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으로 미국과 영국 콧대 꺾은 ‘BTS 효과’
  • 김영대 음악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6.16 14:05
  • 호수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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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법칙 바꾼 BTS, K팝의 역사 그 자체
빌보드 1위나 경제 효과보다 큰 의미는 ‘선한 영향력’

서울의 랜드마크들이 보랏빛으로 물들고, 도시 곳곳에서는 한국 아티스트의 데뷔를 기념하는 여러 행사가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다. 그 축제를 즐기는 수많은 사람 중에는 비단 한국인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몰려든 외국인들의 모습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다름 아닌 방탄소년단(BTS) 데뷔 10주년을 기념하는 ‘페스타’의 풍경이다. 음악에 관심 없는 누구에게는 그저 유명한 연예인일지 모르지만 K팝 팬들과 방탄소년단 팬덤 ‘아미’에게 이들의 데뷔는 K팝 역사의, 나아가 대중음악 역사의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빅히트 뮤직·하이브

데뷔 10주년 기념 ‘페스타’ 서울 곳곳에서 열려

사실 굳이 억지 의미를 갖다 붙이지 않더라도 방탄소년단의 10년이 그들 커리어 이상의 중요한 무엇이라는 점에 이의를 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K팝의 성공이라고 평가되는 많은 것이 실제로는 그들을 통해 이뤄졌고, 그에 따라 K팝의 위상과 범주도 제고됐다. 하지만 여전히 방탄소년단이 이룬 많은 것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거나 정당한 평가를 기다리는 중이다.

많은 이가 방탄소년단의 성공을 빌보드 1위와 같은 ‘성적’에서 찾으려 한다. 더 나아가 몇억이니 몇조니 하는 경제 효과의 관점에서 평가하기도 한다. 물론 이것이 빛나는 성과라는 점을 굳이 반박하고 싶진 않다. 대중음악의 본고장인 미국과 영국은 물론, 우리보다 훨씬 먼저 현대적인 대중음악 산업을 일궈낸 일본에 늘 열등감을 느꼈던 한국 입장에서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차트 1위나 각종 음악시상식 수상과 같은 가시적인 성과들은 그 무엇보다 짜릿하고 유쾌한 성과임에 틀림없다.

한국 출신 가수가 미국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미국 최고의 스타들도 채우지 못하는 대형 스타디움을 연일 매진시키는 괴력을 뽐내는가 하면, 가요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백인, 흑인, 라티노 음악팬들이 한국 가수 방탄소년단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간 음악 선진국들에 품어야 했던 오랜 열등감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었다. 개인의 성공을 국가의 성공과 등치하는 이들이라면 경제적 효과를 포함한 그들의 모든 성공이 우리에게 주는 자부심과 성취감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필자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꼭 그런 기분을 느껴야 한다면 조금 더 큰 스케일에서 의미를 찾아보면 어떨까.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현대적 대중음악이 미국에서 시작된 이래, 대중음악의 ‘우상’은 늘 영미권의 팝스타, 그것도 사실상 백인들의 전유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흑인음악과 라틴음악이 팝의 트렌드를 좌우하는 요즘도 ‘아이콘’이라 불리는 존재는 대부분 영어를 쓰는 백인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 짧지 않은 팝음악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영어가 아닌 다른 나라 말을 쓰는 비서구권 팝 아이콘이 등장한 것이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현실로 벌어진 것이다. 그 옛날 ‘영국’ 아티스트인 비틀스의 미국 침공이나 ‘흑인’ 팝스타 마이클 잭슨의 등장처럼, 비영어권이자 비영미권 ‘아시안’ 팝스타의 등장은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의미한다. 그것도 이러한 흐름이 영미권 팝음악의 시스템이 아닌 K팝이라고 하는 완전히 바깥의 힘에 의해 침투되고 점령됐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방탄소년단 《BEYOND THE STORY》 커버, 방탄소년단 《디스코그라피》ⓒ빅히트 뮤직·하이브

BTS 음악과 메시지의 보편성

방탄소년단의 정상 등극 이후, 전 세계 대중음악 시장은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미국과 영국이 사실상 독점해온 ‘아이돌’ 시장의 주도권은 이제 한국이 이끌고 있으며, 10대의 ‘우상’ 이미지나 얼굴로 아시안을 떠올리는 것도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은 일이 됐다. 이것이야말로 숫자와 기록보다 더 중요한 ‘BTS 효과’다.

방탄소년단은 이미 게임의 구도를 바꾸고 있다. 그들이 세계 최고 인기 그룹으로 등극한 이래, 주류 팝음악은 K팝의 ‘영토’를 인정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미국 시장이 또 다른 BTS를 찾기 위해 신인 K팝 그룹들에 각별한 공을 들이는가 하면, 그들이 직접 BTS와 같은 그룹을 만들기 위해 성공 공식과 K팝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기도 하다. 올해를 기점으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낼 테지만, 미국이 기획하고 한국이 제작 노하우를 제공하는 합작 형태의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차례차례 공개될 예정이다. 여기에는 거대한 자본과 언론을 소유한 메이저 미디어 회사들이 참여하게 될 예정이라고 한다.

오래전부터 노크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고 콧대 높았던 미국 시장이 방탄소년단의 기적 같은 성공을 계기로 태도와 전략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한 명의 한국인으로서는 미국 시장에서 성공한 한국 가수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뿌듯하지만, 수십 년을 흔들림 없이 건재한 미국 음악산업의 풍경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는 존재가 다름 아닌 한국 아티스트라는 사실은 더 각별한 감동을 선사한다.

방탄소년단이 만든 가장 위대한 업적은 그들이 자신의 음악을 통해 세계를 연결했다는 것이다. 음악과 메시지의 보편성, 우리가 늘 영미권 팝음악의 특권이라고 생각했던 그 미션을 방탄소년단이 해낸 것이다. 수천만에 달하는 전 세계 ‘아미’들은 국적, 인종, 문화가 다름에도 방탄소년단이 전하는 보편적인 아름다음과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통해 강하게 결합하고 연대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때로 열광적인 팬이기도 하고, 진지하고 날카로운 비평가이기도 하며, 방탄소년단의 옹호자이자 동반자이며 가장 강력한 지원군이다. 이들은 인종차별이나 아시안 혐오와 같이 방탄소년단을 가로막는 다양한 시련을 함께 헤쳐나가고, 그들의 성공을 위해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이 같은 전 지구적인 아미들의 흐름이 가능한 것은 그들이 기본적으로 방탄소년단이 음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가치와 철학에 공감하고 감동했기 때문이다.

ⓒ빅히트 뮤직·하이브
미국 CBS 더 레이트 레이트 쇼 위드 제임스 코든 《Permission to Dance》 ⓒ빅히트 뮤직·하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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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 공연 ⓒ빅히트 뮤직·하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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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CBS 제임스 코든쇼 《Butter》 ⓒ빅히트 뮤직·하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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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공연 ⓒ빅히트 뮤직·하이브

BTS가 낸 길로 새로운 K팝 시대 열려

방탄소년단의 음악에 담긴 다양한 가치들, 이를테면 자기에 대한 긍정, 자아에 대한 탐구, 힘든 세상 속에서 굴하지 않고 시련과 아픔을 극복해 나가려는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태도는 모든 것을 초월해 팬들을 하나로 묶어낸다. 그리고 이를 통해 빚어진 거대한 힘은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는 데 활용되며 아이돌 ‘팬덤’의 의미와 가능성을 새롭게 규정하고 있는 중이다. 오랜 세월 영미권 아티스트들만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전 지구적인 ‘선한 영향력’이 이제는 한국 아티스트인 방탄소년단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팬덤 ‘아미’가 자주 쓰는 표현 중에 ‘BTS paved the way’라는 영어 문구가 있다. 방탄소년단이 새 길을 냈다는 뜻이다. 많은 이가 도전했지만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그 길은 방탄소년단과 함께 그들의 최대 조력자인 아미들의 노력을 통해 오늘의 모습으로 닦일 수 있었다. 어느덧 그 길 위로 새로운 K팝의 전성시대가 열리고, ‘포스트 BTS’ 주자들이 잰걸음으로 정상에 도전하며 새로운 세대를 이끌어가고 있으니, 방탄소년단이 그렇게 원했던 ‘증명’은 이것으로 충분한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 넓은 길의 맨 앞에서는 그룹 활동의 한 챕터를 끝내고 솔로 활동을 중심으로 새로운 챕터를 열어가는 방탄소년단이 여전히 건재한 모습으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중이다. 이제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10년이 펼쳐질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BTS의 역사가 곧 K팝의 역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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