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순살 아파트’ 15곳 설계·감리, 31개 ‘LH 전관 회사’가 싹쓸이…“이권·부패 카르텔”
  • 조해수·김현지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23.08.04 10:05
  • 호수 1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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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건축사사무소의 ‘OB(전관)영입 현황’ 단독 입수
47개 설계·감리 회사, 93명의 LH 전관 영입…“수주액 1조원이면 500억원은 로비”

시사저널이 단독 입수한 주요 건축사사무소의 ‘OB(전관)영입 현황’ 명단에 따르면, 붕괴 사고가 발생한 인천 검단신도시를 포함해 철근이 누락된 이른바 ‘순살 아파트’ 15개 단지의 설계·감리 용역을 31개(중복 포함)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관 회사들이 ‘싹쓸이’한 것으로 드러났다(표 <LH 전관 회사 ‘순살 아파트’ 참여 현황> 참조).

중견 건축사사무소 대표인 내부고발자 A씨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LH 전관을 중심으로 형성된 ‘카르텔’을 통해 경쟁입찰에서도 전관 회사들이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수주를 받고 있다”면서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설계·시공 능력보다 ‘인맥’과 ‘로비’가 우선시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순살 아파트’라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진 것”이라고 말했다(8월4일자 <“LH 전관 카르텔, 수주액 1조원이면 500억원은 로비”>기사 참조).

ⓒ일러스트 신춘성

이와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은 8월1일 제31회 국무회의에서 “(검단신도시 붕괴 사고를 유발한) 무량판 공법 지하주차장은 모두 우리 정부 출범 전에 설계 오류, 부실 시공, 부실 감리가 이뤄졌다. 이러한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건설 산업의 이권 카르텔이 지적되고 있다”면서 “이권 카르텔, 부패 카르텔을 혁파하지 않고는 어떠한 혁신도 개혁도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전임 문재인 정부의 ‘책임론’을 제기하며 국정조사를 추진하기로 했다. LH는 반(反)카르텔 공정건설추진본부를 설치하고, ‘순살 아파트’와 관련한 설계·감리 회사를 수사 의뢰할 방침이다. 

시사저널이 단독 입수한 주요 건축사사무소의 ‘OB(전관)영입 현황’ 명단 ⓒ시사저널 포토

전관 회사가 1조원대 LH 용역 싹쓸이

시사저널이 입수한 A4용지 6장 분량의 ‘OB영입 현황’ 명단에는, 71개 건축사사무소의 업체명-소재 지역-대표 이름-업체 전화번호-LH OB-기타(국토부, 서울시, 군 출신 등) OB 등이 기재돼 있다. 이 중 47개 업체가 93명의 LH 전관을 영입했다. LH 전관의 경우, 출신 대학교-LH 최종 직책-LH 퇴직 연도까지 자세히 적혀 있다(위 사진 참조).

A씨는 “이 명단은 주요 건축사사무소들이 LH 전관을 통해 추악한 ‘카르텔’을 형성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이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었다. 이 명단에 회사 이름을 올리지 못하면, LH 사업을 수주하는 것은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라고 주장했다. 시사저널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공동으로 LH의 2015~20년 발주 용역을 분석한 결과, 이들 전관 회사는 1조434억원에 이르는 LH 용역을 싹쓸이한 것으로 드러났다(2021년 3월26일자 <[단독] LH 퇴직자 영입 ‘전관 회사’, 1조원대 LH 용역 ‘싹쓸이’> 기사 참조).

문제는 LH 전관을 통한 로비가 횡행하면서, 안전성 등 품질을 높일 수 있는 실제 공사비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설계사 고위 임원인 또 다른 내부고발자 B씨는 “로비 금액은 사업예산을 짤 때부터 산정한다. 전체 수주액에서 5% 정도다. 수주액이 1조원이라면 500억원을 로비에 쓰는 것이다. 전관들이 LH 로비를 전담한다”면서 “로비를 통해 LH 용역을 따내면, 비용 절감을 위해 더 작은 건축사사무소에 하청을 줘버린다. 이것도 영세 건축사사무소끼리 경쟁을 시켜 ‘최저’ 비용으로 선정한다. 감리 업체도 LH 전관 카르텔에 속해 있다 보니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질 리 없다”고 지적했다.

“LH 전관, 현직과 골프 치고 접대 하는 일이 주업무”

붕괴 사고가 발생한 인천 검단신도시의 경우 ‘ㅇ’건축사사무소가 설계를 맡았다. ‘OB영입 현황’ 명단에 따르면, ‘ㅇ’건축사사무소는 LH 부장 출신을 영입했다. 명단에는 ‘ㅇ’건축사사무소가 영입한 서울주택공사(SH)·조달청·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국토교통부 전관들도 기재돼 있다. 이들 때문인지 ‘ㅇ’건축사사무소는 인천검단 AA13-2BL 공동주택 설계 용역을 ‘수의계약’ 방식으로 50억5000만원에 수주했다. 이 밖에도 ‘ㅇ’건축사사무소는 2015~20년에 12건-386억원의 LH 용역을 따냈다.

인천 검단신도시 감리 용역은 LH 전관 회사인 ‘ㅁ’건축사사무소가 수주했다. ‘OB영입 현황’ 명단을 보면 LH 단장·처장을 비롯해 모두 3명의 LH 출신이 ‘ㅁ’건축사사무소에 들어갔다. ‘ㅁ’건축사사무소는 인천검단 AA13-1BL/AA13-2BL 아파트 건설공사 시공단계(감리) 용역을 ‘종합심사낙찰제(종심제)’ 방식으로 123억원에 따냈다. 종심제는 당초 기술 경쟁을 유발하기 위해 도입됐으나, 실제로는 ‘전관 로비 창구’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토부가 7월31일 공개한 ‘순살 아파트’ 15개 단지 중 14곳의 설계·감리에 LH 전관 회사가 참여했다. 파주운정 A34의 경우, 설계와 감리 용역 모두 LH 전관 회사의 차지였다. 설계를 맡은 ‘S’그룹은 LH 주택이사를 영입한 것으로 명단에 기재돼 있다. 감리 용역을 따낸 ‘H’건축사사무소는 LH 이사·처장·팀장 등 모두 3명을 영입했다.

충남도청 이전 도시 RH11의 설계와 감리에는 LH 전관 업체 3곳이 들어왔다. ‘ㅂ’건축사사무소는 LH 주택기술처장을, ‘ㄱ’건축사사무소는 LH 부장·차장·과장 등 4명을 스카우트했다.

수원당수 A3의 설계는 또 다른 전관 회사인 ‘ㅇ’건축사사무소가 맡았는데, LH 처장 출신을 사장으로 임명했다.

오산세교2 A6의 경우, 설계와 감리 용역 모두 전관 회사가 수주했다. 그중 설계를 맡은 ‘K’건축사사무소는 LH 부사장·처장·단장 등 모두 3명을 영입했다.

나머지 ‘순살 아파트’의 설계·감리 회사들도 1~4명의 LH 전관을 영입했다. LH 측은 “엄격한 심사를 거치기 때문에 전관 특혜로 수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LH 전관들이 재취업한 회사가 대부분 대형 업체들이고, 이 업체들의 실적이 원래 좋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연합뉴스
5월2일 인천 검단신도시 지하주차장 붕괴 현장에서 사고조사관이 사고 원인을 찾고 있다. ⓒ연합뉴스

“로비 비용 충당 위해 하청 통한 이윤 짜내기”

그러나 업계의 시각은 달랐다. 다음은 내부고발자 A씨의 말이다.

“주요 건축사사무소들은 LH 전관을 영입해 회장, 부회장, 사장 등의 직책을 준다. LH 고위직 출신의 연봉은 보통 1억5000만원이다. 하지만 차량, 사무실, 법인카드 등을 제공하기 때문에 연평균 3억원 정도라고 보면 된다. 비싼 돈을 주고 이들에게 무슨 일을 시키겠나. 이들의 주요 업무는 한마디로 LH 현직들과 골프 치고 접대하는 거다. 그러면서 내부 정보도 빼내고… 이들의 지상목표는 결국 LH 용역을 수주하는 것이다. LH 출신 건축사사무소 대표는 도면 한 장 안 그리고 오로지 로비만 한다고 보면 된다.”

전관 인맥으로 수주가 이뤄지다 보니, LH 현직들은 말 그대로 ‘꽃길’을 보장받은 셈이다.

“LH에서 고직위까지 올라가거나 좋은 경력을 쌓으면 돈방석에 앉은 것과 다름없다. 팀장급 경력이면 월 1200만원 이상의 대우를 받을 수 있다.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단지 LH 출신이기 때문에 프리미엄이 붙는 것이다. 중소형 프로젝트일 경우, LH 출신이 개설한 건축사사무소가 다 가져간다고 보면 된다. 2020년 LH 출신이 만든 D건축사사무소가 LH 용역으로만 30억원을 벌었다. D사의 직원은 고작 6~7명에 불과한데, 1인당 매출액으로 따지면 4억원 이상이다. 이는 일반 건축사사무소보다 2배 정도 높은 것이다.”

 

LH 주택구조견적단, '순살 아파트' 부실 못 잡아내

로비의 폐해는 ‘순살 아파트’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순살 아파트’ 책임의 90%는 설계에 있다. 설계사를 중심으로 로비의 폐해를 살펴보면, 회사는 어떻게든 로비 비용을 충당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하청을 통한 ‘짜내기’를 한다. 즉, 1)설계사가 로비를 통해 LH 용역을 수주한다 2)비용 절감을 위해 ‘구조 설계’를 최저 비용으로 하청에 맡긴다 3)하청업체의 구조 설계 전문가가 형식적으로 도장을 찍어 도면을 통과시킨다 4)원청인 설계사도 이를 점검하지 않는다…대략 이런 식이다. 사실 IMF(1997년) 이전엔 설계사 내에서도 구조 설계를 했는데, 비용 절감을 위해 설계사에서 구조 설계가 빠져나갔다. 설계사가 구조 설계까지 맡으면 비용이 두 배 이상 들어가기 때문이다.”

LH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LH가 발주할 때 설계비를 시장가보다 적게 매긴다. 30% 정도 적게 주는 걸로 알고 있다. LH의 부채가 급속히 늘어나자 사업비를 쥐어짜면서 이 사달이 났다. 무량판 공법도 잘 안 썼는데, LH에서 원가 절감을 위해 쓰기 시작한 것 같다. 무량판 공법은 특히 설계·감리가 제대로 돼야 한다. LH 내에 구조 설계를 검수하는 ‘주택구조견적단’이라는 부서가 있다. 그러나 이 부서 역시 ‘순살 아파트’의 부실 설계를 잡아내지 못한 거다.”

‘순살 아파트’는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를 사전에 방지하고, 적발됐을 경우 긴급히 보강 공사를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순살 아파트’와 같은 문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적용해야 한다. 보강 공사를 한다면 설계 업체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데,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는 식으로 일단 LH가 돈을 낼 수밖에 없다. 보강 공사는 돈이 5배로 든다. 이후 LH가 해당 업체에 구상권을 청구할 텐데, 그 업체들이 과연 돈을 낼까? 아니라고 본다. 미국과 유럽연합, 영국 등에는 ‘보험증권’이라는 게 있다. 설계사가 보험을 들어놓도록 규정한 건데, 문제가 터지면 보험으로 처리가 가능하다. 대신 문제를 일으킨 업체는 더 많은 보험료를 내야 한다. 잘못이 드러난 경우 설계사에게 책임을 묻기 위한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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