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2008년 이후 의대 정원 계속 늘려…지방 의사 부족은 여전
  • 박대원 일본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8.21 09:05
  • 호수 1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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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의료 실태] ‘지역정원제’ 의사들, 의무근무지로부터 이탈하는 현상 늘어
전문가 “의사의 지방 근무 유인하기 위한 환경 정비가 우선”

지난 5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5세 남아가 응급실을 전전하다 급성후두염으로 사망한 사건으로 소아청소년과 의료체계 붕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또한 지방에 거주하는 환자들이 응급상황에서도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밝혀지며 지역 간 의료격차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소아의료 진료 붕괴’ ‘지방 의료 붕괴’ 등 의료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등이 제시되고 있는 가운데 대한민국 정부는 8월16일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첫 회의를 열고 의대 정원 확대 및 필수·지역의료 강화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일본 돗토리 지방 오카야마 대학병원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
일본 돗토리 지방 오카야마 대학병원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EPA 연합

2000년대 중반부터 ‘의대 정원 확대’ 및 ‘지역정원제’ 실시

일본의 사정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수도권 및 주요 대도시로 의료종사자가 몰려 지방의 의사가 부족해지는 지역 간 의사 수 격차 및 지방 의료 붕괴 현상을 한국보다 앞서 경험한 일본에서는 지방 주민들의 의료권 확보 및 복지 증진을 위한 대책으로 2000년대 중반부터 ‘의대 정원 확대’ 및 ‘지역정원제’를 실시해 왔다.

먼저 일본 정부는 의사 인력 부족 및 지역 간 의사 수 격차 해결을 목표로 2006년 ‘새 의사 확보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각 대학에서의 의학부 정원을 확대해야 할 필요성을 지적했다. 이에 따라 2008년 6월에는 ‘경제재정운영과 개혁 기본방침’을 발표하고 “가능한 한 빠르게 역대 최고 수준으로” 의대 정원을 늘리기로 결정했다. 2008년 기준 7793명이었던 의대 정원이 2023년 기준 9384명까지 늘어났다. 2018년 이후 의대 정원 감축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일시적인 정원 감소는 있었으나, 코로나19 확산으로 의료진 확보의 중요성이 지적되면서 2020년부터 올해까지도 미미하지만 정원 증가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2006년의 종합대책 발표 이후, 일본 전국의 각 대학에서는 지방에 거주하는 고등학생이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해당 지역의 의대에 진학하고 졸업 후 해당 지역의 의료기관에서 9년 이상 의무적으로 근무하도록 하는 ‘지역정원제’가 도입되었다. 2007년부터 지역정원제 모집이 실시되었는데, 모집 첫해에 전국 의대 정원 총수(7525명) 중 지역정원제 선발 비율이 2.3%(173명)에 그쳤던 데 반해 2020년에는 18.2%(1679명)까지 높아졌다. 교육 및 훈련 기간이 긴 의대에 학비 부담 없이 진학할 수 있다는 이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의대 정원 확대 및 지역정원제 실시에도 불구하고 지방에서의 의료 인력난이 크게 개선되지는 못했다. 일본의 47개 도·도·부·현 중 의사 수 부족 상황이 가장 심각한 지역 중 하나인 아오모리현에는 인구 7903명이 거주하는 후카우치무라 마을이 있다. 후카우치무라에는 의료기관(진료소)이 딱 한 곳뿐이어서 고령의 환자들이 차량으로 30분 이상 달려 진료를 받으러 온다. 해당 진료소에서는 70대 의사 세 명이 매일 100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아오모리현 히로사키대학의 지역정원제를 늘리는 등의 방법을 통해 아오모리현에 근무하는 의사 수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으나, 근본적인 의사 수 부족은 해결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재검토 시작

지방의 의사 인력 부족이 계속되는 가운데 일본 지자체들은 의대 정원 증원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대 정원이 감축되면 지방으로 오는 의사 수가 더 적어진다는 이유에서다. 불가피하게 의대 정원을 감축할 수밖에 없다면 지역정원제 비중을 높여 지방에서 근무하는 의사를 확보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일본 정부는 의대 정원 조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해 향후 의료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과 초고령사회 진입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의 건강수명(전체 평균수명에서 질병이나 부상으로 고통받은 기간을 제외한 건강한 삶을 유지한 기간)이 늘어나 의료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는 상반된 전망이 동시에 나오고 있는 점, 2006년의 종합대책 및 2008년의 기본방침에 따라 10년 넘게 의대 정원을 확대함에 따라 정부의 의료비 부담이 크게 늘고 있는 점 등의 이유에서 의대 정원 확대라는 기존의 방침을 재검토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의료경제학회 회장이자 도쿄대 교수인 하시모토 히데키는 일본 정부가 의대 정원을 늘리고 지역정원제를 실시했음에도 지역 간 의사 수 격차는 해결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지역정원제에 의한 선발의 경우 상대적으로 입학 커트라인이 낮아 일반 선발과 차별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지역정원제를 통해 의대에 입학한 학생이 9년간의 근무기간 중 결혼 및 개인 사정 등의 이유로 의무근무지로부터 중도 이탈하는 사례가 있다는 문제점도 제시했다. 이와 관련해 2019년 이후 후생노동성은 의무근무지를 중도 이탈한 의사에게 전문의 자격 부여 금지, 정부보조금 삭감 등의 페널티를 부과하는 규칙을 마련했다.

하시모토 교수는 지역 간 의사 수 격차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의사들이 지방에서 근무하기 위한 환경 정비라고 강조했다. 의사들이 지방 근무를 꺼리는 대표적인 이유가 “지방에서는 전문의 취득에 필요한 경험을 하기 어렵다”(20대), “자녀의 육아 및 교육 환경이 정비돼 있지 않다”(30·40대), “희망하는 업무를 맡기가 어렵다”(50대)라는 것을 고려할 때 지방 근무가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도록 환경 정비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아오모리현 내 의사 부족 지역으로 의사를 파견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 아오모리현립 중앙병원의 후지노 야스히로 원장은 “지방에서 진료를 계속하고 싶어도, 자녀 교육 등의 사정으로 장기간 지방에서 근무하는 건 어려운 경우가 있다. 의사의 생활 환경을 포함해 지원 및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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