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미분양에 부실 공사까지…뿌리째 흔들리는 ‘K건설’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3.08.01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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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살자이’ ‘흐르지오’…건설업 ‘신뢰도 추락’ 직면
중소건설사는 미분양에 자금난으로 ‘줄 폐업’ 위기

GS건설의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태 후폭풍이 한국 건설 산업 전반을 휘감은 분위기다. GS건설 사태를 기점으로, 당국은 공기업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발주 아파트뿐만 아니라 전국 민간아파트로 부실 공사 점검 범위를 넓히기로 했다. 도마에 오른 ‘철근 누락’ 문제는 특정 건설사의 문제라기보다는 시스템상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점검 결과 더 많은 ‘부실 공사 단지’가 쏟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부실 공사 문제는 가뜩이나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악성 미분양 문제로 부도 위기에 처한 한국 건설업계에 더 큰 부담을 안길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에선 분양 활기가 되살아나고 있지만, 지방에선 악성 미분양으로 통하는 ‘준공 후 미분양’이 계속 늘고 있다. 여기에 새마을금고 사태를 계기로 수면 위로 떠오른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대출 문제도 건설사의 신용등급을 줄줄이 하락시키고 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발주 아파트 15곳에서 무량판 구조 지하주차장에 철근을 누락하는 부실 공사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1일 오전 경기도 오산시 세교2 A6블록 아파트 주차장에 보강 공사를 위한 잭 서포트가 설치된 모습 ⓒ 연합뉴스
LH(한국토지주택공사) 발주 아파트 15곳에서 무량판 구조 지하주차장에 철근을 누락하는 부실 공사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1일 오전 경기도 오산시 세교2 A6블록 아파트 주차장에 보강 공사를 위한 잭 서포트가 설치된 모습 ⓒ 연합뉴스

‘순살 아파트’ 불똥 튈라…K-건설은 지금 ‘전전긍긍’

1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당국은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아파트 단지 전체에 대한 부실 공사 현황을 조사한다. LH 발주 아파트 91곳 중 15개 단지에서 있어야 할 철근을 빠뜨린 정황이 포착되면서다. 이미 지난 4월 같은 ‘무량판’ 공법으로 시공된 인천 검단신도시 자이안단테에서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가 일어난 터라, 당국은 철근 누락 문제가 또 다른 붕괴 참사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무량판 구조는 말 그대로 ‘무량(無梁)’, 대들보가 없다는 뜻으로, 수평 기둥을 뜻하는 보 없이도 기둥만으로 상판을 지탱하게 만든 건축 구조다. 다른 공법보다 신속한 시공이 가능하고 공사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최근 들어 아파트 지하주차장을 중심으로 많이 쓰여 왔지만, 기둥에 하중이 전부 집중되기 때문에 충격에 취약하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당국은 이번 ‘부실 공사’ 논란이 무량판 공법의 문제라거나 일부 건설사만의 도덕적 해이라기보다는 ‘시스템의 문제’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이한준 LH 사장은 “단순히 시공사나 설계사, 감리사의 문제로만 보고 있지 않다”며 “어느 한 곳의 문제가 아니라 건설업계 전체의 구조상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무량판 구조에 대한 이해도 부족과 설계 미흡 등이 연계된 총체적, 구조적 오류라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부실 공사 문제는 향후 더 수면 위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당국이 전수 조사를 예고한 민간 아파트 단지는 293곳이다.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 “건설업 이권 카르텔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지시한 상태다. 업계에선 이른바 ‘순살 아파트’ 논란의 불똥이 튈까 우려하며 당국의 전수 조사 진행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5월 부실시공으로 붕괴된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지하 주차장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 5월 부실시공으로 붕괴된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지하 주차장의 모습 ⓒ연합뉴스

이미 시작된 건설업 ‘줄폐업’…자금줄 더 빠르게 말라간다

문제는 부실 공사로 기업 이미지가 실추되고, 보강 공사 결정으로 수익성이 악화하는 등 후폭풍이 줄줄이 예고됐다는 점이다. 앞서 붕괴 사고를 겪은 GS건설은 5500억원대 전면 재시공을 약속했다가 수천억원 상당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장기적으로 볼 때는 ‘정도 경영’이 도움이 된다는 긍정적 평가도 나오지만, 일단 단기 수익성 악화는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GS건설뿐만 아니라 대우건설도 일부 단지 침수 피해로 ‘흐르지오’라는 오명을 썼고, 롯데건설도 철근이 외부로 노출돼 ‘통뼈캐슬’이란 꼬리표를 달았다.

이번 사태로 건설업계 전반에 대한 불신이 늘어날 경우 분양 시장이 더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지방 중소 건설사는 이미 ‘악성 미분양’ 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상태라, 이들 업체의 경영난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 국토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은 9399가구로 전월 대비 5.7% 증가했다. 준공 후 미분양은 공사가 끝난 뒤에도 분양되지 못해 자금 회수를 어렵게 한다. ‘악성 미분양’ 문제는 건설사에 자금 경색을 불러오는 주범으로 통한다.

이미 중소형 건설사를 중심으로 줄줄이 ‘부도’ 소식이 들려오는 상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에만 248곳의 종합건설사가 폐업했다. 12년 동안 최고치다. 지난해 한 해 동안 폐업한 건수가 362건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건설사들의 부도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는 셈이다.

중견 건설사의 사정도 예외는 아니다. 아파트 브랜드 ‘줌(ZOOM)’을 보유한 대창기업은 지난 4월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범현대가인 에이치앤아이앤씨도 3월부터 회생 절차를 밟고 있다. 각각 도급순위(시공능력평가) 109위, 133위인 중견사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부동산 침체기로 미분양이 급증한 데다, 돈줄 역할을 하던 부동산 PF 시장이 얼어붙고 고금리 상황까지 지속되자, 자금난을 견디지 못한 결과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반기 건설업의 사정은 더욱 나빠질 것이란 게 중론이다. 시멘트값 인상이 예상돼 원자재 비용 상승이 불가피한 데다, 신용도까지 줄줄이 낮아져 이자 부담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 신용평가사 3사는 하반기 건설업 등급전망을 ‘부정적’으로 제시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측은 “급격한 금리 인상과 지난해 채권시장 신용경색 문제로 건설업의 자금조달 여건이 어려워졌다”며 “부동산경기 하락으로 미분양이 빠르게 증가해 수익성 악화가 우려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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