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30년 동안 한 번도 이 법을 지키지 않았다[2023 선거제 개편]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3.08.07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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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13개월 전 선거구 획정해야…이번에도 법정시한 넘겨
15대 이후 매번 지각…평균 50일 전 획정에 막판까지 ‘깜깜이’
국회 본회의장 ⓒ연합뉴스
국회 본회의장 ⓒ연합뉴스

4년에 한 번, 국회가 꼬박꼬박 위반하고 있는 법이 있다. 공직선거법 24조와 25조다. 국회가 구성한 선거구획정위원회에서 ‘총선 13개월 전’까지 선거구 획정안을 제출하고 국회가 ‘총선 1년 전’까지 선거제도를 획정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우리 정치권이 이 법정 시한을 지킨 적은 그동안 한 번도 없었다.

내년 4월10일로 예정된 22대 국회의원 총선의 선거구를 결정지을 '선거구 획정안‘도 역시나 법정기한을 넘긴 지 오래다. 13개월 전인 지난 3월10일까지 여야는 지역의 선거구 수와 시도별 의원 정수 등 기준을 마련해야 했지만 조금도 의견을 좁히지 못했다.

참다 못 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4월 “이번에도 선거구 획정의 법정 기한을 지키지 못한 데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책임을 통감한다”며 “국민 참정권이 온전히 보전될 수 있도록 선거구 획정 기준을 조속히 통보해 달라”고 국회를 압박했다. 지난달, 김진표 국회의장 역시 여야를 향해 “이달 내 논의를 마무리하라”고 지시했지만 현재까지 여야는 각종 현안으로 신경전을 벌이며 논의의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양선영 시사저널 디자이너
ⓒ양선영 시사저널 디자이너

너무도 당연해진 늦장 선거구 획정

더 큰 문제는 선거구 지각 획정이 갈수록 ‘당연시’ 되고 있으며, 날로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는 1994년 국회 내에 획정위를 설치하기로 한 이후 1996년 15대 국회 총선부터 한 번도 법정 시한을 지키지 못했다. 선거구를 최종 획정 발표한 때는 전부 총선 100일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15대 총선부터 직전 21대 총선까지 선거구 획정은 총선일로부터 평균 50일 전에야 이뤄졌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5대는 75일 전, 16대는 65일 전, 17대는 37일 전, 18대는 48일 전, 19대는 44일 전, 20대는 42일 전, 21대는 39일 전에 이뤄졌다.(표 참고)

선거구 획정이 가장 늦었던 때는 2004년 17대 총선이었다. 선거를 불과 한 달여 앞둔 3월9일에야 획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출마자의 선거운동과 선관위의 선거관리에 큰 불편을 초래했다.

당시 총선을 앞두고 헌법재판소는 기존 국회의원 선거구에 대한 선거구 인구편차를 기존 4대1에서 3대1 이하로 조정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헌재가 국회에 부여한 시한은 2003년 12월31일이었다. 하지만 여야는 선거법 개정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결국 석 달이 더 지난 2004년 3월9일에야 선거구 획정을 확정했다.

‘17대 총선의 재현’이라고 불렸던 2016년 20대 총선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기존 선거구 인구편차를 다시 2대1로 조정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번에도 2015년 12월31일까지 시한을 부여했다. 하지만 역시나 국회는 이 기간을 넘겼고 기존 선거구가 모두 사라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미 2015년 12월15일부터 예비후보 등록이 이뤄졌지만 선거구가 획정되지 못하면서 졸지에 이들이 전부 불법 선거운동을 하는 촌극을 낳기도 했다.

 

결국 기성 정치인들의 ‘밥그릇 사수’가 원인

최악은 또 한 번 경신됐다. 총선 디데이를 불과 39일 앞두고 선거구를 획정지은 2020년 21대 총선에서였다. 당시 국회는 재외선거인명부 작성 시한(3월6일) 직전까지 합의를 이루지 못했고, 결국 기다리던 획정위가 사상 처음으로 스스로 획정안을 만들어 국회에 역제출하는 상황도 빚어졌다.

하지만 민주당은 ‘강남은 유지하면서 노원은 왜 줄이냐’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은 ‘민주당에 유리한 화성을 굳이 쪼개는 이유가 뭐냐’며 획정위를 다그쳤다. 결국 국회는 갈 길이 바쁜 와중에 획정위 수정을 요구했고, 획정위는 이틀 만에 수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해야 했다.

당시 여야는 뒤늦게 선거구를 획정하며 “국민들에게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획정위는 “국민에게 부여된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이러한 과정이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유감을 표했다.

이처럼 반복되는 ‘늦장 획정’의 이유로 여야의 ‘밥그릇 싸움’이 꼽히지만, 일각에선 기성 정치인들의 ‘의도적 미루기’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선거구가 늦게 결정될수록 정치 신인들은 자신을 알릴 시간이 부족해지고,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기성 정치인이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선거구에 변화가 예상되는 지역의 경우,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면 신인들은 선거운동에 더 큰 어려움에 부딪치곤 한다.

이번엔 어떨까. 여야 갈등이 날로 첨예해지는 지금, 벌써부터 정치권 안팎에선 선거구 획정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늦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를 의식해 김진표 국회의장은 최근 여야에 선거구 획정 완료 시한을 최대 8월 말까지로 다시 제시하며 속도감 있는 논의를 주문했다.

하지만 총선을 8개월여 앞둔 현재, 국회는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할지 중대선거구를 도입할지에 대해서도 정하지 못했다. 또한 논란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어떻게 손볼지도 논의가 되지 않고 있어, 또 한 번 국회가 최악을 경신하는 건 아닐지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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