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 능력 상실한 LH, 대통령 직속 '전관특혜 근절 특위' 만들어야”
  • 신영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책사업감시단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8.04 10:05
  • 호수 1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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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전반에 만연한 전관특혜, 끊임없는 ‘견제와 감시’만이 답

업체들은 왜 전관을 영입하는가? ‘전관예우’라 쓰고 ‘전관특혜’라고 읽힌다. 반칙과 특혜를 의미하는 사실상 고유명사다.

2021년 3월29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시사저널과 공동으로 2015년부터 2020년까지의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 설계 용역 수의계약 536건과 건설사업관리 용역(이하 감리 용역) 290건에 대한 수주 현황을 분석·발표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LH 발주 설계 용역 수의계약 중 건수 55.4%, 계약금액 69.4%를 LH 전관 영입 업체가 수주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리 용역은 형식상 경쟁입찰로 이뤄졌지만 LH 전관을 영입한 업체가 건수 39.7%를, 계약금액 48.0%를 가져갔다. 수의계약은 건수와 금액이 모두 절반을 넘었고, 경쟁입찰에서도 절반에 가까운 계약금액을 소수의 전관 영입 업체가 수주한 것이 기막힌 우연의 결과일까?

분석 발표 이후 경실련에 당장 제보가 들어왔다. LH가 2020년부터 2021년 3월까지 계약체결한 감리 용역 92건에 대한 입·낙찰 결과뿐만 아니라 평가위원 및 평가점수 등을 빼곡히 정리한 자료였다. 이를 토대로 경실련이 2021년 4월20일 발표한 분석 결과는 먼저 입찰 담합 징후였다. 경쟁입찰임에도 단 2개 업체만 입찰에 참여한 사업은 72%에 달했고, 낙찰자 선정방식이 종합심사낙찰제로 진행된 85건 사업의 77%에서도 입찰 참여 업체가 단 2개뿐이었다. 2인 이상의 유효한 경쟁입찰을 성립시키기 위해 들러리를 동원한 입찰 담합이 의심됐다. 더 큰 문제는 LH 내부위원이 1위로 평가한 입찰 업체가 낙찰 업체로 결정된 사업이 90%에 달했다는 점이다. 이쯤 되니 LH 퇴직자에 의한 전관특혜를 확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구성원들이 7월31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검단 붕괴 사고 관련 한국토지 주택공사(LH) 전관특혜 실태 감사청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사고로 이어지는 건설업 ‘전관 챙기기’

2021년 6월 광주시 동구 학동 재개발 참사, 2022년 1월 같은 광주시 서구 화정동 현대아이파크 붕괴 사고가 발생했다. 건설 업계 상위 10위권 업체 사업장에서의 어처구니없는 안전사고였다. 시민들의 불안감이 증폭되는 와중에 2023년에도 사달이 났다. 상위 10위권 업체에서 3년 연속 대형 안전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2023년 4월말경 LH가 발주한 검단신도시 안단테 AA13-2BL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다.

사고 직후 경실련은 설마 하는 생각으로 위 LH 검단 사업에 LH 전관 영입 업체의 관여가 있는지를 살펴봤다. 아니나 다를까 설계와 감리 업체 모두 LH 전관 영입 업체였다.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잠깐 동안 시쳇말로 멘붕(정신적 공황)을 맞았다. 고질적인 부실시공만이 아니라 설계와 감리에서도 구멍이 뚫렸고, 그 원인이 전관 특혜에 있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 때문에 더욱 쓰라렸다. 재차 언급하기 싫은 “총체적 난국”이 아닐 수 없다.

최근 15개 LH 아파트 단지에서 철근이 누락됐다는 정부의 조사 내용이 발표됐다. 입주가 완료된 아파트 주민은 더욱 좌불안석일 것이다. 이 정도면 재난공화국이다. 전문가 집단의 대응 방식과 태도도 문제다. 우리나라는 민간기업 결성체를 전문가그룹으로 봐 법정단체로 인정해 주고 있다. 건설과 관련해서는 건축사협회, 구조기술사협회, 엔지니어링협회, 대한건설협회, 전문건설협회 등이 그들이다. 그런데 이들 전문가그룹 법정단체 그 어디에서도 3년 연속 재난에 대해 국민에게 석고대죄하거나 재발 방지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오히려 재난을 그들의 이권 챙기기에 이용하지 않기를 바라야 하는 지경이다. 비용을 부담해온 국민이 을(乙)이고, 병(丙)이 됐다.

더 심각한 것은 발주기관의 책임불감증이다. 2023년 4월말경의 LH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 책임이 행위자(시공자, 감리자, 설계자)에게 있음은 명확하다. 그런데 이들 행위자를 낙찰자로 선정하고 이들에 대한 계약 당사자로서의 감독 권한을 가진 발주기관은 LH다. LH는 가장 권한이 많은 집단이라서 갑(甲)질 비판의 대상임에도, 법적 책임은 지지 않으니 존재 자체가 특혜인 셈이다. 2021년경 경실련의 전관특혜 분석 발표 이후 정부가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한 LH 혁신 방안을 내놓았지만, 이번 붕괴 사고를 막지 못했다. LH 자체적으로 혁신이 가능하지 않음을 확인해준 것이다. 자정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지만 혁신의 대상이 혁신 방안을 내놓는 것을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겠는가?

 

“전관특혜 근절,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전관특혜가 LH만의 문제라고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2021년 3월과 4월의 분석 발표 이후, 경실련은 국토교통부와 한국도로공사에 대한 ‘설계용역 수주현황 및 업체별 OB영입 현황’을 제보받았다. 제보받은 38건을 분석한 결과, 국토교통부와 한국도로공사 전관을 영입한 업체가 모든 설계 용역을 수주했을 뿐만 아니라, 전체 발주 건수의 78%가 단 2개 업체만 입찰에 참여했다. 입찰 담합 징후가 LH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반칙과 특혜라는 큰 병에 걸렸다. 당장 누가 책임을 진다고 해서 해결될 정도를 훨씬 넘어섰다. 재난공화국 정도이다 보니 국민의 치솟은 불안감과 불신이 단기간에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날려버린 신뢰를 회복하기엔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는 것이 오랜 경험칙이다. 전관특혜를 없애고 국민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반칙과 특혜가 고착화된 기간만큼은 아니더라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우리에겐 전관특혜를 근절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런데 문제를 제기한 측의 고심이 크다. 암담하게도 뾰족한 해결 방안이 보이지 않아서다. 굳이 생각해낸 것이 “끊임없는 견제와 감시”가 필요하다는 원칙 같은 것이다. 하지만 원칙을 바로 세우는 것이 정상화 방안이기에,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감히 제안한다. 지금의 전관특혜는 특정 집단만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 고질병을 치유해야 하는 것이므로, 결국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르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 직속으로 가칭 ‘전관특혜 근절 방안 특별위원회’를 상설해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한 대장정을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이 사안에 대해서는 제발 전·현 정부로 나누거나, 네 편 내 편을 거론해서는 안 된다. 국민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단 한 가지 사실만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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