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폭’부터 ‘킬러 규제’까지…尹의 ‘신조어 정치’ 손익계산서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3.07.05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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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대통령 메시지에 여야 상반된 평가…“선명해” vs “거칠어”
‘적’을 규정하는 언어에 우려도…“협치 아닌 정쟁만 부추겨”

“‘건폭’이 근절될 때까지 엄정 단속해 달라.” (2023년 6월21일, 국무회의에서)

“우리 정부는 ‘반카르텔’ 정부다.” (2023년 7월3일, 신임 차관 임명식에서)

“‘킬러 규제’를 팍팍 걷어내라.” (2023년 7월4일,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메시지가 정치권 화두가 됐다. 윤 대통령이 사회와 경제 전 분야에 걸친 변화를 주문하는 과정에서 ‘건폭’, ‘킬러 규제’ 등의 신조어를 사용하면서다. 여권에선 대통령의 메시지가 간결하고 함축적으로 전달될 수 있다며 ‘신조어 정치’에 높은 점수를 매기는 모양새다. 다만 정치권 일각에선 대통령의 언어가 거칠어질수록 여야의 대립과 정쟁이 격화될 것이란 우려 섞인 분석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6월28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제69주년 기념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6월28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제69주년 기념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전에 없다? 날이 선, 낯선 대통령의 메시지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윤 대통령을 사석에서 만난 이들은 모두 대통령을 가리켜 ‘달변가’라 평가한다. 대선 전 윤 대통령을 만난 한 법조인은 “(말이) 직선적이고 화통하다”고 말했고, 대선 후 윤 대통령을 사저에서 만난 한 여권 관계자는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아닌 건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라고 전했다.

실제 윤 대통령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부터 ‘말’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대표적인 예가 국정감사장에서 남긴 ‘명언’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2013년 10월12일 서울고검 국정감사장에서 “검찰 조직을 사랑하지만,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발언해 국민들에게 강골 검사 이미지를 각인하며 이름을 알렸다.

다만 대선에서 승리한 후에는 말을 아꼈다. 특히 집권 직후 ‘도어스테핑’(약식 기자회견)을 통해 실언 논란이 지속되자 언론과의 접점을 대폭 줄였다. 윤 대통령이 도어스테핑을 중단한 이후 인터뷰에 응한 국내 언론사는 ‘조선일보’가 유일하다. 이외에는 외신 인터뷰에만 집중했다. 이를 두고 여권 한 관계자는 “언론을 통해 대통령의 말이 자꾸 왜곡되고, 와전되니 사전에 정제된 메시지만 전달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귀띔했다.

이후 윤 대통령의 메시지는 대통령실 언론 브리핑을 통해 주로 전달됐다. 그렇게 전해진 윤 대통령의 ‘언어’는 도어스테핑 당시보다는 간결해졌다. 때론 사전에 없는 신조어를 사용해가며 자신의 정책 방향과 소신을 설명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만든 대표적인 신조어가 ‘건폭’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6월2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 직후 ‘건설 현장 폭력 현황 및 실태’를 보고 받고 강성 기득권 노조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 과정에서 윤 대통령은 건설현장 폭력 및 갈취 행위에 대해 완전 근절을 관계부처에 지시하면서 ‘건설 폭력’을 ‘건폭’으로 줄인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최근에는 ‘카르텔’이란 용어를 자주 사용하는 모습이다. 지난 3일에는 신임 차관들과 만나 “이권 카르텔과 가차없이 싸워 달라”며 “우리 정부는 ‘반카르텔’ 정부”라고 규정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대통령실 비서관 출신 차관 내정자들과 만나서도 “약탈적 이권 카르텔을 발견하면 맞서 싸워달라”고 주문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다음 날(4일)에는 ‘킬러 규제’라는 새로운 신조어를 사용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가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보고 후 “정의란 공정하게 보상이 이뤄지는 것이며, 공정한 보상이란 경쟁 시스템을 통해 정해지는 것”이라며 “기업인들의 투자 결정을 저해하는 결정적인 규제, 즉 ‘킬러 규제’를 팍팍 걷어내라”고 지시했다.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 참석차 프랑스를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천안함 티셔츠·모자를 착용한 채 6월20일(현지시간) 파리의 몽소 공원을 산책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 참석차 프랑스를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천안함 티셔츠·모자를 착용한 채 6월20일(현지시간) 파리의 몽소 공원을 산책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수 결집 효과”…“대통령이 정치 대립 부추겨”

대통령의 언어를 두고 여야의 평가는 갈린다. 여권에선 윤 대통령의 메시지가 집권 초에 비해 간결해지고, 선명해졌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모습이다. TK(대구‧경북) 지역구의 한 국민의힘 의원은 “대통령은 말은 곧 정책의 나침반이다. 대통령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개혁의 대상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전달돼야 한다”며 “그런 면에서 최근 윤 대통령의 메시지는 ‘고속도로’처럼 명확하다”고 말했다.

반면 대통령의 언어가 다소 거칠고, 불명확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4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 한 인터뷰에서 “공정거래법 40조에 (명시된) 부당한 공동행위라는 게 바로 카르텔이고 담합이다. 3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2억원 이하의 벌금형 등 아주 중한 범죄”라며 “대통령께서 최근 이 카르텔이란 말에 꽂히셔가지고 카르텔이란 말을 아무 때나 오·남용하시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윤 대통령이 신조어를 사용하는 이유가 정책에 대한 정확한 설명보다는 적(敵)의 부정적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대통령이 일부의 불법·탈법 사안을 특정 집단 전체의 문제로 단순화해 사안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는 얘기다.

더불어민주당 한 초선의원은 “대통령이 정치인의 언어가 아닌 검사의 언어를 사용하려 한다”며 “대통령이 한 집단을 피의자처럼 낙인찍으면 타협이나 통합의 과정은 실종되고 만다”고 비판했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대통령이 우경화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고도의 정책적 판단이 필요한 사안들을 굉장히 이념적으로 재단하고 있다는 느낌”이라며 “그런 경향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대통령의 날 선 언어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분석한다. 이른바 ‘반문재인’을 외치는 보수층이 결집할 것이란 전망과, 합리적‧실용적 정책을 중시하는 중도층의 이반을 낳을 것이란 시각이 공존한다. 일각에선 대통령의 언어가 거칠어질수록 여야의 정쟁이 격화될 것이란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온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는 “대통령의 과격한 언사에도 여당 지지율이 급락하지 않는다. 보수층 결집 효과가 분명 있는 셈”이라며 “보수층이 대통령에게 기대했던 ‘기득권 타파’의 이미지도 강화된다”고 했다. 이어 “그러나 보수적이고 거친 언사가 이어지면서 중도층의 경우 (대통령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화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사용하는 단어나 언어들이 우리 정치권을 양극화하거나 정쟁을 격화시키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라며 “여야 정치인들도 (거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대통령부터 중심을 잡고 언어를 절제해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윤 대통령이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제거한다는 발상을 버려야 한다”며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에 통 크게 양보했다. 그런 발상의 전환을 국내 정치에서도 보여달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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