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잼버리 콘서트에서 다시 입증한 K팝의 위력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8.18 14:05
  • 호수 1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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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영향력에 걸맞은 활용·지원법 고민해야

최근 새만금 잼버리가 준비 부실로 혹평을 받았다. 태풍까지 상륙해 대회장 운영이 조기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잼버리 참가자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한국의 위신이 실추될 위기였다. 한국은 참가자들의 마음을 호의적으로 돌리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문화체험 프로그램들이 제공됐는데 그 가운데 결정적 한 방으로 선택된 것이 바로 K팝 공연이었다.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열린 이 공연은 거의 기적이었다. 대한민국 이외엔 지구상 그 어느 나라도 이런 행사를 만들어낼 수 없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K팝 슈퍼라이브 콘서트가 열린 8월11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대원들이 콘서트를 즐기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국에서만 가능한 공연” 

K팝 공연은 원래 잼버리 행사장에서 8월6일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잼버리가 파행으로 치달으면서 취소됐다. 폭염으로 온열질환자가 속출하자 “이 무더위에 무슨 대형 공연이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하지만 장소를 전주월드컵경기장으로 옮겨 다시 추진했다. 그러다 태풍 소식이 들려오자 또 취소했다. 결국 8월1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최종 결정된 것이다. 이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라면 완전 취소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잼버리 참가자들의 마음을 호의적으로 돌려야 한다는 당위성이 워낙 간절했다. 가장 효과적인 결정타가 K팝 공연으로 판단됐기 때문에 절대 취소할 수 없었고, 온갖 논란 속에서 ‘하면 된다’ 정신으로 밀어붙였다. 태풍이 예고된 상황에서 비를 그대로 맞아가며 무대를 설치하는 놀라운 투혼이었다. 그 정도로 K팝 공연에 목을 맸다는 이야기다. 

앞에서 이번 공연이 한국에서만 가능한 기적이라고 했는데, 이 행사는 국제적 팝스타가 대거 등장하는 대형 음악 페스티벌이었다. 이런 팝스타들은 일정이 촘촘하기 때문에 행사 장소와 일시를 수시로 바꿔가면서 급조하는 행사에 출연할 수 없다. 미국과 영국처럼 국제적 팝스타들을 보유한 나라에선 그 팝스타들이 국가 주도 행사에 우리처럼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않는다. 태풍 속에서 공연을 준비하는 것도 힘들다. 그런 나라에서 이런 페스티벌을 하려면 상당한 사전조율과 준비기간을 거쳐야 한다. 반면 이런 대형 행사를 급조할 수 있을 정도로 국가의 힘이 강한 나라들엔 국제적 팝스타가 없다. 대표적으로 중국이라면 얼마든지 행사를 급조할 수 있을 것이지만 그 무대에 세울 팝스타를 보유하지 못했다. 

오직 한국만이 국가의 힘이 강하면서 국제적 팝스타도 다수 보유했다. 그리고 그 팝스타들이 나라의 일에 협조하려는 성향도 강하다. 이런 배경에서 불가능에 가까운 대형 페스티벌 급조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아무리 우리나라가 국가의 힘이 강하고 팝스타들이 나라 일에 협조적이어도 매우 힘든 준비 과정인 건 틀림없었다. 비난도 많았다. 그래도 밀어붙인 건 K팝 공연의 영향력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공연만 하면 잼버리가 유종의 미를 거둘 거라고 말이다. 

실제로 효과도 있었던 것 같다. 공연을 보며 잼버리 참가자들이 열광했다는 현장 보도들이 나왔다. 새만금 숙영지에서 가장 먼저 이탈하며 부정적인 여론을 이끌었던 영국 스카우트 대원들의 태도가 흥미롭다. 그들이 먼저 K팝 공연 관람을 요청해 왔고 우리 정부가 수락했다. 영국 대사 대리는 “대한민국 정부의 선의와 문제 해결 능력에 놀랐다”며 감사를 표시했다고 한다. 

8월11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K팝 슈퍼라이브 콘서트’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는 그룹 아이브, 뉴진스, NCT DREAM ⓒ사진공동취재단
8월11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K팝 슈퍼라이브 콘서트’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는 그룹 뉴진스 ⓒ사진공동취재단
8월11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K팝 슈퍼라이브 콘서트’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는 그룹 아이브, 뉴진스, NCT DREAM ⓒ사진공동취재단
8월11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K팝 슈퍼라이브 콘서트’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는 그룹 NCT DREAM ⓒ사진공동취재단
8월11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K팝 슈퍼라이브 콘서트’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는 그룹 아이브, 뉴진스, NCT DREAM ⓒ사진공동취재단
8월11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K팝 슈퍼라이브 콘서트’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는 그룹 아이브 ⓒ사진공동취재단

K팝의 영향력과 위상 재확인 

이처럼 이번 잼버리 K팝 공연을 통해 K팝의 영향력과 위상이 다시금 드러났다. 잼버리 파행을 수습하기 위해 정부가 K팝 공연에 목을 맬 정도로 절대적인 영향력인 것이다. 우리나라를 홍보하는 데 압도적 위력을 발휘하는 전략자산이 된 듯한 느낌이다. 지난해 10월엔 방탄소년단이 부산 엑스포 유치 홍보를 위해 ‘옛 투 컴 인 부산(Yet to Come in BUSAN)’ 공연을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었다. 싸이와 걸그룹 에스파의 리더 카리나도 유치활동에 힘을 보탰다. 

과거 대중문화는 저질·퇴폐 딴따라로 나라 망신이나 시킬 저속한 유흥이라고 여겨졌다. 그래서 대체복무제도를 만들 당시 순수음악과 체육계는 포함시키면서 대중문화는 배제했다. 오직 순수음악과 체육계만 국위 선양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이 제도의 관성이 아직도 남아 우리가 보유한 세계 최고 팝스타를 얼마 전 군대에 보내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제도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지만 대중문화는, K팝은 놀랍게 변화했다. 기적의 역사를 써내려갔다. 이젠 대중문화가 국위 선양 그 자체다. 그중에서도 K팝이 어느 정도 위상인지를 이번 잼버리 K팝 공연이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K팝의 진화는 현재진행형이다. 팀으로 세계 정점을 찍은 방탄소년단은 현재 일부 멤버가 입대한 가운데 남은 멤버들의 솔로곡 발표가 이어지고 있다. 그중에서 지민이 지난 4월 《라이크 크레이지》로 빌보드 핫 100 1위에 올랐다. 우리가 흔히 ‘빌보드 1위 히트곡’이라고 할 때의 그 빌보드 차트가 바로 ‘핫 100’이다. 세계적 히트곡을 낸 싸이에게도 2위까지만 허락했던 통한의 핫 100 차트. 지민이 한국 솔로 가수로는 최초로 1위 고지에 올랐고, 최근엔 정국이 《세븐》으로 또 핫 100 1위에 올랐다. 우리에게 꿈같았던 빌보드 1위 고지에 팀이 아닌 솔로로 연이어 오른 것이다. 최근 빌보드는 K팝 아이돌들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집계 방식을 바꿨다. 그럼에도 정국이 솔로로 1위에 오르며 탄탄한 위상을 증명했다.  

블랙핑크는 최근 북미 최대 음악축제인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트 페스티벌’(약칭 ‘코첼라’)에서 헤드라이너로 섰는데 해당 축제 출연자 중 가장 많은 스트리밍 조회 수를 기록했다. 시청자 수가 무려 2억 5000만 명에 달했다. 영국에선 영국 최대 음악축제라는 ‘하이드 파크 브리티시 서머 타임 페스티벌’(약칭 ‘하이드 파크’) 무대에 헤드라이너로 섰다. 이 공연과 관련해 BBC는 “블랙핑크가 새로운 역사를 썼다. 이제는 K팝을 넘어 세계에서 가장 큰 그룹 중 하나다”라고 썼다. NME는 “아직 영국 음악축제에서 K팝이 주류는 아니지만, 블랙핑크의 공연을 시작으로 모든 것이 변할 수도 있다”고 했다. 파리에선 5만5000명 규모의 스타디움 공연을 개최했다. 세계 최고 수준 팝스타만 가능한 규모다. 블랙핑크 월드투어는 총 150만 명을 동원할 것으로 예측된다. 

 

약진하는 K팝 스타들 

한편 그동안 주로 아시아권에서 사랑받는다고 간주됐고, 전성기가 지났다는 관측도 있었던 트와이스가 북미에서 화려하게 비상하고 있다. 트와이스는 최근 ‘NBC 투데이(NBC’s TODAY)’에 K팝 걸그룹 최초로 출연했는데 앵커는 이 팀을 “역사를 만드는 K팝의 여왕”이라고 소개했다. 전 세계 여성 그룹 중 최초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경기장’으로 불리는 LA 소파이 스타디움 그리고 뉴욕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에서 공연했다. 이 두 스타디움을 모두 매진시키며 이들이 새롭게 팝의 왕좌에 안착했음을 알렸다. 

이들 선배 가수와 더불어 신인급인 4세대 걸그룹의 약진도 놀랍다. 이번 잼버리 콘서트에서 가장 화제가 된 것이 뉴진스와 아이브의 출연 소식이었다. 두 팀 모두 4세대 걸그룹이다. 뉴진스는 최근 미니 2집 ‘Get Up’으로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서 1위에 올랐다. 8월3일엔 미국의 대형 음악 페스티벌인 ‘롤라팔루자’ 무대에 섰다. 무려 7만여 명의 관중이 몰렸고, 현지에서 해당 시간대 관중으론 최대 규모라는 말까지 나왔다. 데뷔한 지 1년 된 신인인데도 열광적 반응이었다. 한국어 떼창까지 터져나왔다. 세계 대중문화의 중심인 미국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자 위상이 급상승하고 있다. 과거 미국 시장의 호응을 기점으로 일본에서 방탄소년단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었는데, 요즘 뉴진스에게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아이폰 왕국 일본에선 아이폰 광고로 뉴진스 뮤직비디오가 나온다. 

아이브는 2022년에, 한 해에 3개의 시상식에서 신인상과 대상을 동시 수상한 최초의 가수가 되었다. 올해엔 골든디스크 신인상과 대상을 사상 최초로 동시 수상했다. ‘뮤직뱅크’ 등 우리 음악방송이 해외 특집을 했을 때 현지 관객이 아이브 노래에 호응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에스파는 미국 포브스에서 발표한 ‘아시아 30세 이하 리더 30인’에 선정되기도 했고, 최근엔 일본에서 해외 가수 사상 최단기간 도쿄돔 입성 기록도 세웠다. 도쿄돔에 입성했다는 건 A급 팝스타라는 뜻이다. 미국에서 ‘아웃사이드 랜즈 뮤직 & 아츠 페스티벌’ 무대에도 섰다. 이 페스티벌은 미국의 대표적인 야외 음악 페스티벌 중 하나인데 에스파가 《넥스트 레벨》을 부르자 떼창이 터졌다고 한다. 또 다른 4세대 걸그룹 르세라핌은 국내에서 밀리언셀러를 기록했고, 정규 1집 ‘언포기븐’이 일본 오리콘 앨범 차트에서 1위에 올랐다. 올해 해당 차트에서 해외 여성 아티스트가 1위를 차지한 건 르세라핌이 처음이라고 한다. 8월부터 아시아 투어도 이어진다. 

이처럼 K팝의 성장은 역동적이다. 과거엔 데뷔하고 몇 년 정도 인기를 쌓아야 팝스타가 됐는데 지금은 1년 이내에 팝스타급이 된다. 그만큼 K팝 자체가 세계의 주목을 받는다는 뜻이다. 4세대의 활동으로 K팝이 더욱 핫해질 수 있다. 

이 정도의 위상이기 때문에 정부가 K팝 공연에 매달렸고, 영국 스카우트 대원들은 K팝 관람을 요청했을 것이다. 앞으로도 K팝으로 인해 우리 한국에 대한 대대적인 홍보 효과가 발생할 것이다. 다만 너무 국가 차원에서 K팝을 내세우면 해외에서 거부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최대한 K팝 스타들과 거리를 두는 게 좋다. 대신 조용히 음악계 저변을 지원하면 그게 K팝 활성화로 이어질 것이다. 잼버리 공연 준비 과정에서 마땅한 공연장을 찾지 못해 난항을 겪었는데 공연장 문제부터 돌아봐야 한다. 어쨌든 다사다난한 환경 속에서 K팝의 약진은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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