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초리 든 학주’가 돌아온다?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3.07.25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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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초 교사 비극에…與 “교권 침해 조항 개정 또는 폐지”
정부 ‘학생인권조례’ 때리기에 교사단체 “사건 본질 흐려”

남학생의 머리카락을 직접 가위로 자르고, 여학생의 치마 길이를 자로 쟀다. 그게 선생님의 ‘권한’이었다. 반항하는 학생은 어김없이 맞았다. 빗자루, 단소, 때론 주먹이 ‘사랑의 매’가 됐다. 그래서 ‘학주’(학생 주임)는 학생들에게 존경을 넘어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 같은 학교의 풍경은 2010년 ‘학생인권조례’가 등장하며 바뀌었다.

교육계의 ‘진일보’라 여겨졌던 ‘학생인권조례’가 최근 폐지‧개정 기로에 섰다. 학생의 인권을 ‘과잉보호’한 탓에 교권이 추락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학생인권조례의 문제점을 지적한 가운데 관련 주장의 실효성을 두고 여야, 교사와 학생, 학부모 간 논쟁이 벌어지는 모습이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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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초 교사 비극에…‘타깃’ 된 학생인권조례

학생인권조례는 지난 2010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현재 전국 7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 중이다. 학생에 대한 과도한 체벌과 폭언의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조례 제정까지 이어졌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사생활 자유 등의 조항을 명시하고 과거 학교 내에서 관행처럼 이뤄졌던 체벌과 소지품 검사, 두발 단속 등을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최근 여권을 중심으로 학생인권조례를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최근 서울 서초구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 등을 계기로 교권 침해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가운데, 학생인권조례가 교권을 망가뜨린 주 원인으로 지목되면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개정 신호탄을 쏴올렸다. 윤 대통령은 24일 “초·중등교육법 및 시행령 개정이 최근 마무리된 만큼, 일선 현장의 구체적 가이드라인인 교육부 고시를 신속히 마련하라”며 “당,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해 교권을 침해하는 불합리한 자치조례 개정도 병행 추진하라”고 밝혔다.

여당도 호응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5일 원내대책회의에서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한마디로 말해 내세운 명분과는 달리 ‘학생 반항 조장 조례’이자 ‘학부모 갑질·민원 조례’로 변질됐다”고 비판하며 학생인권조례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 시절 국내 최초로 학생인권조례를 만들 때 참고했다는 뉴욕의 학생권리장전에는 학생의 권리와 함께 책임과 의무도 비슷한 비중으로 담겨 있지만, 우리나라 일부 교육감들이 주도한 학생인권조례에는 학생의 권리만 있지 권리에 따른 책임과 의무는 없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는 뉴욕시 학생권리장전을 제대로 벤치마킹한 게 아니라 정신은 버리고 껍데기만 카피했다는 걸 말해준다”며 “학생인권조례는 결국 일부 학생들의 책임 없는 방종을 조장했고 그 결과 교권과 대다수 학생의 학습권이 침해되며 교육 현장의 황폐화로 연결됐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교권 회복은 교육 시스템의 정상화를 위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라며 교권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학생 체벌 부활과 관련해선 조심스러운 입장을 표명했다. 윤 원내대표는 회의가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체벌이 부활할 수도 있느냐’는 취재진에 질의에 “그렇진 않을 것”이라며 “체벌에 대한 국민 정서와 기준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7월24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 A씨의 추모공간에 추모 메시지가 쓰인 메모지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7월24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 A씨의 추모공간에 추모 메시지가 쓰인 메모지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학계 일각 ‘범인’ 아닌 ‘원인’ 찾아야 주장도

다만 교육계 일각에선 교사의 인권과 학생의 인권은 ‘시소 관계’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학생인권 보호대책의 허들을 낮추는 것과 교권을 보호하는 방안은 상관관계가 없다는 주장이다. 실제 여당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확인됐다. 익명을 요구한 국민의힘 한 초선의원은 “교권을 보호할 대책을 강구하지 않고 학생인권조례 개정만 외치는 것은 ‘정치적 구호’에 불과하다”고 우려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교직 단체들도 학생 인권이 교사의 교육활동을 침해하는 주범인 것처럼 단순화하고, 교육활동 보호를 정쟁화하는 움직임을 경계했다. 이들은 24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교원의 정당한 교육활동이 침해되는 요인과 양상은 다양하다”며 “원인을 어느 하나로 과도하게 단순화해서 돌려선 안 된다”고 했다.

조 교육감은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와 관련해 “학생의 책무성 조항을 넣어 학생인권조례를 보완하는 것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대해선 단호하게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박근병 서울교사노조 위원장도 “사건이 학생인권조례 문제로 비화하면서 정치적 공방이나 진영 논리로 흐르는 것은 본질을 흐리는 것”이라고 짚었다.

다만 교육계 내부에서도 ‘대안’을 두고는 이견을 빚는 모습이다. 일례로 정부가 밝힌 ‘교권 침해 행위에 대한 학생 생활기록부 기재’와 관련해 교육계 내에서도 찬반 여론이 팽팽한 상황이다. 관련해 서울교총은 “학생부 기록이 경고 차원에서 어느 정도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고 긍정했다. 반면 조희연 교육감은 “생활기록부에 (교권 침해 활동을) 기재하는 것이 (실제 기재 과정에서) 오히려 많은 교사를 상대로 한 후속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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