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의원들, ‘집단 체포동의안’ 받아들까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3.06.17 16:05
  • 호수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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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장관,  ‘이성만+민주당 의원 19명’을 금품 수수자로 지목
검찰, 민주당 반발 아랑곳 않고 수사 가속화…최종 타깃은 송영길

더불어민주당이 또 한 번 ‘인(人)의 장막’ 뒤에 숨었다.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의 주요 인물인 윤관석·이성만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킨 것이다. 검찰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게 됐지만 사정의 칼을 거두지 않고 있다.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당일에도 의혹 관련 압수수색을 강행하며 엄정한 수사를 강조했다. 검찰이 강한 수사 의지를 내비치면서 돈봉투를 받았다는 국회의원들의 정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돈봉투를 받은 것으로 지목되는 약 20명의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여기 계시고 표결에도 참여하시게 됩니다.” 6월12일 국회 본회의에서 윤관석·이성만 의원 체포동의안 제출 이유를 설명하며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한 말이다. 해당 발언은 10분 동안 진행된 한 장관의 연설에서 가장 격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장내에선 곧 비난의 고성이 터져 나왔다.

윤관석·이성만(왼쪽부터) 의원이 6월12일 국회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 투표를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본회의 뒤흔든 한마디 “돈봉투 의원 20명 여기 있다”

그래도 한 장관은 꿋꿋이 “약 20명의 표는 표결의 결과를 좌우하는 캐스팅보트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라며 발언을 이어갔다.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에 따라 정부를 대표해 체포동의안을 상정하는 법무부 장관이, 돈봉투 의혹의 당사자 수를 콕 집어 혐의점을 낱낱이 밝힌 것이다. 그간 검찰이 민주당 의원 20명을 특정했다는 얘기는 일부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다. 하지만 법무부 장관이 이를 공식화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논란의 현역 의원 20명은 누굴까. 검찰은 2021년 4월28~29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회의실과 의원회관에서 의원 20명이 300만원이 든 봉투를 각각 전달받은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당시 외통위원장이었던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는 핵심 연결고리로 꼽힌다. 윤관석 의원은 봉투를 나눠준 사람으로 지목됐고, 이성만 의원은 봉투를 받은 데다 민주당 지역본부장 등에게 줄 1000만원을 조달한 인물로 간주되고 있다. 금품 수수 의혹 당사자로 좁혀보면 이 의원은 일단 특정됐다. 관건은 나머지 19명 의원의 정체다.

퍼즐의 조각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우선 6월6일 검찰은 돈봉투 수수 의혹과 관련해 의원 29명의 국회 출입기록을 압수수색한 바 있다. 이 중에는 윤관석·이성만 의원이 포함됐다고 한다. 지역구별로 보면 수도권 7명, 호남권 6명, 충청권 2명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5~6명은 친명(친이재명)계로 분류된다.

한동훈 장관은 의혹 당사자의 정체를 추정케 하는 단서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검찰이 물증으로 제시한 녹음파일의 내용을 읊으면서 “4월29일 윤관석 의원이 이정근씨에게 자신이 의원회관을 돌아다니며 의원들에게 돈봉투를 줬다며 ‘내가 회관 돌리면서 쭉 만났거든. 윤땡땡 의원하고 김땡땡 의원 전남 쪽하고’라고 의원들의 실명을 직접 말하는 통화녹음 등”이라고 했다. 윤관석·이성만 의원 외에 ‘윤씨·김씨 성(姓)을 가진 의원’이란 단서가 추가로 공개된 것이다. ‘전남 쪽’이란 발언은 전남을 지역구로 둔 의원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조각은 또 있다. 시사저널은 돈봉투 살포의 공모자로 알려진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구속 기소)의 증언이 담긴 ‘이정근 노트’를 5월26일 보도한 바 있다(☞ “‘이정근 게이트’에 등장하는 실명 28명…얽히고설킨 ‘내부자들’” 참조). 실명이 확인된 사람만 모두 28명이다. 이 중에는 현역 의원 11명의 이름이 적시돼 있다. 

“윤땡땡, 김땡땡, 전남 쪽” 그리고 ‘이정근 노트’

이정근 노트에 대해 민주당은 법적 조치를 예고하며 ‘사실 무근’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검찰은 “이정근 노트에 기재된 내용을 확인하고 있지 않다”며 거리를 뒀다. 그러나 이정근 노트에 적힌 의원 중 일부는 이미 검찰 수사망과 겹친 형국이다. 우선 노웅래 의원은 사업가 박우식씨로부터 2020년 2~12월 사업 편의 제공, 물류센터 인허가 알선, 각종 선거자금 등 명목으로 5차례에 걸쳐 6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는 이정근 노트에 나온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 노트에는 “노웅래-박우식의 부인 조○○을 통해 5000만원을 요청해 박우식이 조○○과 정○○(박우식의 운전기사)를 통해 줬으나, 박우식의 청탁 등 협박으로 인해 급하게 다시 돌려줌”이라고 적혀 있다.

검찰이 문제의 의원 20명의 명단을 공식적으로 공개하긴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피의사실 공표 등의 논란이 필연적으로 따라붙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과 한동훈 장관의 태도로 미뤄보면 ‘줄소환’ 가능성이 적지 않아 보인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정체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검찰은 체포동의안 부결 직후 “부결과 관계없이 관련 수사를 엄정하게 진행해 사안의 전모를 명확히 규명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원석 검찰총장도 “매우 중대한 범죄”라며 구속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한 장관은 부결 결과에 대해 “그동안의 경험으로 볼 때 증거는 이례적으로 많다”고 했다. 심지어 윤석열 대통령이 “앞으로 나올 사람이 많은 모양이죠”라고 농담을 했다는 얘기도 전해졌다. 검찰이 단체로 체포동의안을 요청하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매우 중대한 범죄…증거 이례적으로 많아”

민주당은 여러모로 수세에 몰렸다. 의원 특권으로 숱하게 지적된 ‘방탄 국회’란 비판을 어김없이 떠안게 됐다. 이번 체포동의안 표결에 참여한 의원은 모두 293명이다. 이 중 윤관석 의원과 이성만 의원 체포동의안에 대한 찬성표가 각각 139표, 132표 나왔다. 가결 요건인 출석 의원 과반(147표 이상)에 각각 8표, 15표 모자라는 결과다.

국민의힘(112석·구속 중인 정찬민 의원 제외)과 정의당(6명) 의원 118명은 전원 찬성표를 던졌을 것으로 보인다. 표결을 앞두고 양당 모두 체포동의안 가결을 당론으로 정하면서까지 통과에 총력을 모았기 때문이다. 반면 다수 야당인 민주당이 방어막을 쳤다. 체포동의안 부결을 당론으로 정하지 않았는데도 사실상 ‘단일대오’를 형성한 모양새다. 그나마 수치상 전체 찬성표 중 최소 10표 안팎은 민주당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민주당 내에서 이재명 대표에게 반기를 든 소수 의원이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졌을 것”이라고 봤다. 비명계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6월13일 SBS라디오에서 이번 부결에 대해 “(혁신의) 추동력이 상당히 약화될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고 말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검찰과 한동훈 장관에게 책임을 돌렸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표결 이후 기자들과 만나 “(검찰의 영장에) 증거 없이 녹취만 있었다”며 “검찰이 너무하다는 걸 많은 의원이 본 것 같다”고 말했다. 김한규 원내대변인은 “한 장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렇게 내용이 없구나’라고 판단한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잔인하다고 생각을 많이 하는 듯하다”고 했다.

일각에선 ‘돈을 받은 약 20명’이란 한 장관의 발언이 내부 결집을 불렀다는 분석도 나온다. 혐의의 구체적 내용과 구속의 정당성을 밝히기 위한 선택이었다 해도, 어쨌든 사정 정국을 예고한 셈이기 때문이다. 서 최고위원은 “(20명 발언 이후) 단박에 ‘20명 중 하나는 나란 이야긴가’ 이런 얘기를 하더라”며 “(한 장관의 발언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시사저널이 단독 입수한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이 남긴 노트 ⓒ시사저널 최준필
시사저널이 단독 입수한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이 남긴 노트 ⓒ시사저널 최준필

표결 당일 송영길 외곽조직 압수수색

이정근 노트에 적힌 당사자 중 한 명인 이원욱 의원은 B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한 장관의) 발언이 현장에서 의원들의 생각을 많이 자극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도발적으로 오히려 부결시켜 달라는 요청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감정을 자극하는 용어들을 많이 썼다”고 지적했다.

한편 체포동의안 부결이 검찰 수사에 제동을 걸었지만 대세에 지장을 주긴 힘들어 보인다. 전례도 있다. 지난해 12월 체포동의안이 부결됐지만 결국 불구속 기소된 노웅래 의원이 그 예다. 검찰은 이정근 전 부총장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녹음파일과 노 의원 자택·국회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한 결과를 토대로 그를 재판에 넘겼다. 이재명 대표도 지난해 12월과 올 2월 체포동의안을 막아냈지만 기소를 피하지 못했다. 검찰이 대장동 수사에 착수한 지 1년6개월 만이다. 윤관석·이성만 의원도 불구속 기소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유력하다.

돈봉투 의혹을 향한 수사의 폭은 확대되고 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반부패수사2부(부장검사 김영철)는 체포동의안 표결 당일인 6월12일 오전 9시경 서울 영등포구 컨설팅 업체 A사와 ‘평화와 먹고사는문제 연구소(먹사연)’ 직원 주거지 등 4곳을 압수수색했다. A사는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당시 송영길 전 대표 경선캠프의 홍보 전반을 맡은 곳이다. 먹사연은 표면적으로 외교·경제 정책을 연구하는 통일부 소관 공익법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송 전 대표의 외곽 후원조직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검찰은 돈봉투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먹사연의 후원금 일부가 A사로 유입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먹사연이 A사를 통해 경선 홍보 비용을 대납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 검찰은 이들이 문제 될 것을 염려해 허위 용역계약서를 작성한 정황도 발견했다. A사와 먹사연에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종국에는 검찰이 돈봉투 의혹의 정점인 송 전 대표를 사법 처리할 것이란 전망이 짙다. 송 전 대표는 선제 대응에 나섰다. 그는 5월2일 검찰에 자진 출석해 “주변 사람 대신 저를 구속시켜 주시기 바란다”며 “저는 한 푼도 먹사연의 돈을 쓴 적이 없다”고 강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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