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체포특권 포기’ 동상이몽?…판 키우는 與, 소극적인 野
  • 변문우 기자 (bmw@sisajournal.com)
  • 승인 2023.06.22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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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당론 내세우며 ‘동참 압박’…野, 이재명 선언에도 ‘당론화는 거부’

여야 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동시에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했다. 다만 발언 이후 여야 대표의 행보, 당내 분위기는 갈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불체포특권 포기’를 개인의 문제로 국한시킨 반면,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불체포특권 포기’를 당론으로 내세우며 소속 의원들의 서명까지 받기 시작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 대표가 ‘불체포특권 포기’를 당권을 방어하는 방패로 사용하려는 반면, 김 대표는 민주당의 ‘방탄 프레임’을 공격하는 창으로 쓰려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월2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59회 한국보도사진전 개막식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월2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59회 한국보도사진전 개막식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野 “李 개인의 사안…의원 전체 포기는 NO”

이 대표는 지난 19일 국회 본회의에서 대표연설 중 “저에 대한 정치 수사에 대해서 불체포 권리를 포기하겠다”며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제 발로 출석해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검찰에 무도함을 밝히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질세라 김 대표도 다음날인 20일 대표연설에서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이제 진짜로 포기하자”며 국회의원 모두에게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서 서명’을 제안했다.

김 대표는 본인의 제안을 곧바로 실천에 옮겼다. 그는 21일 의원총회에서 자당 소속 의원들로부터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서’를 받아냈다. 단체 기념촬영과 서약서 인증 사진도 남겼다. 해외출장을 비롯한 개인일정으로 112명 전원이 참여하진 않았지만 의원들 중 반대하는 목소리는 없었다. 서약식 사회를 맡은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 등은 “말로만 특권을 포기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드리겠다”며 이 대표와 민주당의 동참도 함께 촉구했다.

다만 민주당 내부에선 이 대표가 선언한 ‘불체포특권 포기’를 당론화하는 것엔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또 국회 차원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에도 소극적인 분위기다. 윤석열 정부의 정치탄압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불체포특권’마저 포기하면 검찰독재에 저항할 ‘방패’가 없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일단 민주당 지도부부터 당론화를 일축하고 있다. 송갑석 최고위원은 21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이 대표 외의 다른 의원들의 경우엔 (불체포특권과 관련해) 사안마다 따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성준 대변인도 같은 날 최고위 직후 기자들과 만나 “불체포특권이 분명히 헌법적 가치가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며 “이 대표는 자신에 대해선 포기하겠다고 말했고 추후 다른 사건의 경우 사안에 따라 판단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원내 의원들도 비슷한 주장을 내놓고 있다. 민주당의 4선 중진인 우원식 의원은 같은 날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민주당 의원들도 불체포특권을 포기하는 분위기냐’는 질문에 “그건 다른 문제”라며 “검찰이 부당한 권력 행사를 얼마나 더 할 것이냐는 문제도 있기 때문에 모두가 불체포특권을 포기하는 데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친문(친문재인)계 민주당 재선 의원도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이 대표의 선언은 불체포특권을 본인에게 적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라며 “이 대표의 그런 결단은 높이 사고 존중하지만 그렇다고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행정부의 부당한 정치 탄압에 저항해서 입법권을 수호한다는 차원에서 (불체포특권이) 부여된 것”이라며 “저는 여전히 헌법상의 국회의원의 권한인 불체포특권이 유지될 필요가 있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경기도 지역구의 민주당 초선 의원도 통화에서 “이 대표가 이번 선언을 계기로 당내 ‘코인 논란’을 비롯한 악재들을 단번에 타개하려는 취지는 긍정적으로 본다”면서도 “당내 모든 의원들이 불체포특권 포기에 대해 공감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금 윤석열 정부는 야당을 막 때려잡으면서 ‘정치 탄압’을 하려고 하는 상황이다. 없는 것도 만들어내서 기소시키려는 판국인데 불체포특권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은 어렵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원외 인사들도 가세했다.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으로 민주당을 탈당한 송영길 전 대표는 같은 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불체포특권 포기는 투항이다. 야당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라며 “불체포특권이 없으면 입법부가 어떻게 검찰 독재 정권과 싸울 수가 있겠나. 절대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은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이 대표는 어떤 보호 장치도 가지고 있지 않겠다는 무저항 정신을 보여준 것”이라며 “참 눈물난다”고 전했다.

윤관석·이성만(왼쪽부터) 의원이 6월12일 국회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 투표를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br>
윤관석·이성만(왼쪽부터) 의원이 6월12일 국회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 투표를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br>

차별화 나선 與…‘방탄 프레임’ 강화 시동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반응이다. 이 대표가 불체포특권 포기를 외친 것이 이번만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실제 ‘당론 가결’이 없다면 의원들이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킬 수 있어 이 대표의 선언이 ‘말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 전주혜 국민의힘 원내대변인도 같은 날 논평에서 “(이 대표가) 나는 포기했는데 동료 의원들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명분을 쌓고 내부 단속에 나섰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이 대표의 태도에 대해 “일관성이 없어”고 지적했다. 그는 “현 정권에선 민주당이 국민의힘보다 검찰수사에 더 많이 노출돼 불리한 상황이다. 여기에 민주당도 부담을 느끼는 것”이라며 “민주당은 수사를 이미 받거나 예상되는 사람들이 있으니 불체포특권 얘기는 원론적으로만 공감하고 적극 추진할 상황은 아닌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선 국민의힘이 이번 사안을 계기로 민주당과의 차별성 부각에 나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개혁 아젠다를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모습으로 지지층·중도 표심을 잡으려 한다는 해석이다. 또 앞서 ‘노웅래-이재명-윤관석-이성만’으로 이어지는 민주당 출신 의원들의 체포동의안 부결 과정에서 쌓아온 ‘방탄 프레임’도 강화하려는 모습이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각종 법안 발의를 통해 제도적 장치도 적극 마련하고 있다. 유의동 국민의힘 의원 등은 지난 17일 “방탄 국회를 막아야 한다”며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특권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도 대표 발의했다. 이준한 교수는 “국민의힘이 이 시점을 놓칠 리 없다”며 “국민의힘 의원들은 총선을 앞두고 자신들의 지명도도 올릴 기회로 삼아서 상당히 많은 의견들을 표출하고 민주당에 대한 공세를 강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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