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돌려차기男 ‘징역 20년’에 눈물 쏟은 피해자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3.06.16 15:05
  • 호수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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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살인미수’ 12년형→2심 ‘강간살인미수’ 20년형으로 늘어
피의자는 되는데 피고인은 안 된다는 ‘범죄자 신상 공개’

부산에서 귀가하던 20대 여성을 쫓아가 머리 등을 무차별 폭행한 혐의를 받는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가 항소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성범죄를 목적으로 피해자 머리를 가격, ‘강간살인미수’ 혐의가 인정된다고 봤다. 법정에 출석한 피해자는 가해자가 반성은커녕 보복을 예고한 현실을 마주하며 “피해자는 어떻게 살라는 건가”라고 울분을 토했다.

부산고법 형사2-1부(최환 부장판사)는 6월12일 강간살인미수 혐의를 받는 피고인 A씨(31)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살인미수 혐의가 적용됐던 1심의 징역 12년형보다 8년 더 늘어난 형량이다. 재판부는 10년간 정보통신망에 신상 공개 및 아동·청소년·장애인 관련 기관 취업제한, 2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도 함께 명령했다. 또 피해자에 대한 접근 금지와 야간시간대 외출 금지 명령 등도 함께 고지했다.

A씨는 지난해 5월22일 새벽 부산 서면에서 혼자 귀가하던 피해자 B씨를 뒤따라가 오피스텔 1층 복도에서 발차기로 쓰러뜨린 후 CCTV 사각지대로 끌고 가 성폭행을 시도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B씨를 CCTV 사각지대로 옮긴 후 7분 후 오피스텔 밖으로 빠져나간 것으로 조사됐다.

항소심 재판의 최대 쟁점은 CCTV에 기록되지 않은 ‘7분’간 A씨가 성범죄를 저지른 것이 인정되는지 여부였다. 검찰은 피해자 바지에서 A씨의 DNA가 검출되는 등 성범죄를 뒷받침할 추가 증거를 바탕으로 살인미수에서 강간살인미수로 공소장을 변경했다. 2심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A씨에게 징역 35년과 위치추적 장치 부착 및 보호관찰명령 20년을 구형했다.

ⓒJTBC 《사건반장》 영상 캡처
2022년 5월22일 부산시 부산진구의 한 오피스텔 현관에서 가해자 A씨가 귀가하던 20대 여성의 머리를 무차별 가격한 후 의식을 잃고 쓰러진 피해자를 들쳐 업고 CCTV가 없는 사각지대로 끌고 가는 모습 ⓒJTBC 《사건반장》 영상 캡처

DNA로 드러난 CCTV 사각지대 ‘7분’의 범행

재판부는 A씨의 범행 수법과 행적을 볼 때 성폭력을 목적으로 한 범죄로 인정된다며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를 성폭력 범죄의 수단으로 범행했다”며 “일면식도 없는 피해자를 성적 욕구의 대상으로 삼았고, 머리만을 노려 차고 밟았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피해자를 끌고 갔고, 다량의 출혈이 있던 피해자를 상대로 성폭력 범죄로 나아가려 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확실한 예견이 없어도 자신의 폭행이나 그에 이른 성폭력 실행 과정에서 피해자가 사망할 수 있다는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강간의 고의성 여부에 대해 “직접적인 증거는 충분치 않다”면서도 “사건 당일 새벽 4시53분 노상에서 피해자를 발견하고 100m 따라가 공격했다”며 “피고인은 피해자 속도에 맞춰 걷고, 피해자가 휴대전화를 만지면 따라 멈추는 등 특정 범죄를 행하려는 시도를 보였다”고 판단했다.

‘여성인지 몰랐다’ ‘피해자를 구하려 장소를 옮겼다’ 등 피고인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청바지 단추가 풀리고 지퍼가 내려가 속살이 보일 정도로 피해자 옷을 벗겼다가 인기척을 느껴 급하게 도주한 것”이라며 “피해자를 복도 구석으로 끌고 간 것은 강제추행 행위 등에 준하는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지 구하려고 장소를 옮긴 게 아니다”고 피고인 주장을 기각했다.

범행 당일 A씨가 ‘부산 강간 사건’ ‘부전동 강간 미수’ 등을 검색한 것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당시는 수사기관은 물론 피해자도 강간 시도 사실을 몰랐다”며 “‘강간’을 검색했다는 점에서 범행 의도가 보인다”고 부연했다.

재판부는 A씨의 전과 기록 등을 열거하며 “과도한 공격적 특성과 반사회적 성격을 보아 법을 준수하려는 기본적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불우한 성장 과정이 영향을 미친 사유로 참작되지만, 엄정한 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으로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가해자가 조사를 받으며 성범죄 혐의를 부인하는 모습. 검찰은 1심에서 가해자에 징역 20년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폭행 혐의를 인정했다며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 《그것이 알고싶다》 유튜브 캡처
'부산 돌려차기' 사건으로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가해자가 조사를 받으며 성범죄 혐의를 부인하는 모습. 검찰은 1심에서 가해자에 징역 20년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폭행 혐의를 인정했다며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 《그것이 알고싶다》 유튜브 캡처

피해자 “보복하겠다는 가해자, 어떻게 사나”

선고 공판을 지켜본 피해자는 법정 앞에서 울음을 쏟았다.

피해자 B씨는 선고가 끝난 후 “대놓고 보복하겠다는 사람으로부터 피해자를 지켜주지 않으면 피해자는 어떻게 살라는 것인지, 왜 죄를 한 번도 저지르지 않은 사람한테 이렇게 힘든 일을 안겨주는지”라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한 채 눈물을 흘렸다.

A씨의 구치소 동기로 피해자에 대한 보복 준비를 폭로했던 C씨도 선고 이후 “피고인을 세 달 만에 봤는데 살은 더 쪘고 더 건강해진 것 같아 화가 난다”며 “20년 형은 너무 짧다”고 형량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C씨는 “구치소 안에 있었을 때 ‘나가서 피해자를 죽이겠다, 더 때려주겠다’ 등의 말을 2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이야기했다”며 “A씨가 피해자 신상을 적은 노트를 보여주며 나가면 여기(피해자 거주지)에 갈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구체적인 탈옥 계획을 세운 것도 너무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피해자의 변호인은 “CCTV 사각지대에서 발생한 진실을 밝히려 한 검찰과 재판부에 감사드린다”며 “피고인은 여전히 반성하지 않고 있고, 본인이 한 일을 진심으로 뉘우치는지 의문이며 피고인은 영구적으로 사회와 단절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 측은 범죄 가해자 신상 공개와 관련해 국회 법사위에 의견을 제출하는 한편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심판도 청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2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 법원종합청사에서 돌려차기 사건 피고인 A씨가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20년을 선고 받은 뒤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부산고법 형사 2-1부(최환 부장판사)는 A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하고, 10년간 정보통신망에 신상 공개, 10년간 아동 관련 기관 취업 제한, 2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신상공개 명령이 최종 확정되면 온라인을 통해 A씨의 얼굴과 신상 등이 일반에 공개된다. ⓒ연합뉴스
12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 법원종합청사에서 돌려차기 사건 피고인 A씨가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20년을 선고 받은 뒤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부산고법 형사 2-1부(최환 부장판사)는 A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하고, 10년간 정보통신망에 신상 공개, 10년간 아동 관련 기관 취업 제한, 2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신상공개 명령이 최종 확정되면 온라인을 통해 A씨의 얼굴과 신상 등이 일반에 공개된다. ⓒ연합뉴스

항소심 재판부는 범죄자의 추가 범죄 의지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얼굴 사진 등 신상 공개 명령을 내렸다. 범인의 신상 공개는 2차 보복의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피해자가 강력하게 원했던 사안이었다. 윤석열 대통령도 항소심의 신상 공개 명령에 맞춰 “여성에 대한 강력범죄 가해자의 신상 공개 확대 방안을 신속히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문제는 미비한 법 제도적 환경 때문에 현실이 간단치 않다는 데 있다.

현행법상 피고인이 신상 공개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할 경우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신상정보가 공개되지 않는다. 검찰과 A씨가 상고해 사건이 대법원으로 갈 경우 그 판단이 나올 때까지는 신상 공개를 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미 기소돼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피의자 신상 공개’ 제도를 적용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A씨가 현재 수사 단계에 있는 ‘피의자’가 아닌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 신분이어서다. 최근 일부 유튜버나 구의원 등이 피고인의 이름과 나이, 거주 지역 등 신상을 공개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대통령실은 이러한 법적 혼란을 법무부가 명확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법적 미비로 인해 피의자의 신원은 공개할 수 있는데, 피고인의 신원을 공개 못 하는 게 적합한지 논란이 있을 수 있다”며 “(윤 대통령이) 법적 미비를 빨리 정리하라고 지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살인이나 여성에 대한 납치·유인 등 특정한 강력 범죄에 대한 신상 공개가 가능하긴 하다”며 “그런데 그 법에 피의자에 대한 규정은 있는데, 피고인에 대한 규정은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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