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정신건강 관리까지 발벗고 나선 일본 정부 
  • 박대원 일본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7.30 10:05
  • 호수 1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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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전 학부모 시달림에 초등 여교사 자살, 사회적 관심 높아져   
일에 치이고 학부모에 치여 교사 기피 직종 돼 교원 부족 시달려   

‘건어물녀(干物女)’ ‘초식남(草食男)’과 함께 2007년 일본에서 유행한 또 하나의 신조어가 있다. 바로 ‘몬스터 페어런츠(Monster Parents)’다. 몬스터 페어런츠란 교사 및 학교에 불합리한 요구를 하거나 시도 때도 없이 불만을 호소해 교사들을 곤란하게 하는 학부모를 뜻하는 말이다. ‘몬페(モンペ)’라는 줄임말로 불리기도 하는 극성 학부모와 관련된 문제가 일본 사회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6년 6월,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구립 초등학교에 근무하던 1년 차 여교사(23)가 근무 2개월 만에 자택에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해 사망한 것으로 밝혀지면서부터다. 놀랍게도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서이초등학교 여교사 사망 사건과 매우 닮아있다. 

일본 동부 지바현의 한 초등학교 수업 모습 ⓒKy 연합
일본 동부 지바현의 한 초등학교 수업 모습 ⓒKy 연합

진상 학부모 극성 빗댄 ‘몬페’ 신조어 등장

해당 여교사는 2학년 담임선생님을 맡고 있었으며 주말에도 출근해 시간외 근무를 월 130시간이나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학부모로부터 “결혼도 양육도 미경험”이라는 지적을 받거나 교장으로부터 “학부모들이 ‘저 선생님은 믿음이 안 가요’라고 하던데요”와 같은 이야기를 듣고 나서 우울증 진단까지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교사의 자살이 ‘공무상 재해’에 해당하는지와 관련해 학교 측과 유가족의 법정 공방이 이어지면서 ‘몬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다.

초임 교사 자살 사태의 충격으로 2010년 도쿄도 교육위원회는 학부모(보호자)의 클레임 대응을 매뉴얼화한 ‘학교문제 해결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작성해 공립학교에 배부했다. 그러나 해당 내용은 ‘몬페 대책’과는 다소 거리가 먼 일반 상식이나 학부모 응대 예절에 가까운 내용으로, 학교 및 교사가 학부모 및 지역사회와 상호 협력해 나갈 수 있도록 교사들이 의식을 개혁하고 학부모들의 요구를 우선 잘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이드라인 발표 이후 “의식개혁이 필요한 측면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교사의 바쁜 업무를 해소하는 방책도 필요하다.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그만큼 여유와 체력도 필요하다”는 지적과 함께 “대학을 졸업하고 갓 사회에 나온 교원이 담임을 맡는 제도 자체를 수정해야 한다”는 논의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2011년에는 문부과학성이 ‘교직원의 정신건강 대책 검토회의’를 설치하고 2013년 3월, 최종보고서를 발표했다. 해당 보고서는 교원이 강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 요인으로 보호자(학부모) 응대, 학생 지도, 과도한 업무량 등을 제시하고, 스트레스 경감을 위해 교원 간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업무 분산 및 효율화를 통한 잔업시간 단축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학교문제 해결을 위한 가이드라인’과 ‘교직원 정신건강 대책 최종보고서’ 발표로부터 10년도 더 지난 올해 3월에도 학부모의 요구로 인해 중견 교사가 반강제로 퇴직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도쿄 세타가야에 위치한 세이조학원 초등학교에 근무 중이던 중견 교사 A씨는 지난해 4월 하교 준비를 하지 않고 떠들고 있는 학생 B군에게 주의를 준 후 잠시 교무실에 다녀왔다. 교실로 돌아온 A씨는 B군이 계속 하교 준비를 하지 않고 다른 학생들의 하교 준비까지 방해하자 B군의 두 다리를 잡아당겨 교실 밖으로 끌어낸 후 하교 준비가 되면 교실로 돌아오도록 지시했다. 이 과정에서 B군의 손목에 상처가 생겼고 보건실에서 반창고를 붙이는 간단한 치료를 받게 되었다. 

사건 당시 A씨는 B군의 상처를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으나 2주 후 보건교사로부터 B군의 상처에 대해 듣게 된 A씨는 B군과 부모 C씨(의사)에게 사과했다. 이후로도 A교사와 B군의 관계는 원만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사건 후 두 달이 지나 B군의 결석이 잦아졌고 부모 C씨는 돌연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서를 들고 와 “아들이 A교사의 체벌에 의해 PTSD를 겪고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이조학원 초등학교 교장 및 재단 이사장을 찾아가 A씨의 체벌을 이유로 담임선생님을 교체하도록 끈질기게 요구했다. 

학교 차원에서 사실관계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고 A씨는 2023년 3월말 결국 교직을 내려놓게 되었다. A씨의 퇴직 직전, 해당 소식을 듣게 된 다른 학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치며 100명이 넘는 학부모가 퇴직 철회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퇴직 철회를 요청한 학부모들은 “A교사는 아이들의 ‘은사’다. 이런 취급을 받는 것에 대해 가만히 있을 수 없다” “(A교사의) 퇴직으로 아이들이 패닉에 빠져 울고 있다” “아이를 교실 밖으로 끌어낸 행동이 지나친 행위였을지는 모르지만, 정말 ‘체벌’에 해당했는지 모르겠다. 아이 측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라며 진상조사도 없이 학부모 한 사람의 요구만으로 교사가 퇴직하게 된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정신질환으로 인한 휴직 증가 추세 뚜렷 

일본에서는 “근무시간이 길고 휴일 출근도 빈번하다” “급여가 적다” 등의 이유로 교원 부족이 만성화되고 있다. 도쿄도 교육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4월7일 기준, 도쿄도 내 공립 초등학교 1269곳에서 80명 넘는 교사 결원이 발생했다. 교사가 점점 기피 직종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몬스터 페어런츠 관련 사건의 반복은 현직 교사들의 사기 저하 및 신규 교사 채용 곤란으로 이어진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문부과학성은 올해부터 ‘공립학교 교원의 정신건강 대책에 관한 조사연구사업’을 실시하기로 했다. 

정신질환으로 인해 휴직을 신청한 교사 수가 1990년도에 1017명이었던 데 비해 2021년도 기준 5897명에 이르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자, 현직 교사의 휴직 증가 추세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해서라도 교사의 정신건강 관리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문부과학성은 각 지방의 교육위원회와 연계해 교사가 정신질환을 겪게 된 원인을 조사·분석하고 지자체와 함께 교사에 대한 상담 지원 및 연수 등을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민간 차원의 대응도 등장하고 있다. 7월8일 도쿄의 한 호텔에서는 현직 교사를 대상으로 스트레스 관리 세미나가 열렸다. 우는 행위가 웃는 행위나 수면보다도 스트레스 해소에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의식적으로 눈물을 흘림으로써 마음을 정돈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루이카쓰’(涙活·우는 활동)가 소개되었다. 대증요법 차원에서 울음으로 응어리를 풀어야 하는 일본 교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해당 세미나에 참석한 정신질환으로 인한 휴직 경험이 있는 한 교사는 “교사의 일하는 방식에 개혁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정작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있다”며 “혼자서 다 끌어안고 가려는 교사들을 서포트하는 존재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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