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같은 ‘의료 인프라’ 없어 강원도서 연간 132명 사망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3.08.21 07:35
  • 호수 1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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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정원 확대 왜 필요한가│지방에는 수술할 의사가 없다]
‘필수진료 전문의’ 모두 갖춘 지역의료원은 10곳 중 3곳뿐
‘30분 내 응급실 못 간다’ 서울은 0%, 전남·경남·강원은 30%

낡은 시골집은 수해로 더 낡아졌다. 집 수리를 하다가 그만 발을 헛디뎠다. 김영태씨(가명·72)의 입에선 외마디 비명이 나왔다. 이웃집 부부가 소리를 듣고 달려왔다. 부축을 받고 일어나 보니 김씨의 오른팔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웃집 부부는 아무래도 넘어질 때 오른팔이 부러진 것 같으니 서둘러 병원에 가자며 김씨를 차에 태웠다. 서울에서 낙향한 지 얼마 안 되는 이웃집 부부는 제일 가까운 읍내 정형외과로 가려 했다. 김씨는 고개를 저으며 강원도에서 제일 큰 병원 중 한 곳으로 가자고 했다. 좀 더 멀어도, 확실한 곳에서 진찰을 받자고 했다. 재작년 머리가 아파 동네 병원 몇 곳을 찾았지만, 결국 큰 병원에 가서야 확실한 진단명을 받을 수 있었던 기억을 떠올린 탓이다. 

4시간 같은 40여 분을 달려 병원에 도착했다. 낮시간이었지만 환자가 많지 않아 엑스레이 촬영 등을 곧 할 수 있었다. 곧 만난 담당 의사의 표정은 어두웠다. 뼈가 부러졌는데, 일자(一)로 부러진 게 아니라 조각조각 부러졌다고 했다. 상대적으로 어려운 수술로 이 수술을 할 수 있는 전문의가 병원에 단 한 명뿐인데, 마침 그 의사가 지금 휴가를 갔다고 했다. 그리고 담당 의사의 입에서는 일주일 정도를 기다리거나, 바로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말이 나왔다. “빨리 확실하게 치료하시려면 서울로…”라는 말이 뒤따랐다. 김씨는 진통제 등 응급처치만 받고 서울에 사는 자식에게 연락해 바로 수술할 수 있는 병원 수배를 부탁했다. 이웃집 부부의 도움으로 서울 아들 집에 도착한 김씨는 바로 다음 날 입원해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5월3일 서울 강남구 수서역 3번 출구 인근 삼성서울병원 셔틀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시민들이 줄을 서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첫 도미노부터 마지막 도미노까지 무너져”

지금 대한민국의 어딘가에는 의사가 없다. 정확하게는 사람을 살릴 ‘필수과목’의 의사가 ‘매우 부족’하다. 그런 의사가 매우 부족해서 벌어지는 ‘전쟁 같은 상황’은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매일 다르게 펼쳐진다. 서울에서 벌어지는 전쟁터는 ‘소아과 오픈 런’이라는 한마디로 그려진다. 의사들의 소아청소년과 기피로 문을 닫는 소아과가 늘어나면서 병원이 문을 열기도 전인 새벽부터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는 모습은 이제 일상이 됐다. 지난 5월에는 40도 고열과 기침에 시달리던 5세 아이가 구급차에 실려 ‘뺑뺑이’를 돌다가 입원할 병상을 찾지 못해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수도 서울’에조차 소아응급체계를 구축하지 못한 2023년 대한민국 의료 인프라의 민낯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을 두고 “재난 상황”(김도균 서울대 소아응급의학과 교수), “첫 도미노(동네 병원)부터 마지막 도미노(대학병원)까지 의료 인프라 전체가 무너진 상황”(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이라고 말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지방에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서울과는 다른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지방의 전쟁터는 단지 소아과나 산부인과 등 한두 곳에서 펼쳐지지 않는다. 지방의 의료 인프라가 서울 등에 비하면 전체적으로 매우 낙후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방에는 수술 등 긴급한 상황에 대처할 의료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 김씨처럼 즉시 처치가 필요한 환자들을 수술할 외과나 정형외과 등 ‘필수과목 전문의’가 매우 부족한 상황인 것이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논리로 운영되는 민간의료체계는 물론 국민의 균등한 건강을 책임지고 보장해야 할 공공의료 인프라 역시 매우 부족한 게 현실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지방의료원 지불보상체계와 재정 지원 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지역의료원 3곳 중 2곳은 일부 필수진료과에 전문의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12월 기준 지역 거점 의료기관 역할을 부여받은 지역의료원 35곳 중 9개 필수진료과 전문의가 모두 있는 의료원은 10곳(28.6%)에 불과했다. 9개 필수진료과는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정형외과·비뇨의학과·정신건강의학과·신경과·신경외과를 말한다. 범위를 4개 필수진료과(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로 좁히면 35곳 중 8곳(22.9%)에서 일부 진료과에 전문의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민간 병원이 부족한 지방에서 아프면, 공공 의료기관에 가도 충분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지방엔 수술할 의사도, 응급실도 태부족”

사람을 살리는 데 필수적인 전문의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지방의 의료 인프라 환경 전체가 매우 열악하다는 문제와도 연결된다.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에 90분 이내에 도달 불가능한 인구 비율’이라는 통계가 있다. 긴급한 처치나 수술 등을 할 수 있는 종합병원에 늦지 않게 도달하는 것은 기본적인 의료권과 직결된다. 국립중앙의료원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강원(22.2%), 경남(17.2%), 전남(13.0%) 등은 이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원이나 경남에 거주하는 시민 10명 중 2명가량은 아파도 90분 내에 큰 종합병원에 갈 수 없다는 뜻이다. 전북(9.9%), 경북(7.4%), 충남(6.3%)의 상황도 좋지 않다.

이는 많은 인구가 몰려 사는 7대 특별시·광역시와 매우 대조된다. 인천(0.8%)을 제외하면 서울·부산·대구·광주·대전·울산·세종 등은 지역 내 모든 인구가 90분 이내에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에 도달 가능하다. 그 비율이 0%이기 때문이다. 의사, 특히 필수진료과 전문의가 몰려 있는 대도시의 의료 인프라 상황과 그렇지 않은 지방의 처지가 또렷하게 대비되는 상황인 것이다.

지역 간 의료자원 불균형 문제를 더 극명하게 보여주는 통계도 있다. 바로 ‘지역응급의료센터에 30분 이내 도달 불가능한 인구 비율’이다. 30분 내에 응급실에 갈 수 있는지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통계다. 가장 최신 통계인 2019년 기준 인천(3.1%)과 울산(2.0%)을 제외하면 서울과 부산 등 7대 특별시·광역시는 30분 내에 응급실에 접근 불가능한 인구 비율이 1% 미만으로 나타났다. 반면 전남(36.9%), 경남(30.1%), 경북(29.7%), 강원(29.4%) 등은 이 인구 비율이 30% 수준이거나 그 이상인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이런 추세가 ‘서울 쏠림’ 현상을 더욱 가속화한다는 점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간한 주요수술통계연보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인들이 받은 상위 5개 수술의 절반 이상이 서울·경기·인천 등의 병원에서 이뤄졌다. 이 비율도 2015년 50.0%에서 2021년 53.7%로 계속 상승하고 있다. 수도권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들이 국민 2명 중 1명 꼴로 수술을 하고 있는 것인데, 이들에게 한국인들이 주로 받는 주요 수술 경험이 쌓이니 환자들도 점점 더 많은 임상 경험이 있는 수도권 병원으로 몰리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셈이다.

여기에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와 지방 소멸 이슈가 겹쳐지면 문제는 간단치 않아진다. 지방에는 늙고 아픈 노인은 넘쳐나는데 이들이 갈 병원은 충분치 않다. 노인들도 더 경쟁력 있는 서울의 병원을 찾으려 한다. 그럴수록 지방의 의료 경쟁력은 더욱 약해진다. 의사들에게 지방 근무는 금전적 보상뿐만 아니라 의학적 임상 경험을 쌓는 데도 불리하다. 이 악순환이 지금의 현실을 만들었다. 지금 지방에는 의사와 병원이 충분치 않다. 

“의료도 ‘기울어진 운동장’…골든타임 끝나가”

지방에 필수과목 전문의가 부족하고, 의료 인프라가 충분치 않은 문제는 지금 ‘전쟁 같은 결과’를 낳고 있다. 제때 제대로 치료받았다면 피할 수 있는 죽음이 서울보다 지방에서 훨씬 더 많이 나타나고 있는 사실은 통계로 증명되고 있다.

임준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가 작성한 ‘공공보건의료 강화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성·연령 표준화를 거친 인구 10만 명당 치료가능 사망률은 서울이 30.6명으로 17개 시도 중 가장 낮았다. ‘치료가능 사망률’은 의료 시스템의 질을 평가하는 대표적인 지표다. 현재의 의료적 지식과 기술을 고려했을 때 조기 검진과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때 받았다면 피할 수 있는 죽음이라는 뜻이다. 

10만 명당 치료가능 사망률이 가장 높은 시도는 강원도로 서울보다 8.8명 많은 39.4명이었다. 강원도 인구수를 150만 명으로 가정하면 서울과 같은 보건의료 인프라를 갖추지 못해 연간 132명의 추가 사망이 발생한다고 추정할 수 있다고 이 보고서는 설명했다. 치료가능 사망률은 서울 다음으로 경기가 33.5명으로 가장 낮아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의 차이가 컸다. 전남(38.8명), 부산(38.3명), 경북(38.3명) 등도 높은 편이었다. 대전(30.7명)과 전북(34.0명), 울산(34.4명)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지역의 치료가능 사망률은 30명대 후반이었다. 

사망률도 지역별로 차이가 컸는데, 이 역시 서울이 가장 낮았다. 10만 명당 성·연령 표준화 사망률은 2018년 기준 서울이 283.3으로 가장 낮았고, 울산이 355.3명으로 가장 높았다. 두 도시의 차이는 72명이다. 울산 인구를 100만 명으로 가정하면, 서울 정도의 건강 수준을 유지하지 못해 연간 720명의 추가 사망이 발생하는 셈이라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사망률이 낮은 곳은 서울 외에 경기(306.8명), 대전(316.2명), 제주(326.1명), 전북(330.0명) 등이었다. 반면 울산과 충북(352.6명), 부산(350.8명), 경남(349.7명) 등은 높은 편이었다.

임준 교수는 “지방은 필수중증의료를 담당할 수 있는 규모 있는 종합병원이나 상급종합병원이 부족하고 의사와 간호사 등 보건의료 인력이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해당 지역 주민의 의료 필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며 “시간과 비용에 구애받지 않는 질환이라면 수도권으로의 이동이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응급, 외상, 심뇌혈관 질환, 취약계층 등의 의료 서비스는 시간과 비용의 영향을 강하게 받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거나 부적절하게 이용하게 되어 건강 격차가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임 교수는 “기울어진 운동장은 보건의료에서도 예외가 아니다”면서 “기울어진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발생하는 건강 문제에 더해 기본적인 필수의료 인프라조차 갖춰져 있지 않아 발생하는 국민의 고통은 임계치를 넘은 지 오래”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필수의료 서비스를 동등하게 받을 수 없게 만드는 낡고 병든 보건의료체계를 개혁해야 한다”며 “한계 상황에 봉착한 의료 불평등의 심화 등을 고려할 때 우리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8월16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 세브란스병원에서 환자들이 진료 접수를 기다리고 있다. ⓒ
8월16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 세브란스병원에서 환자들이 진료 접수를 기다리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배치 병행해야

낡고 병든 보건의료체계를 개혁하는 방법엔 무엇이 있을까. 정치권에서는 우선 의사 수를 늘리기 위한 의대 정원 확대를 핵심 대안으로 중점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필수의료 공백으로 제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일이 반복되면서 의사 숫자 자체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를 정부가 더 이상 외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2025년 대입’이라는 시점까지 구체적으로 밝히며 의대 정원 확대라는 정책 방향에 힘을 싣고 있다. 세계에 유례없는 고령화 속도로 의료 수요가 빠르게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의대 증원을 추진하는 중요한 배경 중 하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의대 정원 확대는 고차방정식을 푸는 첫 번째 관문일 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의사 수가 늘어나더라도 사람을 살리는 필수의료를 의사들이 계속 외면한다면 지금의 전쟁 같은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의대 정원 확대와 함께 지금의 뒤틀린 한국의 의료 시스템을 재설계하는 작업이 동반돼야만 문제 해결의 물꼬가 트일 것이라는 얘기다. 2008년 이후 꾸준히 의대 정원을 확대했으면서도 여전히 지방 의사 부족 현상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이웃나라 일본의 사례가 이런 점을 잘 말해준다(46쪽 딸린 기사 참조).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도 언론 인터뷰를 할 때마다 “지역 인프라 확충, 필수의료의 합리적 보상, 근무 여건 개선” 등 의사 배치 정책을 함께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문제는 시간이다. 정부가 의사협회 등의 반발을 뚫고 2025년부터 의대 정원 확대를 시작한다고 해도 의사 수가 늘어나 낡고 병든 보건의료체계를 바꿔내는 데는 최소한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의사 양성에는 그만큼의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이 말은 뒤집으면, 국민은 지금의 전쟁 같은 상황을 10년간 더 버텨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이번에도 해법 모색에 실패하면 ‘전쟁 같은 상황’은 그야말로 ‘전쟁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다. 

☞ ‘의사 수 확대’ 둘러싼 논쟁  
서울 같은 ‘의료 인프라’ 없어 강원도서 연간 132명 사망
국내 의사 수, OECD 회원국 중 사실상 꼴찌
이번엔 다를까…환자·병원도 참여한 첫 보정심 회의
일본, 2008년 이후 의대 정원 계속 늘려…지방 의사 부족은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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