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 PSG 메시의 공백을 지워버리다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8.19 11:05
  • 호수 1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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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발 출격한 시즌 개막전에서 맹활약…경기 최우수선수 선정
팀 비중 높아지면서 항저우아시안게임 출전은 불투명해져

이강인이 파리의 마음을 뺏는 데 필요한 시간은 81분이면 충분했다.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이적료 310억원에 마요르카를 떠나 파리생제르맹(이하 PSG)에 합류한 이강인은 2023~24 시즌 프랑스 리그앙 개막전에 선발 출전했다. 시즌 준비 단계에서 허벅지 뒷근육을 다쳐 걱정을 샀지만 시즌 첫 경기에 당당한 선발로 나서며 우려를 말끔히 날려버렸다.

로리앙을 상대한 홈경기에서 이강인은 4-3-3 포메이션에서 오른쪽 측면 공격수로 나섰다. PSG의 지휘봉을 새롭게 잡은 루이스 엔리케 감독은 왼발잡이인 이강인을 측면과 중앙을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포지션에 배치했다. 최근 대한민국 A대표팀에서 기용되는 것과 유사한 형태였다. 최고의 공격력을 지닌 풀백 아슈라프 하키미와의 호흡이 일단 눈에 띄었다. 라인을 따라 들어오는 하키미를 활용하거나, 2대1 플레이로 상대 밀집수비를 흔들었다.

상황에 따라 영리하게 중앙으로 이동해 빌드업을 조율하며 다른 공격진을 돕는 역할도 능숙하게 해냈다. 후반 들어서는 더 공격적으로 나서 두 차례의 날카로운 슈팅을 기록했다. 세트피스 상황에서 프리킥과 코너킥도 이강인이 담당했다. 쉴 새 없이 움직인 이강인은 후반 36분 스트라이커인 위고 에키티케와 교체되며 자신의 데뷔전을 마무리했다.

8월1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파리생제르맹과 FC로리앙의 리그앙 개막 경기에서 이강인이 상대 밀집수비를 뚫고 있다. ⓒEPA 연합

네이마르마저 떠난 PSG, 이강인에 대한 기대 급상승

여러 지표 면에서 이강인은 정교했다. 축구 통계 매체인 ‘후스코어드닷컴’은 이강인이 81분 동안 패스 성공률 88%를 기록했다고 소개했다. 59번의 패스 시도 중 52회를 성공했고, 결정적인 키패스도 한 차례 남겼다. 가장 눈에 띈 건 역시 드리블이었다. 이강인은 4번의 드리블 시도 중 3번을 성공해, 양팀 선수 중 가장 많은 드리블 시도와 성공 기록을 남겼다. 볼 터치는 85회로 PSG 선수 중 가장 많은 횟수를 기록했다. 이강인이 팀플레이의 중심이었다는 증거다.

리그앙 사무국은 경기 최우수선수로 이강인을 선정했다.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남긴 평가에서 “이강인과 아센시오는 칭찬받을 만하다. 다른 날이었다면 PSG는 승리했을 것이다. 메시의 빈자리가 클 것 같았지만, 이강인이 메시의 자리를 훌륭하게 소화했다. 팀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남겼다. PSG는 경기 결과에 실망할 수 있지만 이강인은 자신의 활약에 만족할 것이다”고 전했다.

언론의 평가도 매우 긍정적이었다. ‘RMC 스포츠’는 “PSG가 경기를 지배했지만 속도와 확실한 기회 창출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강인이 유일하게 스파크를 일으켰다. 우측에서 이강인은 수차례 드리블로 로리앙의 밀집수비를 뚫으려 시도했다”는 평가를 남겼다.

전반적으로 PSG와의 계약 종료 후 북미 메이저리그사커(MLS)의 인터 마이애미로 이적한 리오넬 메시의 공백을 메울 적임자로 이강인을 꼽는 분위기다. 실제로 메시는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고 뛰어난 왼발 능력으로 킬리안 음바페, 네이마르를 지원했는데, 이강인이 그 역할을 계승했다. 다만 결정력 문제만큼은 이강인이 다 풀 수 없었다. 로리앙전에서 PSG는 점유율 78%에 슈팅 17회를 기록하고도 0대0 무승부를 기록했다.

득점 문제는 골잡이의 이탈 탓에 빚어진 현상이었다. 5시즌 연속 리그앙 득점왕을 차지한 음바페는 이번 여름 PSG의 재계약 협상에 응하지 않고 내년 여름 자유계약 방식으로 떠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며 갈등을 빚었다. PSG는 프리시즌 투어 명단에서 음바페를 빼는 초강수로 압박했지만 선수 측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분위기다. 음바페는 PSG가 이번 여름 FC바르셀로나로부터 영입한 공격수 우스만 뎀벨레와 함께 로리앙전을 관중석에서 지켜봤다.

이런 가운데 뜻밖의 상황까지 전개됐다. 음바페와 함께 PSG의 공격을 책임졌던 브라질 국가대표 공격수 네이마르가 사우디아라비아로 전격 이적한 것이다. 당초 음바페가 이적하고 네이마르는 잔류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분위기가 급반전된 것은 PSG 수뇌부의 판단 때문이었다. 음바페는 아직 1년의 계약기간이 남은 만큼 어떻게든 설득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다.

반면 1992년생으로 30대가 된 네이마르는 최근 장기 부상이 잦아진 터였다. 2017년 2억2000만 유로(약 2900억원)의 이적료를 투자하며 네이마르를 데려온 PSG로서는 알힐랄이 제시한 이적료 9000만 유로(약 1300억원)로 몸값을 어느 정도 회수할 수 있었다. 네이마르도 2000억원이 넘는 연봉을 제시한 알힐랄의 러브콜에 마음이 급격하게 흔들렸다. 결국 8월16일 알힐랄과 네이마르는 2년 계약에 사인했다.

 

팀 리빌딩 계획의 중심에 설 수 있음을 보여줘

네이마르의 이적과 함께 음바페는 일단 구단과 화해하며 1군 훈련에 복귀했다. 그러나 내년 여름 팀을 떠나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를 비롯한 다른 팀으로 간다는 그의 계획은 여전하다. 지난 시즌 음바페는 29골 6도움, 메시는 16골 16도움, 네이마르는 13골 11도움을 기록했다. 팀 공격의 3분의 2를 책임지던 3인방 중 2명은 이미 떠났고, 남은 음바페도 올 시즌이 마지막일 가능성이 높다. PSG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세대교체가 필요한 상태다. 이강인은 개막전 활약으로 자신이 그런 팀 리빌딩 계획의 중심에 설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실제로 이번 여름 PSG의 영입에서도 당장 팀을 바꿀 월드클래스 영입이 아닌 미래를 고려한 영입이 많았다. 이강인 외에도 마르코 아센시오, 하무스, 마누엘 우가르테, 밀란 슈크리니아르, 뤼카 에르난데스 등이 왔는데, 그중 이강인과 하무스 우가르테가 2001년생이다. 이강인의 경우 2028년까지 5년 장기 계약을 맺었다. 20대 초반의 새로운 세대를 앞세워 팀의 염원인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도달하겠다는 목표다.

메시에 이어 네이마르까지 떠나자 이강인을 향한 프랑스 언론의 기대감은 한층 더 올라갔다. 공격의 창의성을 책임지던 두 테크니션의 빈자리를 이강인으로 메워야 한다는 것. 프랑스 유력지 ‘레퀴프’는 “PSG가 메시와 네이마르를 대신할 창의적인 미드필더로 이강인을 고려하고 있다. 이강인은 마요르카 시절에도 미드필더로 활약한 경험이 있다. 이강인의 다재다능함은 운동장에서 창의적인 역할을 소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강인이 세계적인 클럽에서 빠르게 주전으로 자리 잡으며 주가가 올라가는 만큼 한국 축구의 고민도 커졌다. 당장 9월 중순 열리는 항저우아시안게임에 이강인의 차출 문제가 꼬이고 있다. 이강인 측은 PSG 이적 당시 구단과 아시안게임 차출 건에 대한 구두 허락을 받았지만, 정작 차출에 대한 결정권을 쥐고 있는 엔리케 PSG 감독은 반응하지 않고 있다.

네이마르가 떠난 빈자리를 메우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팀 전력의 한 축이 된 이강인을 한 달 가까이 보내는 상황을 감독이 용인하긴 쉽지 않다. 황선홍 감독이 이강인과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으며 확고한 의지를 확인했지만, 국제축구연맹(FIFA)이 차출을 보장하지 않는 아시안게임 차출은 여전히 미지수인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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