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가수 유랑단》의 ‘세대 통합’은 성공할까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3.06.18 12:05
  • 호수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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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경력 도합 129년 여성 아티스트들의 행보 주목
시대 뛰어넘는 진심과 연대…전국 유랑하며 각 지역도 조명

김완선, 엄정화, 이효리, 보아, 화사. 도합 129년의 활동 경력을 가진 여성 아티스트들이 모였다. 나이도, 데뷔 연도도, 활동 시대도 다르지만 대한민국 가요계에 유의미한 방점을 찍어온 여성 아티스트들이 ‘댄스가수 유랑단’이 돼 전국을 함께 떠돌며 공연한다. 이들의 대표곡이자 그 시대의 히트곡이 공연의 세트리스트가 된다.

유랑단이 결성된 배경은 의외로 거창하지 않았다. 시작은 이효리의 한마디였다. 엄정화의 휴대전화에 번호가 저장돼 있던 여자 가수들이 멤버가 됐고, 농담처럼 꺼내든 ‘전국 투어 콘서트’가 현실이 됐다. 아티스트들의 화제성이 초반의 인기를 견인했다면, 지금의 시청률 상승세를 이끄는 도구는 ‘공감’과 ‘진심’이다. 198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각기 다른 시대를 화려하게 수놓아온 여성 아티스트들이 2023년의 시청자들에게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댄스가수 유랑단》은 어떻게 시대를 기억하고, 어떤 방식으로 ‘세대 통합’을 꿈꾸는 걸까.

ⓒtvN 제공
ⓒKBS·MBC·SBS·Mnet 제공

한 시대를 풍미한 댄스가수들의 저력

1980년대, ‘한국의 마돈나’라 불리던 김완선이 있었다. 폐쇄적인 시대에 김완선의 파격적인 댄스가 가져온 파장은 엄청났다. ‘한국 댄스음악의 안무와 콘셉트는 김완선 이전과 이후로 갈린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김완선은 김창훈, 신중현 등 당대 최고의 프로듀서와 함께 음반을 내놓으며 대한민국 댄스음악의 성장까지 이끌어냈다. 엄정화는 그 계보를 이어가며 1990년대를 풍미한 ‘디바’였다. 《배반의 장미》 《포이즌》 《페스티벌》 《몰라》 등 히트곡을 연속 내놓으며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지금도 다양한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도 대중과 호흡하며 끝나지 않는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1980년대에 김완선이, 1990년대에 엄정화가 있었다면, 2000년대 디바의 계보는 이효리가 이었다. 아이돌뿐 아니라 솔로 가수로서도 정상을 차지한 이효리는 무대와 예능을 넘나들며 자신을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었고, 대표적인 트렌드세터로 거듭났다. 단순한 일상도 이효리가 하면 다르다는 사실은 이미 티빙 오리지널 《서울 체크인》을 통해 입증됐다. 이효리가 일명 ‘허리’가 돼 멤버를 구성했기에, 데뷔 24년 차 보아와 데뷔 10년 차 화사가 막내라인이 됐다.

‘아시아의 별’이라 불리는 한류 스타 보아도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2000년 《ID; Peace B》로 데뷔한 소녀 가수는 일본 데뷔 1년 만에 오리콘 차트를 점령했고, 앨범 차트 1위 자리에 자신의 정규 음반들을 올려놓았다. 미국 빌보드에도 2000년대에 일찌감치 진입하며 K팝이 해외로 진출하는 길을 닦아뒀다. 보아의 성공 이후 대중 가수의 인기가 경제적 가치와 외교적 가치로 환산되기도 했다. 뛰어난 보컬과 작사·작곡 실력으로 대체 불가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화사는 2010~20년대를 대표하는 MZ세대 여성 아티스트이자, 차세대 디바로 거론되는 가수다.

이 대단한 인물들 자체가 콘텐츠의 경쟁력이다. 프로그램의 키는 《무한도전》을 만든 김태호 PD가 잡았다. 김 PD가 MBC를 나와 시작한 첫 프로젝트가 《서울 체크인》이고, 그 촬영 도중에 나온 이효리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 《댄스가수 유랑단》이다. 김완선, 엄정화, 이효리, 보아, 화사가 모인 브런치 모임에서 이들의 유랑 여정이 시작됐다. MBC 예능 《놀면 뭐하니?》와 《서울 체크인》이 보여준 김태호와 이효리의 조합은 이미 ‘아는 맛’으로 여겨졌다. 여기에 한국 가요계에 한 획을 그은 여성 아티스트들이 함께 참여하면서 《댄스가수 유랑단》은 시작 전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김태호 PD는 “다른 시대, 다른 세대에 활동했던 다섯 분이 공감대를 선보이면서 함께 전국의 관객을 만나면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펼쳐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tvN 《댄스가수 유랑단》의 한 장면 ⓒ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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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댄스가수 유랑단》의 한 장면 ⓒtvN 제공
tvN 《댄스가수 유랑단》의 한 장면 ⓒtvN 제공

‘그때 그 시절’ 소환…공감과 연대 더해 상승세

최고의 연출진과 화제성 있는 출연자들의 조합은 흥행 보증수표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성공을 확신하기는 어려웠다. 관건은 신선함이었다. 《놀면 뭐하니?》의 싹쓰리와 환불원정대 등을 통해 대중은 이미 톱 아티스트나 방송인으로 꾸려낸 김태호식 음악 예능을 접했다. 두 프로그램은 충분히 성공했지만, 비슷한 포맷의 음악 예능은 더 이상 신선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특히 엄정화-이효리-화사로 이어지는 라인업이 환불원정대와 겹치면서, 프로그램의 ‘차별점’은 과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소환한 것은 ‘그때 그 시절’이다. 각기 다른 시대의 아티스트들을 알리고 빛낸 히트곡들을 불러오기로 한 것이다. 《리듬 속의 그 춤을》 《배반의 장미》 《10 Minutes》 《No.1》 《멍청이》 등 제목만 들어도 대중이 멜로디와 퍼포먼스를 떠올릴 수 있는, 동시대 청춘들에게 각인된 히트곡들을 복기하면서, ‘추억’이라는 동력으로 ‘레트로’라는 철 지난 트렌드를 다시 끌어왔다. 많은 이가 여성 댄스가수의 수명이 짧다고 얘기하지만, 국내 음악계에 뮤지션으로 저마다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이들은 시대가 바뀌고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재능을 발휘할 수 있음을 대중에게 보여줬다.

여기에 더해지는 것은 진솔함이다. 가수들은 화려한 무대 뒤에 감춰두었던 고민을 꺼내놓으며 서로 공감했다. 칭찬받지 못하고 지적만 받았다는 사실이 서글펐다는 ‘원조 댄싱퀸’의 이야기, 무대에서 내려온 후 공허함과 쓸쓸함을 느껴야 했다는 한류 스타의 고백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건드렸고, 서로에게 위로를 전하는 장면은 깊은 여운을 남겼다. 시청자와의 교감은 프로그램에 한정되지 않는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소통하고, 팝업스토어 사인회와 지역 콘서트를 통해 오프라인에서도 그때 그 시절의 팬들을 만난다.

우정과 연대의 장면은 무대까지 이어진다. 이효리는 20년 전에 함께 《10 Minutes》 무대를 했던 나나스쿨 댄서팀을 《댄스가수 유랑단》에 소환했다. 그 당시 이효리와 함께 춤을 췄던 배윤정은 이미 안무가로서 커리어를 완성했음에도 “무대를 꿈꿨지만 기회가 없었다. 《서울 체크인》을 보면서 무대에 서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했다. 이미 아기 엄마가 되고, 학부모가 된 댄서들이 이효리와 한 무대에 서면서 그 당시의 레전드 무대가 다시 완성됐다.

 

진해·여수·평창 등 전국 누비며 조명

이들의 첫 유랑 장소는 경남 창원의 진해였다. 코로나19를 지나 4년 만에 열린 세계 최대의 벚꽃 축제인 진해 군항제가 댄스가수 유랑단의 공식적인 첫 무대였다. 팬데믹과 함께 멈춰있던 벚꽃의 시간이 다시 시작된 현장에서, 자신들의 전성기를 다시 시작하듯 무대를 선보였다는 것은 그들에게도 큰 의미였다. 다음은 여수로 향했다. 태권도 대회가 개최되고 있는 여수의 체육관에서, 여수의 한 소방서 주차장에서 유랑단은 공연을 했다. 여수의 대표 관광지인 낭만포차 거리에서 버스킹 무대를 선보이며 현장에 있던 시민들과 호흡했고, 전남 광양에서도 미니 콘서트를 열며 다양한 지역의 관객과 만났다.

늘 많은 콘서트가 개최되는 서울이나 대도시뿐 아니라 콘서트가 자주 열리지 않았던 ‘지역’을 유랑 장소로 포함시킨 것도 《댄스가수 유랑단》의 차별점이다. 국내 최대의 벚꽃 축제를 함께하면서 진해의 벚꽃을 기억하게 하고, 유람선을 타고 여수의 경도로 향하며 남해안의 아름다움을 비춘다. 새조개와 갯장어 같은 여수의 음식도 함께 소개된다. 그렇게 유랑단은 그들이 향하는 지역으로의 관심도 시청자들에게 환기시킨다. 이들의 다음 행선지는 강원도 평창이다.

한국관광공사는 ‘여행 가는 달’로 정한 6월을 맞이해 《댄스가수 유랑단》 프로그램의 제작을 지원하고 있다. 지역 곳곳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의 콘셉트가 국내 관광을 활성화하려는 한국관광공사와 뜻과 맞기 때문이다. 지역의 의미 있는 축제를 프로그램을 통해 비추고, 전국의 아름다운 관광자원을 보여주면서 《댄스가수 유랑단》은 음악 예능 프로그램 이상의 기능도 해내고 있다. 이들은 앞으로 어떤 무대를, 어떤 유의미한 행보를 보여주게 될까. 유랑단의 다음 행선지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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