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 “영화가 내 존재 가치 일깨워…도전 멈추지 않을 것”
  • 하은정 우먼센스 대중문화 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8.18 15:05
  • 호수 176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보호자》로 배우에서 영화감독으로 변신한 정우성

배우 정우성이 드디어 영화감독이 됐다. 단편영화는 종종 연출해 왔지만 장편영화는 처음이다. 흔한 말로 ‘뒷배’ 없이 열정 하나로 이뤄낸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그가 영화 《구미호》를 통해 배우로 데뷔한 해가 1994년이니 29년 만에 꿈을 이룬 셈이다. 그 스스로도 “이 도전을 잘 마무리했다는 것만으로도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담담히 말했다.

감독 정우성의 첫 영화는 8월15일 개봉한 《보호자》다. 그는 이 영화에서 감독이자 주연으로 열연했다. 10년 만에 출소해 몰랐던 딸의 존재를 알고 평범하게 살기를 원하는 ‘수혁’과 그를 노리는 이들 사이의 이야기를 그린 액션영화다. 정우성은 평범한 삶을 꿈꾸는 남자 수혁 역을 맡아 배우 김남길, 박성웅, 김준한과 호흡을 맞췄다.

영화 《보호자》가 궁금해지는 첫 번째 이유는 역시 정우성이다. 청춘의 이름인 《비트》, 한국 버디영화의 효시인 《태양은 없다》, 지극한 순애보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새로운 액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처음 악역을 맡은 《감시자들》, 변호사의 고뇌를 그린 《증인》, 절친한 동료 이정재가 연출한 《헌트》까지 정우성은 데뷔 이후 줄곧 톱배우였다.

《보호자》는 좋은 배우로서 그가 현장에서 쌓아온 노하우와 그의 취향을 감독으로서 펼쳐 보이는 첫 번째 영화다. 감독과 주연을 겸했기에 《보호자》에서 그는 ‘레디-액션-컷-오케이’까지 모든 과정에 자신의 인장을 새겼다. 정우성은 배우로서 체득한 노하우로 동료 배우들이 가장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디렉션을 줬고, 누구보다 오래 한국 영화의 현장에 있었던 베테랑다운 애정과 실력으로 스태프에게서 최선을 뽑아내고자 했다.

“지금도 촬영 현장이 제일 재미있고 좋다. 그곳에서 살아있음을 느낀다. 수많은 영화 현장을 겪으며 100명 이상의 스태프와 배우들의 에너지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모이는 그 순간이 주는 기쁨을 《보호자》에서 누렸다”는 그를 만나 감독 데뷔와 관련된 소감을 들었다.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감독으로서 첫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하필 여름 극장가에 쟁쟁한 경쟁작이 많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개성과 매력이 다 다르다. 결국 관객들의 선택이다. 《보호자》가 가지고 있는 개성이 관객들에게 잘 전달되길 바랄 뿐이다. 간절하거나 초조한 마음은 없다. 그렇다고 한들 바뀌는 건 없으니까. 최대한 담담히, 사부작사부작 해나가겠다.”

《보호자》는 해외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다.

“사실 그때는 안 떨렸다. 해외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박장대소도 하고, 소리도 많이 질렀다. 유쾌한 관람이었다. 그런데 국내에서 첫 공개될 때는 엄청 긴장되더라. 너무 긴장해 아무 생각도 안 들다가 오히려 기자 시사회가 끝나니까 더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연출에 관심을 가지게 된 특별한 계기가 뭔가.

“긴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생긴 마음이었다. 배우로 데뷔할 때부터 이야기를 상상하는 걸 좋아했다. 그런 내 성향을 주변에서 알게 되면서 내레이션을 쓸 기회도 있었고, 그게 적용되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씩 자신감을 얻어갔다. 워낙 상상하는 걸 좋아하니 내가 출연하는 영화와 관련해서도 이런저런 스토리를 생각하고 작업해 제안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겁 없게 ‘나중에 연출도 해보고 싶다’는 말을 주변에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조바심은 없었다. 지금도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감독으로서 영화를 선보일 때와 배우로서 선보일 때 어떻게 다른가.

“많이 다르다. 나를 믿고 따라와 준 후배들에 대한 책임도 감독의 몫 아닌가. 내가 생각했던 이 영화만의 독특한 ‘톤 앤 매너’가 잘 나왔는지, 이 부분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불안함도 있다.”

감독으로서 현장에서는 어땠는지 궁금하다.

“사실은 현장을 즐겼다. 결과물에 대한 평가와는 상관없이 현장에서 디렉터 체어에 앉아있을 때 ‘어? 적성에 꽤 맞네’ 싶기도 했다(웃음). 덧붙여 이 작품에서 나는 배우와 감독 역할을 동시에 했다. 피로도가 높았다. 그런데 내 촬영분이 없는 날엔 그 무게감이 깃털처럼 가볍기도 했다. 어려웠던 점은 모든 스태프와 관계자는 그동안 내가 배우로서만 대했던 대상들이지 않나. 배우의 경우 동료로서 친근감이 있지만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했다. 감독으로서 새로운 내 얼굴이 그들에게 어떻게 비춰질지, 또 시간이 흘러 신뢰의 감정으로 연결돼야 하지 않나. 무게감이 느껴지던 시간들이었다.”

연출 스타일에 큰 영향을 준 감독이나 아티스트가 있다면.

“어떤 한 대상보다 ‘모든 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배우를 할 때부터 ‘어떤 배우처럼 될 거야’ 하는 건 막연한 이야기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 영화처럼 찍을 수 없고, 또 찍을 필요도 없다. 영화라는 건 결국 새로운 것이 없다. 다만 내가 그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관건인 것 같다.”

김남길, 김준한 등 좋은 배우가 출연했다. 캐스팅 비화도 궁금하다.

“김준한 배우는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쳐 어떤 작품이라도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추고 싶었다. 김남길 배우가 맡은 ‘우진’은 어려운 캐릭터다. 그래서 제안하기가 조심스러워 용기를 내어 김남길 배우에게 시나리오를 전달했다. 그의 첫마디는 “독특하네요”였다. ‘제가 평소에 형 앞에서 하는 것처럼만 하면 되는 거죠’라며 다가와 줬다. 그래서 덥석 잡았다(웃음).”

감독으로서 다음 계획이 있는가.

“하고 싶은 게 많다. 오래전부터 생각해둔 작품도 있다. 여건이 가능해야겠지만 언젠가는 분명히 다시 도전할 것이다. 거창한 꿈이랄 것까지는 없지만 늘 도전하고 싶은 생각은 있다. 배우로서도 감독으로서도 그렇다. 도전의 기본은, 다 지우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계속 도전할 것이다.”

걸어온 길을 보면 영화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 영화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나.

“내 존재 가치를 만들어주는 일이지 않나. 소중하다. 늘 좋은 영화에 대해 고민한다. 물론 그걸 잘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도전은 필요한 것 같다. 도전은 쓰고 아프지만 결국 반짝반짝 나를 살아있게 해주는 것 같다. 그걸 경험해 봤다. 도전에 대한 마음은 언제까지나 간직하고 싶다.”

첫 작품이니만큼 작품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정우성 감독의 사랑이 진하게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개인적인 생각도 궁금하다.

“올여름에 개봉했던 다른 영화들과 비교해 3분의 1 예산이었다. 그 안에서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다. 이 도전을 잘 마무리했다는 것만으로도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