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경찰, 배상윤 KH그룹 회장 횡령 등 혐의 추가 수사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3.08.07 07:35
  • 호수 1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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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신테크 의결권 측근에 위임하고 ‘대리경영’ 의혹…‘유럽 거주설’ 배 회장 신병 확보가 수사 핵심

경찰이 올해 초부터 배상윤 KH그룹 회장에 대한 추가 수사를 진행 중인 사실이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확인됐다. 가장납입을 통해 KH그룹 계열사들이 확보한 한 기업의 전환사채(CB)를 그 회사 자금 횡령과 경영권 확보 등에 활용했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다. 그러나 수사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배 회장이 불법 대북 송금 사건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변호사비 대납 사건, 알펜시아 리조트 입찰 방해 사건 등과 관련한 검찰 수사를 피해 해외도피 행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에 위치한 KH그룹과 계열사 ⓒ시사저널 박정훈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에 위치한 KH그룹과 계열사 ⓒ시사저널 박정훈

가장납입으로 100억원 규모 CB 확보

사건의 중심에는 화신테크(옛 이노와이즈)가 있다. 한때 대구 지역을 대표하던 중견 자동차부품 업체로, 2006년 업계 최초로 코스닥 시장에 상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화신테크에 암운이 드리운 건 2018년 말 남아무개씨에게 경영권이 넘어가면서다. 남씨는 2000년대부터 자본시장에서 기업사냥꾼으로 암약해온 인물로 알려졌다. 그 역시 배 회장과 마찬가지로 검찰 수사를 피해 해외도피 행각을 벌이고 있다. 그는 2006년에도 시세조종 등의 혐의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홍콩으로 도주했다가 국내로 송환된 전력이 있다.

그동안 남씨가 손댄 기업들은 모두 공중분해됐다. 화신테크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남씨의 지배 아래 들어간 후 자금 유출이 계속되며 사세가 크게 기울었고, 2021년 6월 결국 상장폐지가 결정됐다. 배 회장은 화신테크가 몰락하는 과정에 주도적으로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시간은 2020년 2월1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화신테크는 이사회를 열어 100억원 규모의 CB 발행을 결의했다. ‘운영자금과 타 법인 증권 취득자금 조달’이라는 명목이었다. 이사회 당일 글로벌테크1호조합은 CB 인수 대금 100억원을 납입했다. 글로벌테크1호조합은 남씨가 실소유주로 알려진 투자조합이다. 그러나 화신테크에 납입된 CB 인수 대금은 입금 다음 날인 2월14일부터 6일에 걸쳐 글로벌파마인베스트먼트조합 등에 대여금 명목으로 송금됐다. 글로벌파마인베스트먼트조합 역시 남씨의 소유로 알려졌다. 남씨에게서 나온 CB 인수 대금이 다시 그에게 돌아간 셈이다.

그 결과 화산테크는 실제 납입금 없이 CB만 발행하게 됐다. 그러나 정작 화신테크가 발행한 100억원 규모의 CB는 글로벌테크1호조합이 아닌 비에스피리츠(50억원)와 와이케이파트너스(50억원)의 몫으로 돌아가게 됐다. 이들 기업은 배 회장이 최대주주인 KH필룩스의 100% 자회사다.

이는 남씨와 배 회장의 인연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배 회장은 2000년대 강남 일대에서 사우나 등의 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자금으로 기업사냥꾼들의 전주(錢主) 역할을 했고 2010년대부터는 직접 기업사냥에 나섰다. 그가 전자·건설·엔터테인먼트·호텔·리조트 등 40여 계열사를 거느린 KH그룹을 일궈낼 수 있었던 배경이다. 이 과정에서 배 회장은 남씨와 경제공동체로 상호의존적 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KH그룹 계열사로 건네진 CB 일부는 곧바로 현금화됐다. 와이케이파트너스는 2020년 3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화신테크에 CB 채권 상환을 청구해 45억원을 지급받았다. 나머지 CB는 같은 해 7월 주식으로 전환, 화신테크 경영권을 확보하는 데 활용됐다. 그 결과 KH그룹 계열사들은 화신테크 최대주주에 올랐다. 지난해 말 기준 비에스피리츠(19.68%)와 와이케이파트너스(1.97%)는 화신테크 지분 21.65%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 회사는 화신테크 경영권을 확보한 후 전아무개씨에게 의결권을 위임해 그를 대리인으로 내세웠고, 전씨는 자신의 측근인 조아무개씨를 대표이사에 앉혔다. 이로써 전씨는 지분이 전무함에도 사실상 화신테크를 지배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화신테크 자금은 계속 빠져나갔다. 이렇게 유출된 자금은 또 다른 기업 경영권 확보 등에 활용됐다. 그 결과, 배 회장이 경영권을 확보하기 전에 약 100억원 규모이던 화신테크의 현금 보유량은 지난해 9월말 기준으로 바닥을 드러냈다.

ⓒKH그룹
배상윤 KH그룹 회장은 2022년 6월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해외로 출국한 후 도피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KH그룹

하와이·필리핀·베트남 등 전전하며 호화 도피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가장 큰 피해를 본 건 화신테크 소액주주들이다. 소액주주들은 상장폐지 직후부터 연합을 결정해 화신테크 경영진의 비리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들은 회사 정상화와 외부로 유출된 자금 회수를 요구하며 경영진을 상대로 고소·고발을 이어오고 있다. 소액주주들은 최근 화신테크 자산 매각을 막기 위해 경영진과 각을 세우고 있다. 앞서 화신테크 경영진은 지난 3월 주주총회에 본사 부동산과 금형기구 일체를 매각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소액주주연합은 경영진이 화신테크의 마지막 남은 자산인 부동산과 설비 등을 현금화해 이를 외부로 유출한 후 폐업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지만 배 회장에 대한 수사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의 신병 확보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배 회장은 검찰 수사가 본격화한 지난해 6월 리조트 인수 등 사업상 이유로 출국한 후 미국 하와이와 필리핀, 싱가포르, 베트남 등을 전전하며 도피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검찰은 지난 4월 배 회장에 대한 인터폴 적색수배를 내렸고, 최근에는 도피생활을 도운 수행원들을 상대로 조사를 벌였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거두지 못한 상황이다. 무자본 M&A 업계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배 회장은 현재 수배 중인 다른 기업사냥꾼들과 함께 유럽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배 회장의 신병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화신테크 관련 수사는 진전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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