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역할만 만나는 내가 안쓰럽기도 하다”
  • 하은정 우먼센스 대중문화 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7.22 16:05
  • 호수 1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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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3관왕’ 웰메이드 스릴러 
《비닐하우스》의 주연 배우 김서형

드라마 《종이달》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던 김서형이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김서형은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로 강렬한 존재감을 발산하며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배우다. 《종이달》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마인》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때로는 차갑게, 때로는 다정하게, 때로는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선보이며 특유의 이미지를 구축해 가고 있다. 최근에는 KBS 음악방송 《더 시즌즈-최정훈의 밤의 공원》에 출연해 몽환적인 보컬은 물론 즉석에서 기타 연주까지 하며 다채로운 매력을 발산해 화제가 됐다.

ⓒ트리플픽쳐스 제공
ⓒ트리플픽쳐스 제공

“올해 가장 압도적인 스릴러” 찬사

김서형이 출연한 영화 《비닐하우스》는 비닐하우스에 살며 간병인으로 일하는 ‘문정’이 간병하던 노부인이 사고로 숨지자 이를 감추기 위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면서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이야기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3관왕의 쾌거를 이루며 올해 가장 압도적인 스릴러라는 찬사를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극 중 김서형은 주인공 ‘문정’ 역할을 맡았다. ‘문정’은 시각장애인 ‘태강’과 치매에 걸린 ‘화옥’ 부부의 집에서 간병인으로 일하며 아들과 함께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화옥’을 목욕시키던 중 갑작스러운 사고로 ‘화옥’이 죽음에 이르게 되고, 이를 숨기기 위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며 절박한 상황에 부닥치게 되는 캐릭터다.

김서형은 ‘문정’ 캐릭터를 섬세하고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순간적으로 최악의 선택을 하지만 비닐하우스를 벗어나 아들과 함께 살고 싶었던 단 하나의 희망을 놓치고 싶지 않은 ‘문정’의 욕망을 신들린 연기로 보여주며 스크린을 압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녀린 몸, 무채색의 옷, 부스스한 머리, 나지막하고 연약한 목소리, 핏기 없는 얼굴과 표정으로 완벽하게 맡은 캐릭터로 분했다.

연출은 신인 감독 이솔희가 맡았다. 단편 《그 여름의 끝》을 시작으로 《닮은 것들》과 《개미무덤》을 연출한 이 감독은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섹션 경쟁부문에 단편 《개미무덤》이 공식 초청되며 연출력을 인정받은 바 있는 괴물 신인이다. 그는 첫 장편 데뷔작 《비닐하우스》를 완성하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CGV상, 왓챠상, 오로라미디어상을 수상해 다시 한번 탄탄한 작품성과 연출력을 입증했다.

이솔희 감독은 자신의 첫 장편 데뷔작 《비닐하우스》의 시작점에 대해 “돌봄이라는 키워드로 시작됐다. 누군가를 돌봐야만 하는 쪽과 누군가에게 돌봄을 받아야만 하는 쪽, 그 관계를 좀 가까이서 내밀하게 지켜볼 수 있었던 경험이 있었다. 돌봄으로 얽힌 인물들의 깊고 어두운 욕망을 들여다보고 싶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야기를 펼쳐 나가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연약한 사람들이 한데 모여 벌어지는 지독하게 아픈 이야기로 다가가길 원한다”고 작품의 의도를 밝혔다.

김서형의 캐스팅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감독은 “김서형 배우를 만나기 전에 당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만나본 적은 없었지만 그 배우가 가진 어떤 장악력이 상상됐다. 워낙 카리스마 넘치는 진한 캐릭터들을 했고, 또 그것들을 너무 잘해준 배우이지 않나. 아마도 내 머릿속에서는 실제 김서형이라는 배우와 그간 맡은 캐릭터들의 분리가 안 된 상태였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막상 만나보니 소녀 같았다. 이렇게 여리고 맑은 사람이 어떻게 그런 진한 캐릭터들을 할 수 있었을까 신기할 정도였다. 그래서 더 믿음이 가고 좋았다. ‘문정’이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배우였다”고 말했다.

《비닐하우스》에는 김서형 외에도 《더 글로리》에 출연한 안소요와 베테랑 배우 양재성이 열연한다. 압도적인 연기로 호평을 받는 김서형을 《비닐하우스》 기자간담회를 통해 만났다.

 

신인 감독의 작품이기도 하고, 어려운 역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

“대본을 읽고 ‘왜 내게 이런 작품을 주셨을까’ ‘내가 이걸 끝내고 나면 얼마나 감정이 피폐해질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아프고 고된 캐릭터를 많이 만났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아픈 캐릭터를 만나야 할까 싶기도 했다. 스스로가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만큼 캐릭터를 빨리 흡수한 것 같기도 하다. 감독님은 저보다 한참 어린데도 어떻게 이런 것들을 알까 하는 생각으로 이 작품을 선택한 부분도 있다. 그리고 현장에서 충분히 믿고 맡길 수 있겠다 싶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그렇고 연기에 대해 호평 일색이다. ‘문정’이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해석했나.

“칭찬해 주셔서 감사하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문정’은 피하고 싶은 여자였다. 읽고 나서 엄청 울었으니까. ‘내가 이 역할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보다 ‘문정이 겪는 상황이 왜 꼭 착한 사람한테 와야 할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힘들었나.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뉴스에서 보고 안타까워했던 이야기,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회피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그래서 영화를 마주하는 것이 힘들었다. 하지만 문정을 만나 지금까지 살아온 삶, 앞으로 살아야 할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문정과 겉보기론 다른 삶을 사는 것 같지만, 인생사를 통틀어보면 모두에게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정을 연기함에 있어 그냥 문정이고 싶었다”

연기를 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나 힘든 부분은 어떤 것이었나.

“‘문정’의 힘듦을 고통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문정’을 받아들이고 연기함에 있어 그냥 ‘문정’이고 싶었다. 그래서 그 힘든 삶의 고초를 티 내며 연기하고 싶지 않았다. 문정은 삶에서 지키고 싶은 게 명확하다. 그래서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을 거 같았기 때문이다. 힘든 것보다는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삶,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사는 게 중요했다. 최대한의 자연스러움을 감독님과도 많이 얘기했다.”

비주얼부터 말투까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어떤 캐릭터를 만났을 때 많은 고민을 하고 분석을 한다. 감독님과 많은 회의를 했고, ‘문정’스러운 모습을 만들어갔다. 말투에 대해서도 감독님이 피드백을 줬고, 현장에서 계속 함께 잡아나갔다.”

대선배인 배우 양재성과 후배 배우인 안소요와의 호흡도 궁금하다.

“선생님에 대해서는 그 어떤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어릴 때부터 브라운관으로 많이 본 선배님과 함께해 영광이었다. 안소요는 몰입 자체가 장착돼 현장에 온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에너지가 정말 좋은 배우였다.”

 

베테랑 배우 양재성은 김서형과의 호흡에 대해 “경험이 많아서 불편함이 없었고, 상대를 편하게 해주려고 하는 마음을 가진 배우”라고 전했다. 안소요는 “거의 덕통사고(덕후+교통사고)를 당한 것처럼 선배님을 바라봤다. 극 중 ‘문정’이 ‘순남’을 친절하게 대하면서도 은근히 선을 긋는데, 조금만 더 ‘문정’이 ‘순남’을 바라봐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처럼 실제로도 저를 바라봐주었으면 좋겠다는 동경의 눈빛으로 선배님을 봤다”며 애정과 존경의 마음을 전했다.

이솔희 감독 또한 세 배우의 열연에 대해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 감독은 “《비닐하우스》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게 관전 포인트”라고 전하며 “영화가 파국을 이야기하고 있고, 모든 인물이 ‘부서진다’는 표현도 맞다. 그럼에도 어떻게 해서든지 ‘문정’ 같은 인물들이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살았으면 좋겠다. 내가 나의 주체가 되었으면 좋겠다. 조금 이기적이지만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그런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비닐하우스》는 7월26일 개봉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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