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났지만 흔적은 없다…‘냉장고 시신’ 충격 속 2200명 어디에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3.06.22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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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만 의존하는 ‘출생신고’ 제도 한계…비극적 사건 되풀이
‘유령 아동’ 막기 위한 제도 추진하지만 의료계 반대 속 지지부진
대한민국의 저출산, 고령화, 인구 절벽 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다. 사진은 경기도 수원시 한 병원 신생아실 모습 ⓒ뉴시스
경기도 수원시 한 병원 신생아실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뉴시스

자신이 낳은 두 명의 아이를 연쇄 살해한 뒤 시신을 냉장고에 보관해 온 30대 여성. 세상 빛을 보자마자 친모에 의해 살해 당한 핏덩이 아이들. 출생률 제고를 연일 부르짖으면서도 5년 간 이를 인지조차 못한 한국 사회. 구멍 뚫린 출생아 관리 체계 민낯이 또 한번 드러났다. 

아무도 모르게 학대 당하고, 죽어가는 아이들의 되풀이되는 비극을 막기 위해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5년부터 8년 간 출산 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영아는 전국적으로 2200여 명에 달한다. 

 

냉장고서 나온 신생아 시신 2구…범인은 친모

경기 수원의 한 가정집 냉장고에서 영아 시신 2구가 발견됐다. 각각 남아와 여아로 확인된 영아들은 모두 생후 1일 차에 30대 친모에 의해 살해 당했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영아살해 혐의로 긴급체포된 A씨에 대해 6월22일 0시께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정확한 살해 동기 등을 조사 중이다. 

A씨는 2018년 11월과 2019년 11월 각각 사망한 아기들을 출산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세상에 나온 직후 친모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A씨는 넷째 자녀이자 첫 번째 살해 피해자인 아기를 병원에서 출산한 후 집으로 데려와 목 졸라 살해했고, 두 번째 살해 피해자인 아기는 출산 병원 인근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살해했다.

경찰에 발각되기 전까지 A씨는 자신이 살고 있는 수원시 장안구 소재 아파트 세대 내 냉장고에 아이들의 시신을 보관했다. 첫 번째 살해로부터 4년7개월이 지나는 동안 이를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남편 B씨와의 사이에 12살·10살·8살인 3명의 남매를 두고 있던 A씨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또 임신을 하게 되자 출산과 동시에 아이들을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은 남편은 “아내가 임신한 사실은 알았지만 낙태 했다는 말을 믿었다”며 살해 등 범행 과정에 개입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신생아 ©Pixabay
신생아 ©Pixabay

의료계 난색 속 출생신고 안된 아이들 ‘안전망’ 전무

충격적인 영아 살해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난 건 감사원의 복지 전달체계 지적에 따른 후속 대처 과정에서다. 감사원은 올해 3~4월 보건당국에 대한 정기감사 결과 ‘출산 기록은 있으나 출생 신고는 되지 않은 사례’를 파악하고 5월 말께 이를 당국에 통보했다.

신생아가 태어나자마자 주민등록번호 없이도 반드시 맞아야 하는 B형간염 백신 접종 정보와 의료기관의 정산 청구 정보를 토대로 ‘유령 아동’을 추려낸 것이다. 2015~2022년까지 출산 후 신고가 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 영아 규모는 2236명에 달한다. 

이 중 1%에 해당하는 23건이 관할 지자체에 통보됐고, 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영아 2명이 냉장고 속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앞서 수원시는 A씨에 대한 현장조사를 시도했지만, A씨가 이를 거부하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6월21일 압수수색 과정에서 A씨로부터 범행을 모두 자백받았다.

경기 화성시에서도 소재 파악이 되지 않는 영아 사례가 확인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아기의 친모는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사람에게 생후 한 달 가량의 자녀를 넘겼다고 진술한 상태다. 출생신고 이후 생사 여부가 파악되지 않고 있는 2000여 명 가운데 또 다른 범죄 희생자가 확인될 수 있는 상황이다. 

영아 살해가 장기간 드러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출생신고가 안 된 아이의 경우에는 태어난 사실조차 확인이 불가능한 현행 출생신고 체계의 한계 때문이다. 현행법상 출생신고 의무는 아이를 낳은 부모에게만 부여된다. 부모는 주민등록법상 출생 1개월 이내에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 산부인과를 비롯한 의료기관은 행정 기관에 출생 사실을 통보할 의무가 없다.

이번에 사망한 아이들처럼 병원에서 출산했더라도 친부모가 출산 사실을 숨겼다면 생존 반응이 전무하더라도 사망 사실조차 파악할 수 없는 구조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6월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6월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유령 아동’ 학대·사망 비극은 계속돼 왔다. 올해 3월 생후 76일인 아기를 방치해 영양결핍으로 숨지게 한 친모가 구속됐는데 미혼모인 친모는 출산 뒤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2021년 1월에도 8살 딸을 살해한 친모가 구속됐는데 숨진 아이는 출생 신고가 안 돼 있었다. 피해 아동은 지자체나 교육당국 등 학대 예방 체계에서 걸러지지 못한 채 아무도 모르게 8년 간의 짧은 생을 마쳐야 했다. 

보건복지부는 이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 의료기관이 지자체에 출생 사실을 통보하는 출생통보제를 추진하고 있지만 의료계 반대로 속도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출생통보제는 의료기관이 아동 출생정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전산정보시스템을 이용해 시·읍·면장에게 통보하도록 하는 제도다. 정부는 지난 4월 윤석열 정부의 아동정책 추진방안을 발표하면서 이 제도 도입에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의료계는 지나친 행정 부담과 시스템상 문제 등을 이유로 도입을 반대하고 있고, 해당 내용이 담긴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도 국회에 계류된 상태라 기약이 없는 상태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6월22일 국회에 출석해 “수원에서 발견된 아동은 출생 아동 필수예방접종에서 부여되는 임시 신생아번호를 통해 발견됐는데, (현재로서는) 저희가 아동을 추적해서 보호할 방법이 없다”며 “앞으로 엄마의 정보를 입수해 추적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신속히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출생통보제와 더불어 보호출산제(익명출산제·의료기관에서 여성이 익명으로 출산한 아동을 국가가 보호) 도입도 조속히 필요한 상황이라며 국회의 협조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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