속을 정면으로 뒤엎은 결과라면서 반발하고 있다. 그동안 5000여명의 서명 참여를 통해 풍암호 원형보존을 줄기차게 주장해온 이들은 시가 갑자기 입장을 번복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단체행동을 예고했다.

주민협의체는 원형 보존안에 동의하는 시민단체, 주민들과 연대해 범시민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전국 맨발 걷기연합회와 풍암호수 일원에서 '인간 띠 잇기' 행사를 열고, 매립안·원형보존안을 주장하는 학자 간 '끝장 토론'도 열 예정이다.

 

광주시 “숙려 기간 거쳐 조만간 공식 입장 발표”

정의당 강은미 국회의원(비례)도 성명을 내고 “강 시장은 98일 만에 주민협의체와의 원형 보전 약속을 파기했다”며 “수심을 낮추고 지하수를 유입하는 민간 사업자의 수질 개선 방식으로 수질을 3급수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강 의원은 “민간사업자가 주민협의체와 시의 요구를 거부한다면 수질 개선과 특례사업을 분리해 시가 직접 수질 개선 사업을 하면 될 일”이라며 “강 시장은 민간사업자가 아닌 시민 이익에 충실한 시정을 펼쳐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강 시장은 12일 출입기자들과의 차담회에서 “주민협의체와 이번 주 중 다시한번 더 만나 풍암 호수 보존과 관련해 광주시의 종합적 입장 등을 공식화하겠다”며 “수심과 수량 변동 없이 수질개선이 가능한 것인지, TF 안이 과연 원형을 훼손시키는 것인지 차분한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광주시는 1주일간 숙려 기간을 거쳐 다음 주께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기로 했지만 갈등의 골을 좁히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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