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인도의 오월동주 노림수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7.01 12:05
  • 호수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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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노선 벗어나 미국과 긴밀해지는 인도의 전략…중국과의 격차 해결 위한 이니셔티브인가

최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방미 과정에서 미국이 보여준 모습은 파격 그 자체였다. 2016년에 이어 두 번째로 미 상·하원 합동연설을 마련했고, 별도의 비공개 만찬은 이틀 연속 이어졌다. 미국은 의전뿐만 아니라 그동안 인도가 원하던 것을 아낌없이 제공했다.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은 인도 국영기업 힌두스탄 에어로노틱스(HAL)와 인도에서 전투기 엔진을 공동 생산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인도는 자국산 경전투기 프로그램에 필요한 핵심기술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6월2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6월2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AP 연합

모디 총리 방미는 파격 그 자체

인도는 미국의 제너럴아토믹스가 생산한 무인 해상대잠초계기인 MQ-9B 시 가디언을 구매하기로 약속했다. 국방계약뿐만 아니라 미국은 인도가 최근 투자를 시작한 반도체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인도의 IT 수도인 벵갈루루와 아메다바드에 미국 영사관을 개설하는 데 협력하기로 했으며, 인도의 유인 우주비행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인도 우주비행사의 훈련을 실시하기로 했다.

인도는 독립 이후 초대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가 “제3의 블록이 강대국들의 오만함을 중재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비동맹 노선을 채택한 이후 이러한 노선은 인도의 정책과 국가 정신의 초석이 됐다. 인도는 여전히 비동맹 노선을 걷고 있다. 지난 1월 모디 총리는 알제리, 아제르바이잔, 베네수엘라 등 반서방국가가 대거 참석한 정상회의를 주최했으며, 7월 중에는 중국, 러시아, 중앙아시아 국가를 포함하지만 미국과 다른 서방국가는 가입하지 않은 유라시아 다자간 그룹인 상하이 협력기구의 온라인 정상회담을 주재할 예정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인도는 러시아산 원유를 가장 많이 구매한 국가이며, 미국 및 서방국가와 달리 러시아 침공을 규탄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인도는 조금씩 기존 노선에서 탈피해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와 점차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인도-러시아의 무기 공급과 기존 무기 시스템의 유지가 곤란해지면서 미국과의 협력을 대안으로 모색하게 됐다. 중장기적으로는 중국의 급속한 성장으로 인한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인도는 미국, 일본, 호주와 함께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에 대응하기 위한 비공식 그룹인 ‘쿼드’에 합류했으며, 올해 1월 미국과 국방, 기술, 우주 분야의 협력을 다루는 ‘핵심 및 신흥 기술 이니셔티브’를 발표한 바 있다.

인도는 세계 최대의 인구를 보유한 민주주의 국가로서 경제 규모는 세계 5위에 이른다. 특히 전 세계에 거주하고 있는 인도 이민자들은 미국 비즈니스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많은 이는 인도가 중국을 제치고 차세대 글로벌 강대국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 인도의 출산율은 중국의 거의 두 배에 달하며, 지난 2년간 경제성장률에서 중국을 앞질렀다. 지난 분기에도 인도의 GDP는 6.1% 성장한 반면, 중국은 4.5% 성장에 그쳤다. 인도는 상대적으로 젊고 인구가 증가하는 국가로서 다른 나라들이 부러워하는 위치에 있다. 세계 최대 인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뛰어난 IT 인력들을 세계에 공급하는 두뇌국가이면서 지정학적으로 모든 강대국으로부터 구애를 받는 인도는 성장과 번영이 약속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도의 고민은 중국과의 격차가 좁혀지기는커녕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인도의 경제 규모는 여전히 중국보다 훨씬 작다. 중국 경제는 GDP 17조7000억 달러로 인도 GDP 3조2000억 달러보다 약 5배 더 크다. 경제성장을 견인할 과학기술 개발 경쟁에서도 인도는 뒤처지고 있다. 중국은 GDP의 2%를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반면, 인도는 0.7%를 지출한다. 매출 기준 세계 20대 기술 기업 중 4개가 중국 기업이지만 인도에 본사를 둔 기업은 없다. 중국은 전 세계 5G 인프라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지만 인도는 1%에 불과하다. 중국은 전 세계 AI 특허의 65%를 보유하고 있는 반면, 인도는 3%에 불과하다.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중국의 AI 기업들이 950억 달러의 민간 투자를 유치하는 동안 인도는 70억 달러에 그쳤다.

사회적으로 살펴보면 1980년대 중국의 10억 인구 가운데 90%가 세계은행이 정한 극빈층 기준보다 낮은 소득을 얻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그 수치는 거의 0에 가깝다. 그러나 인도 인구 14억 명 중 여전히 10% 이상이 세계은행의 극빈선인 하루 2.15달러 이하로 생활하고 있다. 2019~21년 인도 인구의 16.3%가 영양 부족 상태로 세계에서 아동 영양실조 비율이 가장 높다. 인구의 2.5% 미만이 영양 결핍 상태인 중국과 비교된다. 인도 노동력의 경우 여성 비율이 약 20%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모디 총리 재임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뿌리 깊은 정실 자본주의 때문에 상위 1%가 보유한 부의 비중은 모디 총리 취임 이후 증가해 현재 40.5%에 달하고 있다. 실업률은 증가하고, 기본 식료품 가격은 치솟고 있으며,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정부 투자는 정체되고 있는 것이 인도의 실상인 것이다.

1990년대에 인도가 시장 개방과 경제자유화에 나서자 서방의 많은 전문가는 인도가 다시 한번 ‘경제 기적’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2006년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인도 스스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자유시장 민주주의 국가”라고 강조하면서 인도 경제가 곧 중국을 넘어설 것이라고 말했을 때 대다수 전문가는 이를 당연한 것으로 간주했지만 실현되지는 않았다.

 

한국에도 인도가 기회의 땅 될 수도

모디 총리는 일부 사람에게는 번영과 국가적 자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성장을 이끄는 탁월한 지도자로 여겨지고 있지만, 다른 많은 사람에게는 권위주의와 억압적 통치자로 여겨지고 있다. 여당인 우파 힌두 민족주의 정당인 바라티야 자나타당(BJP) 아래에서 인도는 정치적 권리와 민주적 자유가 심각하게 약화되고 있다.

인도는 많은 잠재력을 가진 국가로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로부터 중국을 대체하거나 중국과 경쟁할 수 있는 국가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인도가 처한 현실을 고려해 봤을 때 그러한 기대가 현실화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의 거리가 점차 멀어지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를 대체할 기회의 땅으로서 인도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며 바람직하다. 하지만 인도와 중국은 매우 다른 나라이며 우리가 과거 중국에서 성공했던 것처럼 인도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성공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복잡해지고 있는 지정학적 질서 속에서 인도가 보여줄 행보를 차분하면서도 냉정하게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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