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지금” 수능 5개월 남기고 격랑 휩싸인 교육계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3.06.19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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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주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이규민 원장 중도 사임
교육부 대입 담당 국장도 경질…학생·학부모 등 현장 혼란 가중
프랑스·베트남을 방문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6월19일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 공군 1호기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프랑스·베트남을 방문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6월19일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 공군 1호기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사교육'과 '수능 난이도'를 직격하면서 교육계 전체가 격랑에 휩싸였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불과 5개월 여 앞두고 초고난도인 '킬러 문항' 배제 변수가 돌출한 가운데 인사 후폭풍까지 이어지며 학생과 학부모를 비롯한 교육 현장에서는 "왜 하필 지금이냐"는 탄식이 쏟아진다. 

이규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19일 "지난 6월 모의평가와 관련해 기관장으로서 책임을 지고 사임하기로 했다"며 "오랜 시간 수능 준비로 힘들어하고 계신 수험생과 학부모님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사임 결정 배경에 대해 "2024학년도 수능의 안정적 준비와 시행을 위한 것"이라며 "평가원은 수능 출제라는 본연의 업무에 전념해 2024학년도 수능이 안정적으로 시행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3월 취임한 이 원장의 임기는 2025년 2월까지였지만, 수능을 5개월여 앞둔 시점에 불명예 퇴진하게 됐다. 

이 원장이 사의를 표명한 것은 윤 대통령이 '공교육 교과과정 밖 수능 출제 배제' 지시를 내린 지 나흘만이다. 윤 대통령이 수능 출제 기조를 직접 언급하며 사교육 조장 문제점을 지적한 뒤 교육계에서는 혼선이 거듭되고 있다. 

이 원장에 앞서 교육부에서 대학 입시를 담당했던 이윤홍 인재정책기획관은 지난 6월 모의평가 난이도 조절 실패를 이유로 대기발령 조치되며 경질 됐다. 대입 담당 국장이 6개월 만에, 더구나 수능을 다섯 달 밖에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담당 국장을 경질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 조치다. 

윤 대통령이 지난 15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공교육 과정 밖 수능 출제 배제'라는 '공정 수능'을 지시하고, 이튿날 교육부 대입담당 국장이 경질된 가운데 수능 출제를 주관하는 평가원장까지 사임 의사를 밝힌 것이다.

교육부는 또 교육과정을 벗어난 수능 출제 논란을 언급하며 평가원에 대해 12년 만에 대대적 감사까지 예고한 상태다. 

이주호 사회부총리와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6월19일 국회에서 열린 학교교육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주호 사회부총리와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6월19일 국회에서 열린 학교교육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수험생, 학부모, 교육 현장 혼선 속 '한숨'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혼란은 더 극심해질 전망이다. 교육 현장에서도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는 아우성이 나온다. 윤 대통령과 정부가 지향하는 교육 철학에는 동의하지만, 시기와 방법이 잘못됐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가입자 수가 300만 명에 달하는 수능 관련 커뮤니티 '수만휘'에서 자신을 현재 고교 3학년(2005년생)이라고 밝힌 이용자는 "사교육 없애자는 의도는 알겠지만 지금 시점에 발표하는 게 문제"라며 "지난해 수능 끝나고 바로 알려 수험생이 대비할 수 있게 해야 했다"고 질타했다.

맘카페 등에도 "수능이 몇 달 남지도 않았는데 손바닥 뒤집 듯 바꿔버리면 어떡하나" "한국 사회에서 수능이 어떤 의미인지, 그 파급력을 대통령이 제대로 알고 발언한 건지 의문이 든다" "왜 자꾸 백년대계인 교육을 성급하고 무책임하게 흔드나" 등 성토가 이어졌다. 

당장 9월 모의평가를 둘러싼 혼선도 불가피 할 전망이다. 당정이 '킬러 문항' 배제 방침 가닥을 잡은 만큼 오는 9월6일로 예정된 평가원 주관 모의평가에서도 킬러 문항이 빠지는 등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사교육 경감을 위해 칼을 빼들었지만, 수능 난도를 낮추는 것만으로는 '풍선 효과'가 발생해 또 다른 사교육 비용이 커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수능 난이도가 낮아져 변별력이 약해지면 대입 전형에서 논술이나 면접 등의 가중치가 높아져 그만큼 또 다른 준비를 위한 사교육 비용이 올라갈 것이란 이유에서다. 

킬러 문항이 사라지는 대신 '준킬러 문항'이 대거 등장할 것이란 전망 속에 불명확한 기준으로 혼선이 계속될 것이란 지적도 잇따른다. 

야당도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국회 교육위원회 야당 간사인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수능을 5개월 앞둔 시점에 대통이 직접 나서 수능 출제에 대해 지시한다는 건 상식적인 일이 아니다"며 "즉흥적 발언으로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큰 혼란을 준 건 비판받아도 마땅하다"고 맹폭했다.

'물수능' 논란이 커지자 대통령실이 "공교육 교과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를 제외하라고 한 것"이라고 설명한 것을 두고도 김 의원은 "말장난이라고 본다"며 "(윤 대통령이) 미국 방문했을 때 '바이든-날리면' 논란이 연상된다. 왜 매일 국민들에게 국어시험 보고 청각 테스트도 하게 하느냐"고 꼬집었다.

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KBS 라디오에서 "선무당이 사람 잡듯 뭐 하나에 꽂히면 바로 대통령이 직접 이야기한다"며 "그러다 보니 대통령실이나 참모들, 관계 부처의 어처구니없는 변명과 해명, 수습으로 계속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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