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 온 《바비》, 한·중·일 반응은…‘페미 영화’ ‘원폭 희화화’ 논란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3.08.02 14:3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북미서 기록 쓴 영화 《바비》, 아시아에선 무슨 일이?
韓서 성적 부진…日에선 ‘보이콧’ 움직임도

북미에서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을 제치고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영화 《바비》. 개봉 첫 주 사흘간 2000억원의 수익을 내는 등 올해 북미 전체 개봉작 중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쓴 이후 승승장구하고 있다. 《바비》는 인형들의 세계인 바비랜드를 떠난 바비가 인간 세상으로 나와 겪는 일을 그린 작품으로, 곳곳에 만연한 성차별을 목격하고 풍자하는 내용을 담았다.

《바비》는 이번 주 글로벌 흥행 수익 1조2000억원 돌파를 앞뒀다.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며 흥행하고 있지만, 아시아에서 반응은 제각각이다. 한국에서의 성적은 초라하다. 중국에서는 여성들을 중심으로 흥행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개봉 전부터 영화 홍보로 인한 ‘원자폭탄 희화화’ 논란이 빚어지며 ‘보이콧’ 움직임이 일었다. 아시아에 온 《바비》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영화 《바비》 스틸 컷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 《바비》 스틸 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성 평등 이슈 던지며 中서 흥행

한국에서 《바비》는 지난달 19일 개봉한 이후 43만 명(2일 기준)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박스오피스에서도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 흑철의 어영》에 밀려 5위다. 주연배우인 마고 로비와 그레타 거윅 감독이 한국에 방문해 영화를 홍보하는 등 공을 들였지만, 예상 이하의 성적으로 고전하고 있다. 미국식 유머가 통하지 않는 한국에서는 영화의 페미니즘 메시지가 강하게 남으면서 ‘페미 영화’로 여겨지고 있다는 평이다.

영화의 흥행 부진에는 남성 관객들의 거부감도 작용했다. 바비의 남자친구 켄이 가부장제에 취해 돌변하는 모습 등 남성을 희화화한 장면이나 성차별에 대해 설교하는 방식을 취하는 영화 후반부에 거부감이 들었다는 반응도 나온다. 2일 기준 네이버 영화 평점에 따르면, 남성은 평균 6점, 여성은 9.28점을 주는 등 남녀 관객 반응도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 젠더 이슈로 인한 피로감과 갈등 요소가 영화 선택을 보류하게 만드는 분위기다.

중국에서는 여성들을 중심으로 흥행하고 있다. 중국 온라인 티켓 판매 플랫폼 마오옌에 따르면, 《바비》는 중국에서 1억8300만 위안(약 325억8000만원)의 수익을 거뒀다. 올해 2월 중국에서 개봉한 마블 영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1억600만 위안)를 뛰어넘은 성적이다. 상영 횟수도 개봉 첫날인 지난달 21일 9600회에서 31일 2만6000회로 크게 늘었다.

일부 중국 페미니스트들은 《바비》가 흥행하는 이유에 대해 그동안 중국에서는 드물었던 여성 인권과 젠더 문제에 대한 공개 토론의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중국 미투(Me too) 운동의 선구자로 불리는 저우샤오쉬안 방송 작가는 지난달 3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모든 소녀가 친구와 함께 극장에 가서 《바비》에 대해 논할 수 있다. 《바비》는 온전히 페미니즘에 관한 영화가 아니지만 중국에서는 매우 의미가 있다. 모든 극장이 페미니즘을 위한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언급했다.

지난해 10월 중국 공산당은 중국의 대내외정책을 결정·집행하는 중앙정치국원 24명을 전원 남성으로 구성한 바 있다. 정치국원이 모두 남성으로만 구성된 것은 25년 만이다. 미국 CNN 방송은 여성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가상 세계를 묘사한 《바비》가 중국에서의 성 평등과 여성 대표성 증진에 대한 갈증을 충족시켜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21일 영화 《바비》 공식 계정이 바비와 오펜하이머를 합성한 ‘바벤하이머’ 이미지에 남긴 댓글 ⓒ트위터 캡처
지난달 21일 영화 《바비》 공식 계정이 ‘바벤하이머’ 이미지에 남긴 댓글 ⓒ트위터 캡처

‘바벤하이머’ 밈 홍보에 日 네티즌 반발

《바비》의 일본 개봉일은 오는 11일이다. 개봉 전부터 보이콧 움직임이 일고 있다. 논란은 영화 《바비》의 공식 홍보 계정이 트위터 게시물에 작성한 댓글에서 시작됐다. 해당 게시물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대작인 《오펜하이머》 포스터와 《바비》를 합성한 ‘바벤하이머’ 이미지다. 두 영화는 모두 미국에서 지난달 21일 개봉했는데, 상반된 이미지의 두 영화 포스터를 합성한 2차 창작물이 만들어지면서 네티즌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밈’이 됐다.

이 이미지에서 《바비》의 주인공을 맡은 마고 로비는 《오펜하이머》의 주인공인 킬리언 머피 어깨 위에서 활짝 웃고 있다. 배경에는 원폭 폭발 장면을 연상시키는 불꽃이 타오른다. 《바비》 측은 이 사진 아래 “잊을 수 없는 여름이 될 것”이라는 내용의 코멘트를 달았다. 이외에도 핫핑크 색상의 버섯구름과 ‘난 살아남았다’라는 문구가 들어간 티셔츠 사진에 “우리는 뚫고 지나가지”라는 댓글을 남겼다. 이 같은 행동이 원폭 피해자들을 무시하고, 원폭 투하를 희화화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일본 네티즌들 사이에서 제기됐다.

《오펜하이머》는 원폭 개발에 참여한 미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전기물이다. 1945년 원폭 투하로 인해 막대한 희생을 겪은 일본에서는 민감한 반응이 나올 수 밖에 없기에, 배급사 측에서도 아직 일본 개봉 날짜를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바비》 측이 ‘바벤하이머’ 이미지를 통해 영화를 홍보한 것은 일본 대중의 심리를 고려하지 못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논란이 거세지자 일본 배급사인 워너브러더스 재팬은 지난달 31일 공식 계정을 통해 “‘바벤하이머’는 두 작품 모두 보기를 권장하는 해외 팬들의 일련의 활동이며 공식적인 것이 아니다”며 “영화 《바비》 미국 공식 계정이 SNS 게시물에 보인 반응은 배려가 부족했다. 이 사태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미국 본사에 적절한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고 사과했다.

《바비》의 진입을 막은 아시아 국가도 있다. 베트남은 영화 내 남중국해 지도에 구단선이 표시됐다는 이유로 《바비》의 상영을 금지했다. 중국은 남중국해에 9개의 끊어진 선(구단선)을 긋고 이 안의 90% 영역이 자국 영해라고 주장하면서 베트남, 필리핀 등 국가와 마찰을 빚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극장 상영을 중단했다가 구단선 논란이 일었던 지도가 나오는 장면을 흐릿하게 처리하는 선에서 상영을 허가한 바 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