펩시 마시는 러시아 P세대가 국가 명령 따르는 Z세대로 바뀔 수 있을까 [임명묵의 MZ학 개론]
  • 임명묵 작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7.01 16:05
  • 호수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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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용병집단의 무장반란 배경은 ‘전쟁 기피 세대 속 전쟁 좇는 바그너’
전장 나가서 싸울 러시아 젊은이들 심리, 소련 시절과는 달라

6월24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필자의 메신저 창에 불이 나있었다. 이곳저곳에서 러시아의 PMC(민간군사기업) 바그너그룹과 그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무장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이 공유되었다. 그 후 사태의 전개는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로 어지러웠고, 필자는 몇몇 지인과 실시간으로 소식을 주고받으며 사태를 최대한 파악하고 이해해 보고자 했다. 

먼저 프리고진은 이번 우크라이나를 향한 ‘특수군사작전’의 대의 자체가 잘못되었으며, 러시아 국방부 장관인 세르게이 쇼이구가 자신들을 공격했다고 비난하며 남부 전선의 주요 도시인 로스토프나도누를 점령했다. 여기서 프리고진은 국방부 차관과 면담했으나 협상은 결렬되었고, 그대로 북진을 시작해 모스크바 인근까지 파죽지세로 북상했다. 바로 이 시점에 벨라루스 대통령 알렉산드르 루카셴코의 중재로 프리고진의 벨라루스 ‘망명’이라는 협상안이 타결되어 이 기이한 쿠데타가 종결되었다. 대체 이런 이상한 쿠데타는 어쩌다 일어난 것이며, 러시아 사회에는 어떠한 의미를 던지는 것일까.

ⓒAP·EPA·AF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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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그룹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푸틴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바그너그룹이 어떤 집단인지부터 짚을 필요가 있다. 바그너그룹은 2014년 프리고진이 창설한 민간군사기업, 즉 용병집단이다. 이들은 주로 러시아가 공식적인 경로를 우회해, 자국 바깥에서 군사활동을 펼치는 데 주로 활용되었다. 2014년 돈바스 전쟁과 시리아 내전에서 ‘데뷔’한 바그너는 이후 중동과 아프리카의 분쟁 지역에 주로 참여하면서 주가를 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때만 하더라도 바그너 전체 대원은 몇천 명 수준이었고, 바그너그룹의 이름을 아는 이도 많지 않았다.

상황은 러시아가 지난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바뀌었다. 바그너그룹이 전선 곳곳에 등장하며 우크라이나 도시를 점령해 갔다. 러시아가 전쟁을 시작했음에도 바그너에 의지하고자 한 이유는 러시아 사회의 변화 때문이었다. 전장에 나가서 싸울 젊은이들의 심리가 소련 시절과는 달라진 것이다. ‘푸틴과 펩시’로 상징되는 러시아의 청년층 P세대는 분명 기성세대처럼 애국주의적인 성향이 어느 정도 있다. 하지만 ‘푸틴’과 함께하는 애국은 ‘펩시’로 상징되는 서구식 소비문화를 즐길 수 있는 정치적 안정을 수반하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도시 생활과 소비문화, 안락한 삶에 익숙해진 젊은 세대가 구태여 전쟁, 그것도 남의 나라를 공격하는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리 없다. 

전선에 끌려갈 청년층의 부모들도 문제다. 예전처럼 자녀를 여러 명 낳는 시대가 아니기에 전선의 소식에 민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하면 전쟁, 나아가 정권에 대한 러시아 내부의 여론이 흔들리는 것이 필연이다. 푸틴도 이를 잘 알기에 그는 병력을 대대적으로 동원해 전선에 투입하는 전통적인 러시아식 전술을 최대한 피하고자 했다. 지난해 9월 우크라이나군의 대반격 이후에는 30만 명의 예비군을 징집하는 부분동원령을 발동했으나, 러시아는 이를 여전히 전면적인 전쟁이 아니라 ‘특수군사작전’이라 칭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에서 통솔하는 징집병은 주로 방어선에 배치되어,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을 저지하는 역할을 맡았다. 러시아가 화력과 물자 면에서 우위에 있음에도, 침략당한 조국을 지킨다는 우크라이나군보다는 사기가 낮다. 자연스럽게 적극적인 공세 병력으로 활용하기보다는 일단 전선을 지키는 방어 병력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대로 끝낼 생각이 없고, 추가적인 전과 획득과 영토 확보를 확실히 해야만 승리를 주장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때 푸틴이 공세 병력으로 동원하기 시작한 것이 바그너그룹이었다. 전의와 사기가 높지 않은 일반적인 청년층 대신, 죽음을 항상 무릅써야 하는 위험한 전장에도 거리낌 없이 나갈 자원 병력을 공세에 투입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용병집단의 주요 구성은 형기 감축을 조건으로 자원한 죄수와 바그너가 주는 높은 보수에 이끌린 자원병들이다.

AP·EPA·AF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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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청소년들에게 군사-영웅주의 주입

이들은 작년 여름 세베로도네츠크와 올해 초 바흐무트 같은 치열한 시가전에서 선전하며 전과를 올렸다. 화력 격차가 극심한 개활지 전투를 회피한 우크라이나군은 도시를 요새화해 농성했고, 바그너그룹에 막대한 피해를 강요했다. 이 과정에서 프리고진은 자신들이 러시아군보다 더 중요한 작전을 수행하며 피해를 기꺼이 감수하고 있음을 강조하며 끊임없이 쇼이구 장관이나 총사령관 발레리 게라시모프를 비난했다. 러시아군이 바그너그룹을 견제하기 위해 포탄도 제대로 보급하지 않고, 작전을 아예 방해하고 있다고 텔레그램 채널 등을 통해 계속 지적하기도 했다.

적어도 정권을 지지하는 러시아인 사이에서는 바그너그룹과 프리고진의 불평과 비난에 심정적으로 공감하며, 푸틴의 측근인 쇼이구와 게라시모프를 비판하는 분위기가 널리 퍼질 수밖에 없었다. 바그너는 손실을 감수하며 전투에서 승리를 거머쥐는 모습을 미디어 선전을 통해 보여주며, 러시아 역사에 굉장히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 군사-영웅주의를 자극했다. 하지만 군사적 측면뿐 아니라 정치적 문제와 특히 여론을 신경 써야 하는 푸틴과 러시아 국방부는 그러한 직접적인 승리의 ‘장면’을 연출할 수는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바흐무트 전투 이후 국방부가 바그너그룹을 자신들 산하로 통제하려 하자, 프리고진은 큰 불만을 품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 프리고진은 바그너그룹이 연출하는 군사-영웅주의에 연호하는 러시아인들을 생각하며, 일선에서 전투를 벌이는 용병 대장인 자신이 러시아군 머리 위에 설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물론 프리고진의 판단은 틀린 것으로 드러났고, 시민들도 바그너그룹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않자 반란은 허망하게 끝나고 말았다.

프리고진이 거대한 러시아군을 뒤집고자 반란을 시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전쟁을 꺼리는 러시아의 새로운 세대 중에서 전장에 기꺼이 나서는 이들을 통솔했기 때문이었다. 이를 고려하면 푸틴의 다음 행보, 혹은 이미 밟고 있는 행보도 읽어낼 수 있다. 영국 저술가 이언 가너는 얼마 전 《Z세대》라는 책을 출간했다. 여기서 Z는 우리에게 익숙한 그 의미가 아니라, 러시아에서 이번 전쟁의 표식이 된 ‘Z’를 의미한다. 푸틴이 애국주의 교육을 통해 새롭게 커나가는 청소년들에게도 군사-영웅주의를 주입하고, 그들을 정권에 충성하는 ‘전쟁 세대’로 키워나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힙합을 듣고 펩시를 마시는 P세대를 러시아의 군사적 영광을 위해 기꺼이 국가의 명령에 따르는 Z세대로 바꾸려는 러시아의 시도는 얼마나 성공적일 수 있을까? 그 결과에 따라 다른 나라들의 청년 세대도 군과 전쟁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임명묵 작가
임명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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